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은 길고, 나의 저녁은 없다
2012년 대선, 한 정치인이 출마 선언을 하며 ‘저녁이 있는 삶’을 슬로건으로 냈었다. 처음으로 엄마가 돼서 정신없는 와중에도, 귀에도 맘에도 콱 꽂혔다. 당시 대한민국 전체가 술렁였듯이.
그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이/계급/성별/직업/사회적 지위와 역할이 달라도 대부분 ‘저녁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걸, 그 말을 듣자마자, 모두가 단박에 깨달았던 것이다.
피곤한 몸을 일으켜 정신없이 하루를 시작하고, 날이 밝아 있는 동안 자신의 역할을 도망칠 수 없이 해내면서, 그것에서 놓여날 ‘저녁’을 기다린다. 하지만 저녁은 마치, 요즘 우리나라의 가을처럼, ‘왔나? 오나?’ 가늠하는 시간보다 짧게 있었다가 가버린다. 어느새 밤이 덮쳐서, 서둘러 하루를 마감하거나 (다음날의 삶을 끌어와) 긴긴밤을 보내거나 했다.
하지만 나는, 2012년 그 말이 가슴팍에 꽂힌 후 대략 10년 동안, 정말이지 ‘저녁이 기나긴 삶’을 살았다.
아이의 수가 하나에서 둘, 셋으로 달라지고, 기관에 가느냐 마느냐, (어린이집/유치원/학교 중) 어느 기관에 가느냐에 따라 모양새는 달랐지만, 대략 네 시쯤이면 나는 아이들과 마주한 채 저녁의 문에 노크를 한다.
오후 간식을 챙겨주면서, 낮에 있었던 일에 대해 듣고 반응하고, 그리거나 만든 것을 구경시켜주는 대로 보고 경탄을 내비치고, 책을 건네주거나 읽어준다.
다섯 시가 되면, 싫어해서 인생에서 치웠던 티비를 (굳이 다른 기기로 연결해서) 아이들에게 보여준다. 저녁의 과업을 수행하려면 필수적인 일이었다. 나는 몸을 재게 움직여 빨래를 모아 세탁기를 돌린 후, 주방에 서서 거실의 아이들을 곁눈질로 확인하면서, 때때로 티비의 마수 따위 무시하고 내게 오는 아이에게 대거리도 하면서 요리를 한다.
여섯 시. 아이 하나씩 목욕을 시킨다. 여름이면 욕조에 셋을 한꺼번에 집어넣고 잠시 정신줄을 놓을 시간을 마련하지만, 뭔가 필요하거나 갈등이 일어나거나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생겨서 여러 번 불려 들어간다. 그리고 그 점선 같은 쉼이 끝나면 한꺼번에 씻겨야 하는데, 순간 집중력과 순간 수행력이 어마하게 요구됐다. 나오면 하나씩 온몸에 로션을 촵촵 발라주고, 하나씩 옷을 입혔다. 목욕을 전후해서 아이들은 피곤해서 늘어지거나 반동으로 흥분한 상태여서, 그림같이 이쁜 아이들에게 화를 많이 내기도 했다.
그러고 나면 저녁상을 차리고, 제일 어린 아이의 옆에 앉아 식사를 시작한다. (이때쯤 남편이 와 있어야 하는데, 가끔 야근하거나 회식하는 날이 있다.) 눈과 입과 손이 (때로는 엉덩이도, 왔다갔다 하느라) 바쁘다. 나는 정말 정신없는 여자가 되어 있다. 잘 먹는지, 흘렸는지, 부족한 건 없는지, 장난하지 않는지, 뭔가 떨어뜨려 사고가 생길 지점이 있는지 눈으로 확인하면서, 손으로는 잘라주고 덜어주고 치워주고 입에 넣어준다. 틈틈이 나도 먹으면서, 아이들의 말에 대거리를 하고, 먹으라고, 하지 말라고, 앉으라고, 조용히 하라고 잔소리를 한다.
배를 채운 아이들이 하나씩 식탁을 뜨면, 나는 갑자기 맥이 탁 풀린다. 일단 고지를 넘었다는 걸 몸이 안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쯤 갑자기 컨디션이 좋아져서, 저희들끼리 이것저것 찾아서 잘 논다. 나는 멍하니 앉아서 아주 느린 속도로 마저 먹고, 남편과 함께 같이 치운다. 상 위와 상 아래를.
후식으로 과일을 챙겨주고(말끔하게 치워놓은 식탁에 아이들을 또 앉히는 일에 남편은 종종 뜨악해했다. “후식을 꼭 먹어야 하는 거야...?” 하지만 그게 기쁨의 조각이던 시절), 그쯤 다 된 빨래를 건조기에 넣거나 건조대에 넌다. (남편이 없다면 설거지와 주방 뒷정리를 하고) 이제 나의 몸을 씻는다.
목욕을 하는 와중에도 어김없이 화장실 문 밖에서 나를 부르고 말을 거는 아이에게 뭐라고 답을 해주면서, 그래도 어느 정도,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묵은 것들을 떨궈낸 후 아주 희미한 원기를 얻어 나온다.
이제 마지막 대결전, 재우기를 해내야 하므로. 그렇게 아직 젖은 머리를 베개에 누이고, 캄캄한 곳에서 잊었던 알 수 없는 것을 찾으며, 이야기와 노래를 끊임없이 꺼내놓으면('주크박스도 되고, 이야기보따리도 가능하다'), 기나긴 저녁의 문을 기어이 닫을 수 있었다.
이제는 이 모든 일의 밀도가 10분의 1쯤 헐거워졌다. 그래도 역시 저녁은 길고, 나의 저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