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놈의 독감이 열흘째 ing.
아프니까 사라지는 게 많다. 활기, 의욕, 체력 등. 그중에서도 지금 내 기준, 가장 티 나게 사라지고 사라져 제일 아쉬운 건 단연 집중력.
근 한 달 큰 공백 없이 채운 이곳을 며칠 비운 것도 그래서다. 집중을 못 하니 쓰는 게 힘들어서.
누가 보면 무슨 대작 집필하는 유명 작가라도 되냐고 욕할 수도 있지만, 내겐 더없이 맞는 말이다. 내가 쓴 한편 한편. 내 마음 싣지 않은 게 없으므로, 나에게 쓰는 일이란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임이 틀림없다는 까닭에서다.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이야길 쓴다거나, 긴 호흡의 작품을 쓴다거나 하는 게 아님에도. 나의 씀에 집중력이 필요한 이유는, 내가 나를 오픈하면서 생활 밀착형 글을 쓰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주로 내 생각이나 일상의 부분을 갈무리해서 쓰다 보니, 무얼 쓰려면 글감을 발견하거나 글로 쓸 만한 거리가 되는 경험을 하거나의 둘 중 하나가 돼야 하는데.
근래의 나는, 균과 사투 중이니 잡념 따위에 쓸 여력이 없어 글감을 떠올릴 수 없고. 하루가 회사에서 허벅지 찌르며 버티거나 약 또는 아픈 기운에 취해 자는 거니, 글로 쓰고 말고 할 경험을 하는 일 역시 만무. 당최 집중한 생각도 경험도 없으니, 어디를 어떻게 턴들 쓸 수 있는 무엇이 나올 수가 없는 시간이었던 것.
그럼에도 지금. 딸랑 이 얘기를, 독감이 앗아가고 남은 내 유아 수준 집중력의 멱살을 잡으면서까지 굳이 쓰는 것은, 이런 글도 추억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 산만한 글을 창피한 줄도 모르고, 독감을 방패 삼아 썼었구나 보면서, 내게 기본적으로 있는 집중력에 감사하게도 될 것 같고. 아픈 건 무서운 거다 건강 잘 챙기자 철도 들 것 같고.
그것 말고 다른 이유라면 나도 모르는 새 루틴이 됐나 보다 여기가. 난 진실로 일과에 루틴이라 할 게 없는, 그런 걸 잘 만들지 않는 애인데. 정말 그날의 컨디션과 의식의 흐름, 즉석에서 들어오는 나의 주문에 맞춰 하루를 운용하는 신기하고 특이한 애인데. 고 며칠 안 들여다봤다고 손이 근질거리고 눈에 아른거리니. 하, 어쩌려고.
루틴화라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 여기기에 마냥 달갑지만은 않지만. 브런치 네가 감히 내 하루에서 일정 시간, 어느 영역을 차지한 거라면 일단은 받아들이겠어. 진위 여부는 독감부터 떨구고 다시 얘기하자.
이 우라질 놈에 독감도 절정을 지나 결말에 다다른 것 같으니, 낫는 대로 예방접종 하러 가야겠다. 기사에서 보니 지금 두 가지 유형의 독감이 유행이라는 게 아닌가. 그래서 하나 걸렸어도 다른 하나를 걸릴 수 있다 하니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심지어 이번 독감은 봄까지 기승일 거라는데, 진심 호환 마마보다 무섭다.
최고의 예방법은 안 걸리는 것. 내가 남은 독감 하나에 만큼은 최선을 다해 걸리지 않겠다. 나의 이 작고 소중한 면역력으로 상대하기에 이번 독감 너어는 진짜.
한국인은 밥심. 나는 쓰는 일에 진심.
체력이 국력. 나한테 체력은 필력.
건강이 재산. 내게 건강은 넘어야 할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