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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헤도헨 Oct 22. 2023

두 명의 정신과 의사

정신과는 자기에게 맞는 주치의를 찾는 과정이라더라.

정신과에 가기로 했지만 어디로 갈지 막막했다. 인터넷으로 병원 이름과 위치, 의사 이력에 대한 정보는 쉽게 얻을 수 있었지만, ‘좋은' 의사인지, ‘내게 맞는' 의사인지는 도무지 알 길이 었었다. 입소문과 후기가 넘쳐나는 세상에 아직 정신과는 예외였다. 방송이나 책으로 유명해진 의사가 있었지만, 명의를 찾아 그곳이 어디든 찾아갈 만한 일도 아닌 것 같았고(일정기간 정기적으로 ‘다녀야’ 하기 때문에), 가깝다고 무조건 갈 만큼 ‘어딜 가나 거기가 거기'인 것도 아닐 것 같았다.


지역 맘카페를 뒤져서 한 군데 알게 됐다. 할머니 의사인데, 그리 자상하진 않지만 예리하게 통찰하고 핵심을 짚어 이야기해 주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상담받으며 내가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고 그에 대한 거울 같은 반응을 얻고는 이게 무슨 소용일까 싶던 차에, 그래, 내 입으로 설명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 누군가 알아봐주고 지적해주고 지침을 주면 좋겠다 하는 바람이 생겼다.


친정엄마에게 대충 다른 일로 둘러대고 아이들을 맡긴 후 병원에 갔다. 여러 병원이 있는 건물의 안쪽 외진 곳에 위치한 정신과는, 내가 지금까지 갔던 병원들 중 상위 10퍼센트 안에 드는 올드한 하드웨어를 장착하고 있었다. 나는 왠지 그런 분위기이기 때문에 최첨단의 약으로 나를 다루기보다 ‘대화'를 통해 낫게 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던 것도 같다.


숨겨놓은 것처럼 따로 떨어진 공간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고 있자니, 내가 어쩌다 이 길에까지 들어섰을까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이제 막 진료실에서 나온 내 또래의 비슷한 행색을 한 아줌마를 보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동병상련의 마음이 일기도 했고, 자못 자연스러운 그녀의 태도에 괜히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다. 내 차례가 되어 긴장한 채로 문을 열고 들어서니, 화장기 없는 얼굴에 동그랗고 커다란 눈을 가진 안경 쓴 할머니가 나를 맞이했다. 하얀 가운을 입지 않았다면 교감선생님이나 교회 권사님으로 봤을 것이다.


왜 왔냐는 질문에 나는 내가 처한 상태를 설명했다. 아이가 셋이고, 첫 아이를 낳은 후로 8년 동안 혼자 시간을 보낸 적이 없다, 번아웃증후군인 거 같다, 등등. 의사는 내 어린 시절에 대해, 엄마와 아빠와의 관계에 대해 물었고, 나는 몇 마디로 사실을 말할 수 없는 질문에 최대한 정확하게 답하기 위해, 그렇게 해야만 오진을 피할 수 있을 것처럼, 애쓰며 말을 이었다.


고지식하고 날카로운 느낌을 주는 인상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인지, 의사는 말을 하는 중간중간 맥락 없이 활짝 웃곤 했는데, 그럼 꽤나 귀여운 얼굴이 되었다. 저 사람이 웃는다, 어찌 됐든 나를 공격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야, 그런 판단을 하며 혼란스러운 나를 다독였다.


나 같은 육아 우울증을 겪는 사람이 많이 왔었는지, 마치 준비되었다는 듯이, 매뉴얼처럼 내게 처방을 해주었다. 잘 먹이려고 잘 재우려고 하지 말고 엄마가 잘 먹고 잘 자라, 막내를 어린이집에 보내든 가사도우미를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쓰든 혼자 다 하려고 하지 말아라, 누구나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해야 하는 일이 힘에 부치면 정신적으로 힘이 드는데, 약은 그 턱을 좀 더 낮게 해준다, 먹어보겠느냐.


나는 당장 약을 먹고 싶진 않다고 했고, 의사는 그럼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고 했다. 진료실을 나와 두 가지 검사를 받았는데, 한 시간 정도 걸린다는 MMPI와 문장완성검사를 두 시간 가까이 힘들여서 끝냈다. (그때 내가 스스로 느끼는 증상 중 가장 강력한 것은 우울감보다 혼란스러움, 그리고 판단력 저하였는데) 수많은 질문 하나하나를 정확히 판단해서 답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검사를 마치고 나는 쓰러질 것처럼 기진맥진했다.


두 번째 갔을 때 검사 결과에 대해 말해주었는데, 신뢰성이 낮게 나왔다고 했다. 그렇게 ‘정확하게' 답하려고 했던 검사에 신뢰성이 낮게 나왔다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의사는 그 의미가 내가 ‘거짓말을 했다기보다 방어적이었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했다. 여전히 의아해하는 내게 “그냥 딱 봐도 방어적이에요.”라고 덧붙였다. 검사를 하지 않아도, 내 앉은 자세, 말하는 태도, 말의 내용으로도 방어적인 걸 알 수 있다면서.


나는 허리를 꼿꼿이 하고 다리 위에 두 손을 가지런히 한 채 흐트러짐 없이 앉은 나를 의식했다. 평이한 어조로 표준어를 구사하려고 신경 썼던 것과 내 감정 상태와 일련의 생각들, 요즘의 일상과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에 대해서 정확하게 설명하려고 간간이 말을 멈춰 골똘히 생각하기도 했던 것도 떠올렸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웬만하면 울 법도 한데(실제로 상담자 앞에서는 울컥하기도 했고, 울먹이기도 했고, 울기도 했다), 울기는커녕 전혀 감정이 흔들리지 않았던 것도.


두 번째 날에도 나는 약 처방을 거부하고 나왔다. 그리고 다음 예약 전까지 내가 한 일은, 내 삶과 내 상태와 내 깨달음에 대해 정리하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내 삶은 이랬어요, 우리 부모님은 이랬고, 내 어린 시절은 이랬고, 그래서 나는 이렇게 되었고, 나는 이런 식으로 살아왔고, 육아도 이렇게 했고, 지금 내가 힘든 이유는 이래서이고…’ 세 번째 만났을 때 나는 실제로 이렇게 줄줄줄 말했고, 흘깃 보니 의사는 졸고 있었다.


그날도 약 처방을 거부했을 때, 의사는 그러면 더 이상 이곳에서 도울 게 없다고 했다. 나는 왠지 내쳐진 느낌에 서운하기도 했지만, 의사에게 줄줄줄 이야기한 대로 ‘내 삶과 이 상황에 대한 정리'가 어느 정도 끝났다고 생각했으므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여겼다.


하지만 당연히, 의사 앞에서 나를 방어하며 했던 ‘인지적 정리'는 실제로 내 우울상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정신과에 다니며 유지했던 긴장이 풀어지고 나는 이전보다 더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이전 글에 썼듯이)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만큼 무기력해졌고, 자살을 떠올렸고, 어떤 것에도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그즈음 오랜 친구가 공황장애로 힘들다며 전화했고, 나도 내 우울증과 일련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친구는 자신이 다니는 정신과를 소개해주었다. 젊은 남자 의사인데, 약도 약하게 주고 너무 수용적이라 (그래서 약 먹기 싫다고 하면 먹지 말라고 하고) 카리스마적인 의사가 필요한 자기에겐 안 맞지만, 너에겐 맞지 않겠냐고. “어린아이가 있는 아빠지만 젊은 남자가 내 상황을 이해할까?” 망설이는 내게 친구는 나처럼 아이 셋을 키우는 지인도 우울증 때문에 정신과 여러 곳을 다니다가 그곳에 안착했고 많이 나아졌다는 말을 전하면서, ‘정신과는 자기에게 맞는 주치의를 찾는 과정이라고 하니, 한번 가보라'고 했다.


남편 회사 근처라, 휴가를 내지 않고도 점심시간을 이용해 막내를 남편에게 맡기고 진료를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병원은 최근에 다닌 소아과, 내과, 치과 등 다른 병원들과 다를 것 없는 외관이었는데, 나는 뭔가 다른 점을 찾으며 다른 대기자들을 흘끔거렸다. 간호사들이 유난히 조심스럽고 눈을 잘 마주치지 않는 게 다르다면 달랐다고 해야 할까.


진료실에 들어서니 내 또래로 보이는 남자 의사가 앉아 있었다. 가운을 입지 않았다면 아이 어린이집에서 만난 다른 학부형이겠거니 싶은 아저씨였다. 특별한 인상도 주지 않고, 애써 어떤 표정도 짓지 않는 의사는 나를 압도하지 않아 좋았다.


내가 말할 때 표정 변화 없이 컴퓨터에 메모하며 가끔 고개를 끄덕이던 그는, 약을 먹기로 마음먹었지만 여전히 꺼려진다는 말에 메모를 멈추고 왜냐고 물었다. 부작용 때문에, 내가 아닌 사람이 될 것 같아서, 의존하게 될까 봐. 의사는 약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사람을 많이 겪었는지, 마치 준비한 것처럼, 그리고 가장 중요한 순간인 것처럼 내 눈을 맞추고 진지하게 말했다.


‘모든 약은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항우울제도 역시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부작용을 최소화하도록 나에게 맞는 약을 찾아갈 것이며, 정신과 약 중에는 의존성이 있는 약도 있지만 내가 먹게 될 항우울제는 그렇지 않아서 끊으면 거의 즉시 약효가 없어지고, 몸이 아플 때 약을 안 먹고도 이겨낼 수 있지만 먹으면 좀 더 빨리, 덜 고생하고 낫는 것처럼 정신과 약도 마찬가지 의미로 생각하면 된다.’ 그러면서 ‘공갈'은 아니겠지만 ‘협박'처럼 “우울증을 방치하면 나중에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의학 보고가 있다"고 덧붙였다.


(나는 안 그래도 병원에 들어서기 전부터 약을 먹기로 결심했고, 약 먹는 게 꺼려지는 이유에 대한 과학적이고 건조한 의사의 반론에 어느 정도 안심한 상태였지만, 여차하면 뒷걸음질 치려고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덧붙인 말을 듣고는 당장이라도 내 입에 약을 털어 넣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커다란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내 쪽으로 돌린 후 내가 먹게 될 약의 이름과 생김새, 효능, 부작용에 대해, 차근차근 읽어주며 설명했다. 중간중간 어떤 부분은 강조하면서.


내 어린 시절과 내 부모에 대해, 내가 얼마나 힘든지 왜 힘든지 어떻게 힘든지에 대해 모래 속을 더듬듯 설명해야 할 줄 알았는데, 20분 남짓한 시간 동안 내가 한 이야기는 현 상태와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위에 대한 간단한 브리핑이었고, 들은 이야기는 약에 관한 것뿐이었다. 나는 한편으론 실망스러웠고 한편으론 신선하고 가뿐했다.


이후로 적절한 약의 종류와 용량을 찾을 때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갔고, 서너 차례 약을 바꾸고 용량을 조절했다. 어떤 약은 잠이 쏟아졌고, 어떤 약은 몸 전체에 발진이 생겼으며, 어떤 약은 증량했더니 발음이 꼬였다. 부작용도 느껴지지 않고 기분이 나아지는 효과가 확실한 약의 종류와 용량을 찾은 후로는 2주마다 병원에 갔고, 의사를 만나는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 나는 잘 잤는지, 기분이 어떤지, 어떻게 지내는지 말하고, 따로 하고 싶은 말이나 질문을 한 후 돌아왔다.


언젠가 한 번은 왜 아무 검사도 하지 않는지, 어린 시절이나 부모에 대해서는 왜 아무 질문도 하지 않는지 물었다. 의사는 ‘그게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정신분석을 제대로 할 것도 아닌데 섣불리 그 이야기들을 꺼내 헤집었다가는 수습이 어렵기만 하고 치료적 효과를 얻기 어렵다, 현재 상황과 문제 해결에 집중하면서 필요하다면 언제든 검사도 하고 프로이트적 방법이든 인지치료든 행동치료든 차용할 것이다’라고 답했다. 나는 역시나 한편으론 실망스러웠고 한편으론 신선하고 가뿐했다.


두 번째 정신과에 다닌 후로, 일상은 드라마틱하게 달라졌다. 남편은 몇 개월 아니 몇 년 만에 평안을 맛보았다고 말했고, 드디어 내가 원래대로 돌아온 것 같다고 했으며, 일상은 다시 궤도에 오른 듯 굴러갔고, 나는 아이들이 새삼스럽게 이뻐 보였다. 나에 대한 깊은, 새로운 이해에 도달한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아무 효과 없이 끝난 첫 번째 정신과 진료도, 돌아보면 화두처럼 내게 남긴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내가 ‘의사와 같이 치료로 나아가지 않고 혼자서 가버린다’는 말이었는데, 나를 방어적이게 만든 의사의 태도 때문이든 약을 안 먹고 해결해 보겠다는 내 의지 때문이든 그 말은 맞는 말이었다. 이후 두 번째 의사를 만날 때 그 말이 참고가 되어서, 내 상태와 원인과 의미에 대해 혼자서 완결되게 설명하려 들지 않고, 가볍게, 탁구 치듯 내 차례에 알맞게 맞받아 이야기하려고 신경 썼다. 훨씬 대화가 생산적이었다. 의사와의 대화뿐일까.


다른 하나는 ‘왜 다른 사람 앞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면 안 되나. 좀 망가지고 풀어져라. 우스워져라.‘라고 했는데, 그 말이 충격적으로 들리고 의사의 말대로 해보려니 도저히 되지 않을 정도로, 내가 다른 사람 앞에서 경직되어 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 태도는 피곤할 뿐 아니라, (나 역시 허점을 보이지 않으려는 사람보다 자연스럽게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이 좋듯) 내게 이롭지도 않았다. 내가 사람들 앞에서 적극적으로 망가지는 게 꼭 필요한지,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망가진 모습을 보여도 괜찮아. 흐트러지면 흐트러진 대로 자연스럽게 있어보자' 하는 마음가짐은 지금도 중요하게 가지고 있다. (물론 잘 되지 않는다.)






치과치료를 받을 때도, 이사업체를 정할 때도 여러 군데 견적을 받아보라고 한다. 그래야 더 정확한 진단을 받을 수 있고, 돈도 아낄 수 있고, 내게 맞는 도움(치료나 서비스)을 받을 확률이 높아지니까.

‘정신과는 내게 맞는 주치의를 찾는 과정'이라는 말은, 별 게 무겁기만 하던 때 다음 발걸음을 떼는 걸 가볍게 해주었다. 알고 보면 모든 게 그렇듯이, 의사마다 다른 것도 당연하고 또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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