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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헤도헨 Oct 21. 2023

나의 충만한, 축나는 시간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잘 잘까?


2019년 나는 명시적으로 ‘우울증'을 앓았고, 상담센터를 찾아 상담을 받았고, 정신과에 가서 약을 처방받았다. 그때 나는 숨 쉬고 말하는 게 어려웠고, 망가져가는 나와 내 삶에 처절했고, 물론 자살을 떠올렸다.


계속 생각한다. 내 삶에 생긴 이 주름은 무엇인지, 왜 생긴 것인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제 받아들여야 할 것과  떨어내야 할 것과 바꿀 것은 무엇인지. 

그 이야기를 정리해보려고 한다.


2019년 4월의 일기다.






나의 충만한, 축나는 시간 


새벽 3:18. 

나는 살아있다고 느낀다.  


읽고 싶은 책 두어 권과 오늘의 신문을 앞에 두고 돌려가며 읽고, 휴대폰으로 자잘하게 점검하고 알아볼 일들을 느긋이 하고, 이거 하다 저거 하고 저거 하다 그거 하고, 그러다 흰머리를 뽑는다든지 눈썹을 다듬는다든지, 오로지 나만을 위한, 나를 돌보는 일을 그냥ㅡ다른 사람이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ㅡ한다. 


이러다, 냉장고나 찬장을 뒤져 눈에 보이는, 평소엔 먹지 않는 달고 짠 것들을 배가 터지도록 먹기도 한다. 내 입에 들어갈 것만 생각하며 내 속도로, 먹으면서 책을 본다든가 휴대폰을 본다든가 멍을 때리든가 할 수 있는 시간도 지금뿐이므로, 뭐를 먹어도 맛있고 행복하다. 나는 사실 배가 고프지 않지만, 무언가에 대한 허기를 채울 필요는 확실히 있다. 


이렇게나 충만한 시간인데, 아쉬운 것은.. 잠과 건강을 내놓고 얻는 시간이라는 점이다. 나는 분명 내일 피곤하고 졸릴 것이다. 그럼에도 정신 똑바로 차리며 해야 할 자잘한 일들의 연속이기 때문에, 긴장하고 딱딱해질 것이고, 그러다 보면 아이들에게 불친절해지고 화도 많이 낼 것이다. 내일 밤이라고 충분한 수면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므로, 이러한 마이너스 상태가 며칠 지속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남편에게도 짜증내는 일이 생길 것이고, 나와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추레한 기운을 줄 것이고, 어쩌면 중요한 순간을 후회스럽게 보낼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을 알면서도, 이 시간을 수개월째 포기하지 않는다. 

잠시라도.. 나를 만나고 고양이가 하듯 그루밍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면,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했던 시간들이 허망하게 느껴진다. 나는 나를 보살펴줄 유일한 개체일 뿐이다. 성격이 어떻고 적성이 어떻고 재능이 어떻고..로 나를 특정하려고 했던 노력이 참 부질없었다. 


이 시간에 영화 <툴리>가 종종 떠오른다. <<스포 약간>> 주인공은 세 아이의 엄마가 되고 집구석처럼 일상이 엉망이다. 남편은커녕 아이들에게도 제대로 해주지 못하고, 돌보지도 꾸미지도 못한 외모처럼 사회적으로도 무방비상태로 나가 절제되지 않은 감정을 드러내고, 모든 게 엉망일 때.. 삼류 TV프로를 멍하니 보며 과자를 먹고 먹다가.. 한밤에 다른 인격으로(!) 자신이 바라지만 여건과 체력이 되지 않아 못한 일을 해낸다. 그러다 당연히..(몇 개월을 잠을 못 잤으므로) 탈이 난다. 


그 영화를 보며 내가 아슬아슬하다는 걸 깨달았다. 나 역시 기민하지 못하고 멍하고, 때때로 난폭하게 보일 만큼 감정조절이 안 되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과 예상치 못한 일이 자꾸 벌어져서 울 것만 같고, 이것저것 다 포기하다 보니 포기해도 되는 것과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별하기 어렵고, 정신의 근육을 쓸 필요 없는 볼거리로 유흥을 삼고, 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 인생에 한 번도 즐긴 적이 없던 야식습관을 끊지 않고 있었다.  


무엇보다, 원래의 내 모습을 찾고 싶고 자유롭고 싶은 욕망, 그러면서 아내와 엄마로서의 역할도 만족스럽게 해내고 싶은 욕망이 그러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불편함, 괴로움과 함께 도사리고 있고, 그래서 종종 아이들을 재운 후 한밤중에 나와, 잠을 자지 않고, 그 일들을 하고(미뤄둔 일을 하고 책을 읽고 놀고...) 있었던 것이다. 


낮 시간을 후유증으로 비몽사몽상태로 보내거나 마시지 못하는 커피의 힘을 빌리다가 흥분상태가 되거나, 이렇게 상태만큼 기분도 들쭉날쭉했었는데... 이러다 진짜 일이 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내일도 중요한 날이다. 둘째가 열이 나서 유치원에 못 갈지도 모르고 그럼 셋째가 낮잠을 잘 동안 한숨 돌리며 나를 추스를 시간이 없을지도 모른다. 돌봄학교로 초등생활이 빠듯했던 첫째에게 돌봄을 하지 말아보자고 말한 이틀째라 적응되지 않은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오늘 남편의 회식으로 독박육아 하며 저녁시간 화내고 빡빡한 엄마였기에 내일은 그러지 않고 싶다. 야심차게 같이 도넛을 만들기로 약속까지 해버렸다. 

후. 그래도 오늘은 야식을 참았다. 






돌아보면 막내가 태어나고 나서 2년, 그러니까 1/4/6세, 2/5/7세 미취학 아동 셋을 키우던 2년은 정말 빡셌다. 이미 첫째를 낳고부터 100미터 달리기 하듯 아이를 잘 키워보겠다고,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전력질주 했던 나는, 특히 그 2년을 내가 얼마나 만신창이 상태인지 모르고 남은 힘을 그러모아 내 역할을 해내며 버텼다. 역설적이게도, 첫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막내가 젖을 떼면서 극도의 긴장상태에서 놓여난 후, 뭔가 이상징후가 나타났다.


나를 위한 즐거움을, 아주 단순하고 본능적인 나를 위한 쾌락을 탐했다. 내 몸과 가까스로 유지하던 일상이 야금야금 무너져가는데도, 허겁지겁 게걸스럽게 쾌락을 삼켰다. 그게 나는 한밤중 좀비처럼 기어나와 ‘내 시간’을 가지려고 한 것이었다.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크푸드를 먹고 먹고 먹었고, 미드와 유튜브를 보고 보고 봤다. 그렇게 해야만 내가 살아있는 것 같았다.


그때 내 영혼은 건조하다 못해 거칠고, 기울 수 없을 만큼 해지고 낡았었다. 무디면서 뾰족뾰족했다.


정신과에 가면 제일 먼저 묻는 게, 그리고 제일 중요하게 묻는 게 “잠은 잘 잤나요?”이다. 그때 나는 내가 잠을 포기하는 것이 악순환을 가져온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경험적으로 알았지만, 이게 얼마나 근본적인 문제인지는 몰랐던 것 같다. (이후로 우울증 관련 책을 많이 읽었는데 예외 없이 ‘잠'을 제일 중요하게 얘기한다.) 잠을 잘 자면 산적한 부정(negative)의 상태가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아도 시간을 벌고 해결할 수 있는 준비가 된다. 못 자면 없던 문제도 만들게 된다. 이게 며칠이 아니라 그 이상이 되면 누구라도 예외 없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잘 잘까? 그때 내가 졸리지 않았던 것인지, 자지 않으려고 했던 것인지, 잘 수 없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정신과 의사이자 육아하는 아빠인 정우열은 번아웃증후군을 극복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쾌락을 추구하라'고 했는데, '쉬라'거나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불가능한 대책보다 위로가 되는 처방이었다. 나를 망가뜨리면서라도 나를 버티게 할 방법이었다. 나는 되돌아가도 살기 위한 방법을 택했을 것 같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전문가의 조언을 잘못 해석하고 과하게 적용한 것이었다. 비유하자면, '장염에 걸렸을 땐 일단 아무것도 먹지 말고 위와 장을 비우는 게 좋다'는 말에, 몸 상태에 유의하지 않고 굶기만 하다 몸을 상하게 했다고나 할까. 구토와 설사가 심하면, 의사에게 내 구체적 상태를 보여서 구토억제제든 지사제든 처방받고 링거도 맞아야 한다.


그러니까 그때 정신과에 갔더라면, 나를 망가뜨리지 않고 그 시간을 버텨낼 수 있지 않았을까 돌이켜본다. 애 키우는 건 원래 힘든 거고... 나보다 더 힘들게 육아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이런 일로 무슨 병원까지 가며... 정신과에 들일 시간도 돈도 에너지도 없다...고 생각하는 그때의 나에게, '아프면 병원에 가는 거고, 힘들면 도움을 청하는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누군가 내게 육아 조언을 구한다면 딱 하나, 잘 자라고 말하겠다. 친정엄마가 백 번은 하셨던 말 그대로. “애기 잘 때 같이 자. 뭐 하려고 하지 말고.” 하지만 그게 되지 않는다면, 그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어떤 이유에서건 그러지 않고 있다면, 정신과에 가서 도움을 청하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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