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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헤도헨 Nov 28. 2023

누가 그랬어? 응? 엄마가 그랬어?

왜 둘째는 머리 자르기도 쉬운가.

'둘째는 발로 키운다'는 말이 있다.

이제 겨우 두 번째 키우면서 뭘 그렇게까지... 싶은데, 신기하게 정말 그렇다.


왜 그런가?


첫째와 둘째의 터울을 (내 맘대로) 평균 잡아 2년이라고 하자.

주양육자라면 낮도 밤도 없이, 쉬는 시간도 없이, 사생활도 없이,

삶이 몽땅 '육아'이므로, 일한 날은 365일*2=730.


육아 집중기에 하는 일이란, 먹이고 재우고 씻기는 일이 9할. (자랄수록 놀아주고 가르치는 일의 비중이 늘어간다) 그 일들은 하루에도 수 차례 반복하는 일이다.

고로, 실제적인 행위로서의 일은 730*수차례=수천 회.


그사이 아이는 미묘하고도 확실히 달라진다. 특정 일의 단순 반복이 아니다. 상황의 전후좌우고저내외를 두루 살펴 판단하고 행해야 한다.


즉, 아이는 겨우 두 번째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은 ‘달인’의 훈련만큼 했달까? (게다가, 늘 실제상황)



다른 면에서 보자.

육아 집중기에는 '나만의 시간'이 없다. 진짜다. 나를 위한 시간, 나만 생각하는 시간, 나를 돌보는 시간이 없다. 자는 것도, 먹는 것도, 씻는 것도, 싸는 것도 내 시간이 아니다. (1년에 통잠을 자는 일이 손에 꼽는다. 먹는 게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른다. 엄마를 찾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혹은 그러는지 온 신경을 기울이며 후다닥 씻는다. 화장실 문을 활짝 열고 아기와 눈을 맞추고 쇼ㅡ노래와 율동과 구연동화ㅡ를 하며 싼다.) 아기가 잘 때도, 필요한 육아 정보 습득과 육아용품 구비를 위해 검색과 쇼핑을 하고(해도 해도 끝이 없는 정보의 바다, 그리고 개미지옥), 육아의 정도(正道)와 온갖 '엄마표'와 이미 글러버린 상황의 타개책을 공부해야 하며(육아서와 블로그와 팟캐스트와 유튜브라는 무한의 세계), 돌봄+감정노동과 도저히 동시에 할 수 없는 가사노동을 해야 한다.


그래도, 사람마다 구체적인 상황도 다를 테고, 과장이 아니냐 의심하는 마음을 겸허하게 받아, 8시간 통잠 잤다고, 나만을 위해 먹고 씻고 싸고 하는 데 2시간 썼다고 치자.

그럼 하루 14시간 육아. 고로,


하루 14시간*365*2=10,220


!!! 1만 시간이 넘는다. 1만 시간!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필요하다는 최소한의 훈련 시간이 채워진 것이다.


즉... 둘째가 나올 때, 주양육자라면, 이미 나름의 육아 전문가가 되어 있다.





실제 현실은 이런 식이다.

둘째가 나오는 순간, 아니, 출산 때부터, 첫째 때는 경악했던 일이 한 번 해봤다고 당연하게 느껴진다("아, 제모부터 하나요? 관장은 언제?"). 팔뚝만 한 아기가 번데기처럼 싸여 내 옆에 누워 있어도 현실적으로 생각하고(당분간 잠만 자겠지, 자, 그럼 난 지금 뭘 해야 한다?), 아기가 응가하면, (첫째 때 응가만 해도 화들짝 놀라서 그대로 덮어놓고 신생아실에 맡겨버렸던 기억이 소환돼 '훗' 웃으면서) 우아한 손놀림으로 엉덩이까지 닦이고 새 기저귀를 채운다.  


이러한 익숙함, 거기서 오는 느긋함이 다는 아니다.

애씀의 무쓸모를 경험했고, 시행착오의 피로가 떠오른다. '해야 한다는데'와 '도저히 안 되는데' 사이에서 불안한 합의점을 찾았다. 나의 깜냥과 아이에 대한 객관적 현실 인식은 많은 것을 가지치기(포기...)하게 만든다.


그렇게, '두 아이의 엄마'가 된다.





이전 글에도 썼지만, 첫째의 머리카락은 내가 둘째를 낳으러 가기 직전 처음으로 잘랐다. 어린아이의 머리카락을 자른다는 게 (미용사에게도) 까다로운 미션이어서 웬만하면 안 자르고 싶었던 것도 맞지만, 실은... 아이의 머리카락도 아까웠다.


미용실에 가서도, "어떻게 자를까요", "앞머리는 있는 게 낳을까요", "너무 짧으면 안 되겠죠" 등의 질문들을, 눈썹을 파르르 떨면서 미용사 샘께 던졌다. 과장하자면 내 웨딩 촬영 때보다도 더 떨었다. 자르는 동안 수십 장 사진을 찍고... 잘린 머리카락을 보관해야 하나 고심하면서 말이다.


자, 이제 둘째의 차례.

둘째는 태어날 때 숱은 많고 길이는 짧은 머리였는데, 자랄수록 앞머리 길이가 달랐다. 눈을 찌르는 부분만 살짝 잘라서 길이를 맞춰주었다. 이 단 한 번의 커트로 자신감이 샘솟았는지, 앞머리 전체가 길자 앞머리를 또 싹둑, 잘라주었다. 아주 인형 같고 귀여웠다. 할 만하구만.


시간이 지나자 앞머리뿐 아니라 뒷머리도 길었다. (훗,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군.) 목욕시킨다고 들어가서, 과감하게 앞머리와 뒷머리를 싹둑싹둑 잘랐다.

자르고 나와보니, 뒷머리도 짧았지만 특히 앞머리가 이마 라인에 붙어 있었다. 읭?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기는커녕 웃음보가 터졌다.



웬일! ㅋㅋㅋㅋㅋ
어떻게 된 거야! ㅋㅋㅋㅋ



앞머리가 짧기만 한 게 아니라 옆라인을 침범했다. 짧은 앞머리를 보좌해줄 옆머리가 없었다. 이 정도 짧으면 보좌해줄 옆머리 따윈 쓸모없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첫째는 자꾸 기웃거리고 만지작대면서, 이상하다고 했다. ("이상하긴! 귀엽잖아~") 본인이나 타인이나, 옷/머리/신발 같은 거에 1도 관심 없는 남편은, 아이가 들을까 봐 나직하게 말했다. "좀... 심한 거 같은데." ("안 귀여워?")


그 주 일요일에 교회에 갔더니, 유달리 둘째를 예뻐했던 집사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언성을 높였다.



누가 그랬어? 응?
엄마가 그랬어?



진짜 혼나는 줄 알았다. "네... 제가... 자르다 보니..." 할 말은 따로 없지만 웃음을 참으며 대답하는데, 아이 머리를 매만지던 집사님도 웃고 계시고... 아이는 눈만 땡글.


사실 망쳤지만... 그런 게 어딨어, 머리카락은 또 자라는데. 그리고 암만 봐도, 내 눈엔 귀엽기만 했다.

이런 게 딸 키우는 재미(?)지, 아직은 내 맘대로 할 수 있지, 혼잣말에 고개 끄덕이고.




+) 그래놓고 셋째는, 그런 재미를 느낄 마음의 여유가 없달까, 시도할 시간적 여유가 없달까, 친언니(미용사)에게 맡겼다. 고민도 아쉬움도 없이. "그냥 확 쳐줘. 머리 빗겨줄 시간도 없어. 귀밑 1센티 정도? 앞머리도, 응, 짧게."

물론 내 눈엔 세젤귀. *.*



자른 지 무려 한 달쯤 뒤. 워낙 귀염상이라 괜찮았다,라고 엄마이자 육아 분야 전문가로서 주장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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