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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헤도헨 Dec 02. 2023

엄마도 살기 위한 '제때의 한 땀'

‘사랑해’를 제치고 ‘정리해’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교회엔 '영아실/모자실'이 따로 있다.

언제든 종알대고 물어야 하고 울어야 하고 웃어야 하며 돌아다녀야 하고 장난쳐야 하는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려고 마련된 공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가본 어른은 안다. 가두어졌다는 것을. 경건하고 (특정 사람만 제외하고) 조용해야 하는 어른들의 예배가 진행되는 한 시간 동안, 통제되지 않는 아기/어린이와 그 보호자는 격리되어야 한다.


영아실이 없는 교회에 다녔을 때, 예배 내내 돌도 안 된 아기가 이러저러한 소리를 내는 것이 신경 쓰였다. 그래도 '아기니까, 울지만 않는다면, 뭐' 정도로 생각하는 나와 달리, 태생이 남에게 피해를 주면 좌불안석인 남편은 아기가 '낑' 소리만 내도 벌떡 일어나 아기를 안고 예배당을 나갔다. 어르고 달래고 들어왔다가 나가기를 반복하거나, 그러다 거의 재운 다음 들어오거나. 예배를 드렸다고 확신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젖을 먹여야 하거나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 상황이 되면(그럴 일이 없도록 교회 오기 직전에 하고 왔는데도), 아기를 안고 누일 곳을 찾고 사람의 눈을 피해 자리 잡는 것도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다른 도시로 이사하고, 영아실이 있는 교회에 다니게 되었을 때, 그래서 드디어 아이와 내가 있을 아늑한 곳이 생긴 줄 알았다. 아이를 풀어놓고 자유롭게 소리 내고 움직이고 놀게 할 수 있었다. 비교적 편하게 기저귀를 갈고 젖을 먹일 수 있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역시나 예배를 드린다고 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심지어... 교회에 온 것 같지도 않았다. 주중에 집에서 아이와 '집'에서 갇혀 지냈는데, 교회에 와서도! 뭐 그런 생각에 음습해지곤 했었다.





여하간, 아직 첫째만 있었을 때(두 살쯤) 낯선 도시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러 한 교회에 갔다.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아이를 데리고 영아실로 향했다. 이층 구석, 다락방 같은 곳이었다. (남편과 같이 들어갈 때도 있고, 남편이 혼자 데리고 들어갈 때도 있었는데, 내가 젖을 먹여야 하거나 그곳에 있는 어른이 '엄마들'뿐이라 분위기가 애매할 때는 그냥 나 혼자 들어갔다. 그런 날이었다.)


이제 와 생각하면 '온라인 예배'와 비슷한 분위기다. 처음엔 한 움큼의 신성함 정도는 가지고 시작하지만... 이내 일어서는 것도, 목소리 내어 찬송하는 것도, 눈을 감고 기도하는 것도 저 너머의 일이 된다. 예배하는 곳을 향해 몸을 향하고는 있지만, 눈과 마음은 아이들을 쫓다가 멍해졌다.


그날도 그렇게, 그곳에 있는 네댓 명의 아이들이 노는 걸 (다른 두 명의 엄마와) 쪼그리고 앉아 지켜보다 한 시간이 갔다.

그리고 광고 시간. 축도만 끝나면 돌아가야 할 시간.


나는 갈 채비를 했다. 내 가방에서 나온 것들(성경책, 가재수건과 물티슈 등)을 후딱후딱 집어넣고, 조그만 방 안에 펼쳐진 온갖 물건들(블록, 로봇, 인형, 책, 공, 카드 등등등)을 영혼 없이 제자리로 치우는데...




자, 정리해, 정리해.
너희들이 제자리에 갖다 놔.




너무도 단호한 목소리에, 아니 그보다 '명령조'의 말에 멈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두 아이들은, 익숙한 듯, 정리를 시작했다.




그렇지, 그렇지.
너희들이 놀았으니까, 너희들이 치우는 거야.
그래야 엄마들도 살아.




속으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솔직히... 이게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고, 대단한 일이라고. 이제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에게 이런 식으로 말할까.


딸은 분위기에 따라 다른 아이들처럼 서투르게 정리하고 있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외출' 차림새라곤 할 수 없는 옷차림, 화장기 없는 얼굴에 대충 하나로 질끈 묶은 머리, 생기 없는 눈. 어지간히 지쳐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가...

아마 그녀를 다시 마주칠 일도 없을 테고, 그 정도 인상으로 사라질 순간인 줄 알았다.





그때로부터 대략 10년이 흘렀다.

나의 예상과 달리 그 순간은, 그녀의 말은 때때로 내 마음속에 떠오르곤 했다.

그냥 육아에 지친, 그래서 여유도 너그러움도 내팽개친 엄마인 줄 알았는데... ‘육아의 고수'가 아니었을까? 하는, 점점 확신으로 기우는 의심과 함께.


아이를 향한 부모의 마음은, 아이가 자랄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육아관'과 '부모상'이 변할수록 당연히 바뀐다. 그래서 목소리 톤도 바뀌고(첫째만 있었을 때 동영상을 보면 거기서 들려오는 나나 남편의 낯간지러운 목소리에 소름이...), 하는 말도 달라진다.


지금 내가 아이들에게 하는 말을 녹취한다면 아마도 가장 많이 하는 말 1위는, '사랑해'를 제치고 '정리해'가 아닐까 싶다.





그 변화의 여정을 떠올리면... 사실 '이렇게 될 줄 알았어'여야 마땅한 듯하다.

아이도 사람이니까. 엄마인 나도 사람이니까.


아기가 움직이지도 못하고 누워 있을 때, 아기의 모든 물건들은, 내가 치우는 게 당연하다.

'아기를 위해' 썼지만, 아기가 썼다기보다 '내가 쓴' 거니까.


아기가 꼬물꼬물 움직일 때 쓴 물건들도 내가 치워야 한다.

아기가 쓰기야 했지만, 내가 도움을 받은 물건이라고 해야 한다.


아이가 점점 큰다. 제법 혼자 놀고, 스스로 썼다고 할 만한 물건들(장난감이든 책이든 뭐든)이 생긴다.

자,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잘 생각해야 한다.


처음엔 물건들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것이 그다지 힘들지 않다. 힘이 들기는커녕, 지루해 죽겠는 시간(미안.. 늘 그렇다는 건 아니야)에 그나마 '일 같은 일'이란 생각이 들 정도다.

심지어, 제자리에 돌려놓는 걸 '놀이'처럼 할 수도 있다. 그 정도로 멘탈에 여유가 있고, 일상의 밀도가 후지다.


그러다, '눈 깜짝할 사이에'라고 할까, '퍼뜩 정신을 차리면'이라고 할까, 어느 순간, 집 안이 온통 난장판, 어디서부터 손을 댈지 모르겠는 아수라장이 되어 있다.


바로바로 치워야겠구나, 싶어 '가' 구역을 치우면 '나' 구역을 어지럽히고 있고, '나' 구역을 정리하면, '다' 구역을 어지르고 있고, 숨을 고르며 '다' 구역을 치우고 돌아보면 '가', '나' 구역이 다시 아까처럼 되어 있고... 끄응, 힘을 주고 "놀 거니? 그래, 놀아라" 하고 설거지라도 하고 돌아오면 온 집 안이 난장판... 저 깊은 곳에서 무언가 끌어올라, 자동으로 복식호흡에 정신을 내어맡기고 있다.


이적 엄마이기도 한 박혜란의 책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에는, '그냥 엉망진창으로 하고 살았다고, 그러면 오히려 아이의 창의력이 발달된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온다. '옳다구나! 그래, 어차피 치워도 금방 엉망인 걸, 기준을 내려놓고 살지 뭐, 그럼 아이도 잘 큰다는데!' 하며 지낸 적도 있었다.


사실 난 세상에서 제일 어렵고 싫고 못하는 일이 '정리'와 '청소'인 사람으로서, 그래서 그 일은 원래 '남편의 일'이었기 때문에, '육아 하느라 평소 하지 않던 일을 하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원래, 어느 정도 지저분하고 너저분해도 그다지 스트레스 받지도 않는데(물론 깨끗한 게 싫다는 건 아니지만), 아기가 기어다니고 입에 아무거나 넣는 등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억지로 청소도 하고 정리도 했던 것이다.

그래서 보무도 당당히, 박혜란을 따라해보려 했으나... 얼마 못 가 포기했다.


이건 뭐, 아는 사람은 알 거고, 모르면 한번 해보라고 할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간단히 말하면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상황이 된다. 한 번 더 강조. 제때의 한 땀이 아홉 땀의 수고를 덥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깨끗해진 집구석을 돌아보며 깨닫곤 했다.




아. 좋다.
뭔가 하고 싶어진다.
계속 이렇게 살고 싶다.

 



나이 서른이 넘어서야, 아이들을 키우면서 깨달았다는 게 부끄럽긴 하지만.


*아마도, 박혜란 님과 나의 '정리를 안 하고 사는' 정도가 달랐던 건 아닐까 싶다. 아니면, 그땐 혹은 그녀의 집엔, 요즘만큼 우리 집만큼 집 안에 물건이랄 게 많지 않았는지도.





정리를 좋아하면, 손이 빠르면, 아니면 아이가 하나이거나 순하면(?) 엄마가 할 수 있나?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겐 확실했다. 숨을 돌리며 살 수 있는 만큼만 정리된(언제든 누구든 초대해도 괜찮은, 그런 수준이 아니라) 공간에서 살기 위해서는, ‘정리’가 ‘엄마의 일’이어서는 안 된다. 불가능하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자, 정리하자.




하루에 한 번, 자기 전 '음악을 틀어놓고' 정리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고, 다른 놀이로 넘어가기 전 놀던 걸 정리해야 한다는 규칙을 세워보기도 했다. 공용공간은 바로바로 정리하고, 자기 공간은 알아서 정리하기로 한 적도 있다.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었고, 지금도 그러는 중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원칙은 변함없다. 자기가 쓴 물건은 자기가 정리하는 거다.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이에 대한 내 마음은? '진작 할 걸 그랬어'.

놀랍기도 하고 당연하기도 한데, 어릴수록 잘 받아들인다.



그래, 뭔가 재밌는 걸 하나 보구나. 좋아. 그런데 말이지, 다 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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