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의 조화도 아니고…
달리기 좋은 날씨였다. 오늘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달리다 퍼뜩 깨달았다. 가만, 달릴 때마다 달리기 좋은 날씨였던 것 같은데?
물론 날씨가 날마다 ‘좋을’ 리야 없다. 그런데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혹은 ‘웬만하면’ 매일 달리기로 결심한 적도 없다. 그래서인가, 일단 정말 ‘궂은’ 날씨엔 달린 적이 없다.
게다가 이상하게도 일단 달리다 보면,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해서, 해를 가려주는 구름이 가득해서, 아침이면 아침이어서, 저녁이면 저녁이어서, 낮이면 낮마다 밤이면 밤마다, 비가 올 것 같은데 안 와서, 어느 날엔 달리는데 비가 쏟아져주어서, (이게 뭔 도깨비의 조화도 아니고…) 달리기 참 좋은 날이 되곤 한다. 하늘을 보며 고마운 마음이 들지 않은 적이 없다.
벌어진 일에 대해 좋게 생각하려는 뇌의 조화겠지?
어쨌거나 날이 정말 좋을 때 머릿속에 제일 먼저 달리기가 떠오른다. 이 날씨엔 달려야 해!
‘좋은 날씨’에 대한 인지가 없다가, 20대엔 날씨가 좋으면 놀러 갈 생각이 났다. 그런 날 미처 계획도 없이 느지막이 깨어나 창밖을 보노라면 아쉽고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나는 청춘이었던 것이다.
30대엔 날씨가 좋으면 빨래 생각이 났다. (특히 이불 빨래…) 집이 아닌 곳에 있거나 다른 일정이 있어서 빨래를 못하는 날엔 안타깝고 원통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그렇게 주부가 되었는데,
나는 이제 정말 러너가 된 것일까? 그런 생각에 혼자서 웃기고 흐뭇하기 이를 데 없는, 찬란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