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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헤도헨 Dec 08. 2023

만약 너를 잃어버린 거라면

여전히 가슴은 뛰었지만,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잃을 게 없는 사람은 무서울 게 없다. 나도 그런 마음, 그런 눈빛을 가졌던 때가 있었던 것 같다.

아이가 생기고, 오만 가지가 두려워졌다. 아이의 삶을 그리다 보면, 내가 겪었던 고통에, 겪을 뻔했던 불행까지 떠올리고 미리 힘들었고, 앞으로 예상되는 어려움에, 상상 불가능한 고난까지 벌써 걱정됐다.


그러다 보면 한없이 겸손해지곤 했다. 내가 엄마로서 해줄 수 있고, 지켜줄 수 있고, 도울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이 험난하고 예측불가능한 세상에 '미미한' 수준이었으니까.

그래도 하는 데까지 한다. 곧 퓨즈가 나가버린다. 갈아 끼우길 반복하다, 어느 순간 아예 끊어둔 채로 지내기로 한다. 최선의 사랑을 포기한다기보다, 그런 쪽으로 애를 쓰는 것은 소용없다고 받아들인다.





임신 중에 품었던 어떤 걱정들은, 눈앞에, 품안에 아기를 보면 사라진다. 이를테면, 내가 사랑할 수 없게 생겼으면 어떡하지? 하는 것들.


반대로 분명해지는 불안과 공포도 있다.

첫째가 백일쯤 될 때까지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던 불안은, '이 아이를 떨어뜨리면 어떡하지?' 하는 것이었다. 목욕시킬 때, 엉덩이를 씻겨줄 때만 빳빳이 긴장한 게 아니라, 노이로제에 걸린 것처럼 머릿속에서 아기를 떨어뜨리는 상상이 저 혼자 시뮬레이션 되곤 했다.


그리고 때때로 말도 못 하는 아이가 아플 때, 열이 40도를 넘나들고 분수처럼 토가 나오고 하루에 열 손가락을 채워가며 설사할 때, 그 순간에도 공포가 엄습했다.


그러다 말도 곧잘 하고, 제멋대로 걸어다니고 뛰어다니면, 또 다른 가능성이 다가와 있다.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에 자주 갔다.

일단 집에서 걸어서 400미터 거리, 유모차와 아기띠의 도움을 받으며 아이들과 걸어갈 수 있었다. 도서관 안은 춥거나 덥지 않았고, 간단히 요기할 장소도 있고,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아기자료실' 같은 곳도 있었다. 아기띠를 풀고 나도 쉬고, 아이는 기어다닐 수도, 뒹굴 수도 있었다. 젖도 먹이고, 기저귀도 갈고, 소리 내어 책을 읽어줄 수도 있었다. 번잡스럽지 않고 적당한 활기가 있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책을 잡으면 잠깐은 멍때릴 수 있었고, 가져오는 책을 읽어주다 보면 시간도 잘 갔다. 책을 빌려 돌아오는 길도 뿌듯했다.

(엄마들을 편하게 해주는 거의 유일한 곳인) 백화점만큼 쾌적하진 않아도, 차림새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돈을 쓰지 않아도 괜찮고, 원하지 않는 충동에 사로잡힐 일 없고, 기 빨리는 사회적 상호작용에 지칠 일도 없이, 책도 만날 수 있어서, 내겐 진정 오아시스 같은 곳이었다.


첫째가 우리나라 나이로 이제 막 일곱 살이 된 어느 토요일, 남편과 아이들 셋을 데리고 도서관에 갔다. 지금 막내는 꽉 찬 일곱 살인데, 아직도 아기 같다. 그런데 첫째는 동생이 둘이나 있으니, 다 자란 아이처럼 대했다.


첫째는 어린이자료실에서 자신이 원하는 책을 골라 공용 책상에 앉았다. 남편은 둘째와 셋째를 데리고 어린이자료실 한쪽에 있는 아기자료실로 들어갔다. 나는 첫째에게, 아빠와 동생들은 저기에 들어가 있을 거고, 엄마는 2층(종합자료실)에 가서 책을 골라오겠다고 말했다. 벌써 책에 빠져든 첫째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 정도면 될 줄 알았다.


한참 책을 고르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혹시, OO이랑 같이 있어? 여기 안 보이는데...




뭐? 급히 1층으로 왔다.

첫째는 앉아 있던 곳에 없었고, 책장이 있는 곳을 다 둘러봐도 없었다.

혹시 혼자 화장실에 갔나? 어린이자료실 바로 앞에 있는 화장실로 뛰어가 이름을 불러보았다. 없었다.

어린이자료실에 돌아와 사서샘께 물었다.

"혹시 여자 아이 못 보셨나요? 일곱 살이고, 키는 이 정도고, 머리는..."

고개를 젓는 사서샘을 보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일단 둘째와 셋째를 잘 붙들고 있으라 한 뒤, 도서관을 뒤졌다. 로비, 매점, 지하 1층, 2층, 다시 1층...

없었다.



그사이 사서샘은, 남편에게 경비실에 가서 CCTV를 확인해보라고 했다. 그러려면 경찰에 신고한 후 경찰 입회하에 볼 수 있다는 말에, 남편은 그렇게 하겠다며 내게 전화로 알렸다.

"알겠어. 그럼 나는 밖에서 찾아볼게."


도서관을 나와 집 쪽으로 향했다. 실낱 같은 희망을 안고.

도서관에서 집까지 자주 다녔지만, 그리 복잡한 길은 아니었지만, 차도를 두 개나 건너야 하고, 아이 혼자서 다닌 일이 없었다.

아니, 그보다, 첫째는 똑똑했기에, 내 말을 언제나 제대로 알아들었기에, 책 보고 있으라는 내 말을 어기고 혼자 나왔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유괴 됐을까? 어쩌다 나갔다가, 길을 잃었을까?


두방망이질 치는 심장소리 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달린다고 달리는데, 다리가 후들거려 느리기만 했다. 내 몸도, 세상도 정지 화면 같은데, 머릿속에선 휙휙 오만 가지 생각이, 별별 장면이 다 떠올랐다. 실종된 아이를 찾는 사진 같은 것들, 수십 년 전에 잃어버린.


10분도 안 되는, 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시간에, 나는 아이를 정말 잃어버렸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집에 갔는데 없다면. CCTV를 봤는데도, 이 동네를 샅샅이 뒤졌는데도, 경찰에 신고하고 전단지를 돌리고 할 수 있는 걸 다했는데도, 결국 찾을 수 없다면.

그러니까, 내가 내 아이를 다시는 못 본다면. 이대로 영영 헤어진 거라면.


여전히 가슴은 뛰었지만,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아이는 떠돌다 엉뚱한 곳에서 삶을 이어가거나, 나쁜 사람에게 괴롭힘 당하다 금방 세상을 떠나거나 하겠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지만, 그 가능성이 어떠하든지 실제로 벌어진다면, 아무리 부당하게 느껴지고 이유를 알 수 없어도, 나로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살아갈수록 또렷한 현실의 이치가 내 앞에 떡하니 서 있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아이를 잃어버린 후의 내 삶, 우리 가족의 삶,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첫째 아이에게 남은 삶이 얼마큼이든,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든, 그러다 어떤 죽음을 맞이하든, 어쨌든 내가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건 없다. 만약 그렇다면... 아이는 지금까지 받은 사랑으로 살아가야 할 텐데. 충분할까? 그것을 기억하고 꼭 품고 살아나갈 수 있을 만큼?


나는 아니라고, 충분하지 못했다고, 잇따라 나오는 답을 막을 수가 없었다.





아이는 집에 있었다. 창백해진 얼굴로 식탁에 앉아 있었다.

책을 읽다 고개를 드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고. 나를 두고 갔구나, 싶어서 마구 뛰어 집으로 왔다고.

그 말에 또 마음 한곳이 가만히 주저앉았다.




OO야, 엄마는 너를 두고 가지 않아. 절대로.
알았지? 절대로.




남편과 나머지 두 아이들이 돌아오는 동안, 나는 첫째에게 말하고 또 말했다. 만약 엄마를 잃어버리면, (엄마는 절대로 널 두고 가지 않지만 혹시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일단 움직이지 말고, 그곳의 주인이나 경찰(보인다면), 혹은 (웬만하면 아이를 데리고 있는 여자) 어른에게 가서 엄마 잃어버렸다고, 도와달라고 요청하라고. 그게 어려우면 그냥 크게 울어도 좋다고.

그리고, 멘붕 상황에서도 틀리지 않고 줄줄 욀 수 있도록 엄마 아빠 전화번호와 주소를 다시 반복하게 했다.





6년쯤 된 일이다. 얼마 전엔 그때 찍어둔 영상을 보며 다같이 웃기도 했다. 그럴 수 있는 해프닝으로 끝나서 말 그대로 다행한 일이다.


이렇게까지 비장하고 싶진 않은데, 나는 아직도 그때 순식간에 적막해지던 세상과 다리가 후들거려 멀게만 느껴지던 땅바닥이 생생하다. 그리고 내 쪽에서가 아니라 아이의 입장에서,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지 붙들고 살 무언가를 내가 쥐어주지 못했다는 생각, 그 생각에 시려졌던 가슴이 잊히지 않는다. 한편으로 내겐 이 또한 다행한 일이었는지도.



그 세상에서 빠져나와서도 기억하렴. 엄마는 절대로 널 두고 가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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