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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헤도헨 Oct 22. 2023

나도 한때 열정적인 엄마였는데

의욕에도 타고난 총량이 있을까.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ㅡ이상은(/싸이), ‘언젠가는' 중에서




1-2년 전부터 이 노래가 좋다. 오늘 다시 이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꼭 ‘젊음'이나 ‘사랑'이 아니더라도 있을 땐 당연한 줄 아는, 아니 당연하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생각했다.


지난해(2019년) 우울증으로 정신과에 다니기 시작해서 내게 맞는 약을 찾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살아가는 게 깊은 물속을 유영하는 것처럼 어색했지만 어쨌든 깨어있을 때, 남편 회사에 온가족이 갈 일이 있었다. 초등학생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에 첫째가 참가했고, 행사 마지막 날 나머지 가족들도 와서 이런저런 체험을 하며 라운지에서 시간을 보냈다.


나는 아이들이 남편에게 가면 조금은 몽롱한 채로 앉아 되는 대로 관망했는데, 내 앞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예닐곱 살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엄마~!”를 외치며 그 나잇대 아이들이 그러듯 넘치는 에너지로 불안정하게 달려오다가 종착지에 이르러 샌들 위로 드러난 엄마의 발가락을 밟은 것이다. “앗!” 앙칼진 비명에 이어 “퍽!” 엄마가 아이의 등을 후려쳤다.


나는 순식간에 일어난 역동적인 장면에 얼마간 놀랐다. 아이는 도끼눈을 뜬 채 여전히 화가 나서 투덜거리는 엄마 앞에서 어쩔 줄 몰라했고, 엄마는 공개적인 장소라는 걸 인식했는지 낮지만 싸늘한 목소리로 아이를 타박하고 발가락을 문지르고 나서는 아이의 존재를 무시한 채 핸드폰을 봤다. 아이는 좀 쭈뼛대다가 자리를 떴다.


그녀는 다듬어지지 않은 긴 머리에 튀는 염색을 했고, 화장도 네일아트도 화려했다. 옷이나 가방이나 신발도 자신을 돌보기를 포기한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왠지 ‘잘 차려입은’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마치 충동구매처럼, 자신을 거칠게 드러내는 것 같았달까. 그녀의 눈빛은 ‘다 귀찮아. 아무도 나를 건들지 마’라고 외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남편과 아이들이 그 자리에 오가는 걸 보니, 아까 엄마의 발가락을 밟은 아이 위로 남자아이가 하나 더, 그 아이 밑으로 딸아이, 이렇게 세 아이가 있었다. 내 아이들보다 3-4년 위의 나이. 나는 그녀에게서 나를 보았고, 나도 모르게 되뇌었다. “도움이 필요해. 저 여자도...’


잠시 후 내 앞에 작은 공이 굴러왔다. 세 살 무렵 여자아이가 활짝 웃으며 공을 주워서는 제 엄마에게로 돌아갔다. 엄마는 쉴 새 없이 아이에게 “우와~ 잘하네!”, “엄마 차례! 간다!”, “이쪽이야, 이쪽!” 같은 말을 하며 깔깔 웃고 손뼉 치고 공처럼 통통 튀는 반응을 해주고 있었다. 자연스러웠고, 표정도 밝았고, 즐거운 에너지가 넘쳤다. 또래인 셋째도 내게 왔다가 그 아이 공을 쫓으며 잠깐 같이 놀았는데, 그 엄마는 자연스럽게 두 아이가 놀게 해주면서 내 아이에게도 여전한 반응을 해주었다. 내 아이도, 나도 표정이 환해졌다.


그녀의 남편이 왔을 때 그 역시 자연스럽고 가볍고 환한 표정인 것을 보았다. 어둡고 조심스럽고 경직된 표정이었던 아까 가족들의 표정을 떠올렸고, 이어서 내 가족의 표정을 기억 속에서 살폈다.


밝고 친절하고 에너지 넘치는 엄마가 그러한 이유가 아직 아이가 어려서, 혹은 아이가 하나여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딱딱하고 까칠하고 블랙홀 같은 엄마가 그러한 것은 아이가 셋이고 더 오래 엄마였기 때문에 그럴 거라고는 확신한다. 분명 처음부터, 늘 그렇게 딱딱하고 까칠하고 블랙홀 같진 않았을 거라고.


나는 나에게 이런 모습도 저런 모습도 있었던 걸 알고, 내 남편과 아이들의 표정과 기운 역시 이렇기도 저렇기도 했던 걸 기억한다. 하지만 이제 나는 지쳤고,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웃고 반응하고 밝은 에너지를 담은 말을 건네는 게 힘들어졌다. 여전히 그렇게 해주고 싶은데 그게 안 됐다. 무엇이 나를 변하게 했을까? 뭐 때문이었을까?






몇 달 전 (코로나가 잠시 잠잠했을 때) 남편이 어느 시립기관에서 하는 어린이 대상 체험 프로그램을 신청해서 아이들과 다녀왔다. 남편이 그런 것을 찾고, 아이들과 들떠서 의논하며 신청할 때 나는 완전히 무심한 채로, ‘꼭 가야 하나. 나 빼고 가면 안 되나’ 그런 생각을 했고, 당일 오고 가는 것도 그냥 피곤했다. 물론 새로운 상황이라 평소보다 촉각을 세우고,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기분 좋게 보내려고 노력했지만.


뒤바뀐 우리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남편의 모습이, 남편이 한 일이 얼마 전까지 내 모습이었고, 내가 했던 일이었다. (남편은 쉬고 싶어하고...) 꽤 오랫동안, 그러니까 첫 아이 임신 때부터 셋째가 나오고 한동안, 나는 정말 미친 듯이 아이들을 위해 할 일을 찾아 했다. 집 안에서나 밖에서나, 아이들이 나를 볼 때나 안 볼 때나,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그게 얼마큼의 에너지를 들이는 일이든.


이제는 말 그대로 그때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의욕’이란 것도 있을 때는 모르고, 보이지도 않는 것인지.


의욕에도 타고난 총량이 있을까. 하고 싶은 게 있어도, 해야 하는 일이 있어도, 하면 좋겠다 싶은 게 있어도 도무지 할 수 없을 때, 그래서 ‘의욕이 없다'고 쉽게 설명하고 나서는, 그런 생각을 한다. 의욕에도 총량이 있을까, 나는 그걸 다 써버린 걸까, 하고.


‘의욕 없는 나'는 너무 낯설다. 어떤 일이든 나는 참 열심히도 하면서 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쨌든 삶을 포기하지 않기로 하고, 소중한 것들이 있어서 잘해보려고 해도, 작고 간단하고 쉬운 일도 ‘하기' 어려울 때 스스로 놀란다. 원래 이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내가 지금까지 이런 것들을 어떻게 하고 살았지, 하고.


이 글도 쓰기로 마음먹고, 쓸 내용을 머리에 떠올렸고, 실제로 쓰기도 했다가 다시 쓰기까지 몇 달이 걸렸다. 내게 글쓰기는, 카페인의 힘이든, 새벽의 신비든, 영감이든, 어쩌다 내게 와줘야 해낼 수 있는 일이 되었다는 게 잠깐 슬프네. (오늘 완성할 수 있기를.)


그러니까 비유하자면 이런 것 같다. 손가락을 구부릴 때 ‘손가락을 구부리고 싶어'(의욕), ‘손가락을 구부려야지'(생각), ‘손가락을 구부리겠어'(의지) 셋 모두든 그중 한두 가지든 과정을 거치고 손가락을 결국 구부리겠지만, 그 어느 것에도 의미를 두기 우스울 만큼 별거 아니다. 의식적으로 한 게 아니라고 여길 만큼 말이다. 그러다 어떤 신경이 다쳤다고 하자. 그래서 아무리 손가락을 구부리고 싶고, 구부려야지 생각하고, 구부리려고 해도 안 되는 것이다. 그때 맞닥뜨리는 당혹감, 머뭇거림, 혼란스러움, 힘겨움, 절망감 같은 게 내가 우울증을 겪을 때의 느낌이었다.


내가 하려는 일은 분명 손가락을 구부리는 것처럼 작고 간단하고 쉬운 일인데, 해보지 않은 일도 아닌데, 갑자기 마라톤을 완주하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도 아니고 쌀 한 가마니를 번쩍 드는 것처럼 힘든 일도 아니고 나 혼자 집 한 채를 짓는 것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일도 아닌데, 하던 대로 안 되니까, 아무리 해도 안 되니까, 결국에는 딱 그렇게 느껴진다. 손가락 구부리는 일이 마라톤 완주처럼, 쌀 한 가마니 드는 것처럼, 집 한 채 짓는 것처럼.


그리고선 멍하니 곱씹는다. 왜 손가락을 구부려야 하는 거지? 내가 정말 손가락을 구부리고 싶은 걸까? 손가락 안 구부리고 산다고 큰일 날까?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걸까… ‘의욕'도 ‘의지'도 없다고 쉽게 설명한다. 그냥 잘 안 되는 건데, 뭔가 끊어져버린 건데, 내가 그랬던 것처럼 너무나 쉽게 손가락을 구부리는 사람들 앞에서, 손가락을 구부리는 게 얼마나 힘들고 복잡하고 어려운 일인지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그냥 바보가 되기로, 무기력한 사람이 되기로 한다. 설명하는 일은 더, 이해시키는 일은 훨씬 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일이니까.


우울증이 유전적 영향이 크다고 하고, 또 내 아이들이 어릴 때 엄마인 내가 우울증을 앓았기 때문에, 아이들이 나중에 우울증을 겪게 될까 봐 나는 걱정한다. 그 자체보다 (인생의 멋진 주름이 될 수 있을 거고, 꼭 거기까지 가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깊이가 생길 것이다) 그 시기를 혹시 무사히 지나지 못할까 봐, 그 시기를 지나면서 혹시 자신과 삶을 너무 많이 망가뜨릴까 봐.


그래서 나의 그때를 되돌아보며 생각한다. 답이 있을까 하고 헤집는다. 내가 옆에 있을 수 있다면, 뭔가 도울 수 있다면, 뭐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뭘 해야 하나, 뭐라고 해야 하나. 뭐라고 기도할 수 있나.


그 답을 찾는 중이다. 확실한 건 그때 ‘옳은' 것들이 쓸모없더라는 사실이다. 옳은 말들, 당위, 깨달음, 가르침… (은 옆집 개나 줘버려.) 가닿지 않는, 힘없는 옳은 것들은 쓰레기일지도 모른다. 뭐든지 늘 같지 않고, 그랬던 게 아니기도 하고, 그렇지 않았던 것들이 그렇게 되기도 하니까, ‘옳은 것'들을 언제나 쓸 수 있는 무기인 양 휘두르는 건 조심해야 할 일이다.


언제나 옳은 것들과 옳은 줄 알았던 것들을 내려놓고 내가 무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마음가짐과 가치관을 다시 세우고, 바라보는 법과 듣는 법과 말하는 법을 다시 연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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