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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헤도헨 Dec 01. 2023

"바로 저의 언니죠."

틀림없이, 뿌린 대로 거둔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장 행복할 때는 언제일까?

나를 사랑해주고 내 마음을 알아줄 때? 뭔가 잘할 때?


가장 뿌듯할 때는?

참 잘 컸다 싶을 때는?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다. 나는 세 개의 답이 같다.

아이가 가장 이쁠 때가 '잘 때'인 것만큼, 확실하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셋째가 공주처럼 (꾸민다고) 꾸미고 손거울을 들고 돌아다녔다. 네 살.

나는 귓등으로 들으며 가만히 웃었다. 이제 얘도 이만큼 컸구나, 하면서.

저 요상한 콧소리 다음, (바로 자기인) 백설공주라는 답을 어떻게 하려나 궁금해하면서.

아이는 아주 밝고 명랑한 소리로 답했다.



바로 저의 언니죠.



엥?!


"OO야, 누구? 누가 제일 예쁘다고?"

"언니."

"XX(둘째 이름) 언니?"

"응. 나 언니 엄청 좋아하거든.“


*셋째에게 그냥 '언니'는 둘째 언니다. 첫째 언니는 이름을 붙인 언니. 그만큼 '언니'라 함은 기본적으로 둘째 언니.

 


셋째는 해맑게 웃으며 가버렸다. 나는 너털웃음이 나왔다. 이런 답은 나도 처음 들었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백설공주 중 누구도 듣지 못한 답이 아닐까? 언니가 그렇게 좋다니. 진실만을 말하는 왕비의 거울의 입을 빌어, (아마도 본인인) 백설공주를 제치고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할 만큼.





사실 그럴 만도 했다.

둘째는 셋째를 정말 이뻐라 하고, 잘 놀아주었다. 혼자서 무언가 집중하면서 노는 것보다(첫째), 무엇이 됐든 사람과 노는 것을 좋아하고, 기본적으로 동생들, 동물들을 돌봐주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셋째가 태어나고, 아주 아기일 때부터 둘째는 셋째를 챙겨주고 도와주고 웃겨주고 놀아주고 그랬다.


세 아이 모두 미취학 아동일 때, 셋째에게 눈을 뗄 수도 없고 뭐든 내 손으로 해줘야 할 때,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멍때릴 시간도 없이 바빴다. 둘째가 있으면 어쨌든 내 손이 비어 '일'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둘째가 셋째랑 놀아줄 때 나는 ‘일할 틈'을 얻었다기보다 '마음의 짐'을 덜었다.


'놀아주는 일'은 '그냥 일'보다, 그러니까 돌봄노동은 가사노동보다, 내 상태에 크게 좌우된다. 내 상태가 '괜찮으면' 아이랑 몸만 붙이고 있어도 대체로 안정적이고, 하하호호 꺄르르 웃음소리가 퍼진다. 하지만 내 상태가 '쒯'이면 어떤 엄마표로 '쌩쇼'를 해도 '꽝'이다. 긴장과 경직과 짜증과 역정의 기운이 차오르다 어느 순간, 날 선 목소리와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셋째를 낳고 힘에 부치던 나날은 번아웃으로, 우울증으로 나를 몰아가고 있었기 때문에(내 시간 vs 잠 : 나의 충만한, 축나는 시간), 내가 엄마로서 해야 하는 일 중 '아이들(특히 셋째)과 놀아주는 일'은 한참 후지고 모자라서 미안할 정도였다. 나는 그때 둘째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아직도 셋째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은 (둘째)언니고, 엄마인 내가 두 번째라고 말한다. 이유를 물어보면 '언니는 나랑 많이 놀아줬으니까'다. 놀아주는 게 최고다. 그리고 틀림없이, 뿌린 대로 거둔다.





아이들끼리 잘 놀 때, 서로 얼굴을 맞대고 웃을 때, 서로 돌보고 챙겨줄 때, 서로를 좋아할 때, 나는 그때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그것을 행복이라 해야 할지, 뿌듯함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참, 잘 커줬구나 한다.


자식을 낳아봐야 꼭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고, 인생을, 세상의 이치를 제대로 아는 건 (그래서 자식이 없으면 어른이 못 됐거나, 반쪽자리 인생인 건 당연히) 더더욱 아니겠지만, 나로선 자식을 낳고 키웠기 때문에 비로소 배운 게 많다.


그중 하나만 꼽으라면, "아. 신이 있다면, 만약 우리를 자녀로 생각하는 부모 같은 조물주가 있다면, 우리가 서로 돕고 살길 바라겠구나. '서로 사랑하라'고 하겠구나." 하는 깨달음이다.

너무 사랑하는 존재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만큼 기쁘고 좋은 일이 없다.



요즘 둘째는 ‘새 동생’을 원한다는 슬픈 사연을 덧붙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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