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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헤도헨 Oct 22. 2023

정신과에 가고 약을 먹기까지

도움은, 필요하면, 받는 거라고.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 역시 ‘정신과에 환자로 간다는 것'은 내 삶의 청사진이든 로드맵이든 선택지든 그 어디에도 없었다.


첫째 낳고 엄마가 되는 엄청난 상황변화에 적응하느라 허둥댈 때도, 둘째 낳고 첫째도 울고 둘째도 울고 나도 우는 육아의 암흑기가 나날이 이어질 때도, 셋째 낳고 울 것 같은 얼굴로 두더지 잡기 하듯 눈앞에 보이는 일들 해치우기 바쁠 때도, 힘든 일이니까 힘든 거라고 생각했다. 한계선을 왔다갔다 하니까 감정조절 안 될 때가 있는 것도 당연하다고.


그렇다고 괜찮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그러지 말자고 다짐하고 기도하고 노력하고, 실패하고, 자괴감에 빠지고, 그러지 말자고 다짐하고 기도하고 노력하고, 실패하고, 자괴감에 빠지고, 그러지 말자고…

거지 같은 상황이었지만, 나만 힘든 것은 아니라고, 나만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다.


그런 나에게 남편이 상담을 받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나는 그 말에 화가 났다. ‘너 문제 있어’라는 말이니까 (그게 사실인 줄 알아도) 기분 나쁘고 억울했고, 내게 필요한 건 (아플 때 ‘아프면 약 먹으라는 말’이 아닌 ‘따뜻한 말 한마디와 정성 담긴 간호'를 원하듯이) 왜 힘든지 물어봐주고 내가 힘든 것을 알아주고 내가 왜 이러는지 이해해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정조절 실패는 작년 초부터 눈에 띄게 악화되고 있다는 걸 나도 인정했다. 간간이 이어지는 남편의 권유에 결국 상담센터를 찾았다. 한편으론 지리멸렬하고 한편으론 폭발할 것 같은 내 마음을 나도 쏟아내고 싶었고, 감정조절 실패의 악순환의 고리를 완전히 끊진 못하더라도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화를 덜 낼 수 있으면 뭐든 좋겠다는 간절함도 있었다.


상담사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질문에 답하면서 어느 정도 나를 돌아보기도 했고 깨닫는 바도 있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상담을 하려면, 육아상담인지 부부상담인지 원가족 문제인지를 가려야 했는데(각각의 분야로 나뉘어 전문 상담사가 따로 있었으므로), 나로선 이 모든 게 뒤얽혀 있다는 생각에 결정이 어려웠다. 일단 뭐든지 해보기엔 시간과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막내가 기관에 가기 전이라 상담을 받으려면 남편이 휴가를 내거나 띄엄띄엄 주말에 상담을 받거나 해야 했고, 또 한 시간에 10만 원가량의 비용도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실제로 상황이 좋아지려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데 이렇게 시간과 돈을 쓰느니 내가 좀 더 마음을 다잡고 잘하는 게 맞겠다 싶어서, 3회 상담을 받고 중단했다. 그리고 요가학원에 등록하고.


그때도 정신과는 옵션에 없었다. 일반적으로 ‘상담'이 아니라 ‘약 처방'만 한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상황이 내가 약을 먹어서 해결할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당연히 약을 먹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그냥, 위로를 받아서 마음이 편안해지거나 뭔가 일깨워지거나 마음가짐을 다르게 하거나 실질적인 언어/행동 기술을 익혀서, 내가 해결할 수 있길 바랐던 것 같다.





그런 내가 지난해 5월, 감정의 문제가 확연히 나타난 지 몇 개월 만에, 그리고 상담을 중단한 지 3개월 만에, 결국 정신과 문을 두드렸다.


우선, 무기력 상태가 심각했다. 밤에 잠을 자지 않고(지난 글 참고) 새벽에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 아침에 서둘러 첫째와 둘째를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고 돌아오면 멍했다. 혼자서도 제법 잘 노는 셋째가 이리저리 놀다 책을 가지고 와서 읽어달라고 하는데, 한 쪽에 세 줄 있는 그림책이었는데, 한 줄도 읽기가 어려웠다. 겨우 입을 떼서 모기만 한 목소리로 느리게 겨우 한 권을 읽어주고 나면 주르륵 눈물이 났다.


그리고는 자살을 떠올렸다. 구체적으로 시도한 적은 없지만 살아오면서 나는 종종 자살을 생각했는데, 남편을 만난 이후로는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더구나 아이를 낳고서는 농담처럼 이제 나는 자살도 못하겠구나 했는데, 아주 오랜만에 그 생각을 한 것이다. 기저귀를 차고 내 앞에서 왔다갔다 하는 아이를 보다가 정신이 퍼뜩 나서, 다시 여기저기 상담을 알아봤다. 건강가정지원센터에 무료상담 제도가 있어서 전화했더니, 몇 가지 질문 끝에 자살 생각이 있냐고 해서 그렇다고 하니까, 여기 상담보다도 정신과에 가보는 게 좋겠다고 권유하는 것이었다.  


그즈음, 종종 글을 찾아 읽던 정신과 의사 정우열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생겼다. 그는, 보통 육아서처럼 아기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엄마가 해야 할 일들을 이야기하기보다, 엄마(주 양육자)를 중심으로 엄마와 아기의 균형을 이야기하는 사람이었고, 주 양육자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육아의 고달픔을 잘 알고 실제적인 위로와 해결책을 말해서 좋아했다.

그래서 그 와중에 찾아가서 강연을 들었고, 궁금하던 것을 질문했다. 엄마가 이렇게 힘들어서, 당연히 감정적으로 흔들리는데, 이게 문제적인지 아닌지, 정신과적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 아닌지 어떻게 판단하냐고. 그는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지 안 주는지로 알 수 있다고 했다가, 좀 고민하는 것 같더니, 본인이 알 거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아, 나는 정신과에 가야겠구나 했다. 어떻게든 ‘너 괜찮아. 힘들면 다 그래.’라는 말을 듣고 싶어하는 나 자신을 봤달까.


그래서 처음으로 정신과에 갔다. 아이에 대한 이야기든, 남편과의 관계든, 원가족 문제든 따로 가릴 것 없이 나를 중심에 두고 이야기할 수 있을 테니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또 지금 나에겐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듣다가 조심스레 몇 마디 해주는 상담자보다, 내 문제를 짚어주고 내 상태를 진단해주는 정신과 의사가 필요할 것 같았다.

거기서 나는 몇 가지 검사를 하고 내 증상을 이야기하고 의사의 질문에 답했다. 그래도 약은 먹고 싶지 않다고 했다. 세 번째 간 날, 의사는 약을 먹지 않겠다면 자기가 도울 일은 더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돌아왔다. 약을 먹는 것은 또 다른 결정이었다. 뭐가 문제였던 건지 이해하게 되었다고 생각했고, 다시 또 스스로 해보려고 했다.


상담을 그만두고 내게 숨통을 트여주겠다고 일주일에 두세 번 저녁에 요가학원에 다닌 것은 어쨌든 도움이 되었다. 무기력하고 우울하다가도,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혼자서 집을 나서는 순간 기분이 나아지곤 했고, 가기 전부터 간다는 생각으로 좋았고, 다녀와서도 잠깐 괜찮았었다.

그런데 6월쯤 되자, 일단 집에서는 도망치듯 나왔지만 좋아하는 걸 해도 전혀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얼굴에 표정이 없어졌고, 요가 할 때도 무감했고, 특히 돌아오는 길에는 (원래 걷는 걸 좋아해서 30분 거리를 힘차게 걸어왔는데) 한 걸음 떼는 게 힘들어 벤치가 보일 때마다 쉰다고 앉아서 울다가 일어서곤 했다.


이러다 큰일 나겠구나, 싶었다. 약 먹는 게 뭐라고. 아이들 옆에 내가 엄마로 온전히 있어주려면 더 큰 일도 하겠는데, 그깟 약 먹는 게 뭐라고.


쓸데없이 비장했던 것 같다. 친구가 소개한 다른 정신과에 예약했고, 이젠 정말 뭔가 달라지긴 하겠구나 하는 생각으로도 며칠 마음이 편안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를 지금 내가 만날 수 있다면 나는 뭐라고 할까.


아마도 주저 없이 말할 것이다. 정신과에 가라고. 아무것도 따지지 말고 약의 힘을 빌리라고. 그게 시간을 버는 거고, 다시 오지 않을 한때를 더 온전히 너의 모습으로 사는 거라고. 아이들이 어릴 때 지치고 멍하고 짜증내고 불같이 화내고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도망치듯 사는 엄마로 있지 말고, 진짜 너의 모습으로 있어주라고. 도움은, 필요하면, 받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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