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널이라 쓰고 인간극장이라 읽기

by 씀씀


집, 직장 모두 한강 북쪽인 내게 강을 건널 일이란 드물다. 안 가길 작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기 있는 거? 여기도 있는 이 도시의 편리함 덕에 갈 이유도 크게 있지 않기에 강남행이 잦지 않음에도. 한 두 달에 한 번, 아랫 동네에 가는 것은 본가에 가야 해서다.


산 좋고 물 맑은 강원도의 딸인 나는 부모님께 갈 때 버스를 탄다. 허니 나의 강 넘고 다리 건너는 남쪽 세상으로의 나들이란 뻔하게도 고속터미널이 그 목적지다.


맞다. 사방엔 보기만 해도 등골 휘는 아파트가 빽빽하고, 도로는 즐비한 차로 몸살이 지병. 에브리데이 민족 대이동 날인 듯한 인파와, 멈추면 지는 게임이라도 하듯 앞다투는 걸음들로 분주한 그 곳. 강남고속터미널.


극상의 혼잡도가 일상인 곳이니, 갈 때마다 피로도야 높지만 악감정은 없다. 오히려 변태같게도 고속터미널은 내게 원동력인 바. 궁금하고 흥미로운 미지의 곳이랄까. 그 이유를 인간극장 빙의해 말하자면 이렇다.


narr.) 오늘도 타인에게 무관심한 척 제 갈 길만 가는 씀씀씨. 하지만 그 속은 호기심천국이다. 마주치는 사람 따라 그녀의 질문이 달라지니, 헐레벌떡 앞질러 가는 분에겐 '자빠지실라. 몇 시 버스길래?', 짐을 한가득 든 앞사람엔 '나처럼 고향? 아님 여행?'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단다. 그럼에도 이런 궁금함 쯤 한두 번 일이 아니라는 듯, 아랑곳 않고 플랫폼을 향해 열심히 걷던 씀씀씨가 갑자기 멈춰 섰다. 축 쳐져 걷는 또래를 모양이다 ‘무엇이 저리 힘들까?’ 궁금도 한데, 일단 당장 달려가 힘내 친구!가 하고 싶은 눈치다.


이렇듯 나는 터미널에서의 지나침을 아주 잠깐씩 궁금해한다. 그렇다고 그걸 진짜 알려준다? 극구 사양하는 바. 난 무언가를 알고 싶은 게 아니라 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완벽한 초면의 행인들은 어떤 세계에서 살까 막연히 궁금해하는, 딱 거기까지만 하고 싶은 것.


내 호기심이란 그런 거다. 그래도 백 년이나 산다는 시댄데. 그 세월을 살면서 내가 겪는 사람은 우리나라 인구의 0.01%도 안 되는 수라니, 너무 야박한 거 아닌가 싶어. 나랑 무려 동시대를 살며 한 공간에 머물고 스치는 기적을 나눈, 그 쉽지 않은 생면부지의 한 명 한 명을 궁금해하기라도 해 보는 마음 같은 거랄까.


어느 이름난 외국인이 했다는 말을 본 적이 있다. 인간이 겸손해지는 방법은 여행이라고. 내가 세상에서 얼마나 작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고속터미널 역시 마찬가지. 여기서도 살면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겸손함 정도는 얼마든 체득 가능하다. 한정된 건물. 딱 요만큼인 타인의 인생에서부터 나는 길어야 몇 초 출연하고 말 뿐인 행인 1~1000 등에 지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런 경험을 외국도 아닌 내 나라, 것도 본거지란 곳에서 해버리면, 훨씬 잔인하고 초라하다. 좁긴 해도 깊고 안락하다 생각한 내 우물이 얼마나 낮고 얕았는가를 적나라히 알게 되고, 나아가 내 인생은 나만 주목하는 거였다는 사실에까지 가버리면, 그땐 세상도 별 게 아니어지니. 사는 거 장고, 숙고할 거 없다. 순간 선택대로 가버리자도 됐다가. 내 인생 어찌 된들 어디도 타격 없을 거란 사실엔 또 덜컥 세상이 무서워진다.


토요일. 친구들 만나러 고향에 간다. 이번엔 어떤 캐리어족을 볼까. 나는 어느 인생에 행인 몇으로 출연하게 될까. 완벽한 초면들과 치르는 나만의 상견례는 어떤 식으로도 남지 않지만 그래서 의미 있다.


나의 호기심을 누군가는 비웃을 수도, 혹자는 하등 필요 없는 짓이라 손가락질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더라도 그런 것이라도 뭐든 궁금해해 줌에 나에게 감사하다. 이유인즉슨, 흥미와 호기심은 분명 노화 예방에 강력한 효과가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는 장난이고.


나 아닌 것에 대한 관심은 나를 깊게 만드는 정성으로 쓰일 것임을 아는 까닭에, 내 아무것 아닌 호기심도 전부 소중하다.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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