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엿한 현대인인 내겐, 이 시대 필수품과도 같은 '루틴'이 없다. 안 가지려 노력한 건 아닌데, 며칠 전 썼듯 워낙 순간의 내 주문을 우선하다 보니 그리 된 듯 하다.
이렇게, 당장의 컨디션과 감정에 충실해 산다고 하면 자칫 오해를 살 수 있겠지. 혹시 살아지는 대로 인생 소비하는, 나사 빠진 라이프 스타일인 거 아니냐고.
아닙니다. 그렇게 인생 찐으로 즐길 위인이었다면. 지금처럼 내 생활양식을 글로써 정리해 보는 참된 시간을 가졌을까요. 이건 너무 점잖고 격식 있는 걸요.
그렇다고 해서 루틴이 없진 않다. 생각해 보면 24시간을 매일 다르기가 더 힘들 일. 그래선지 내게도 매일의 규칙적 행동이 있긴 하니. 평일의 경우, 비슷한 시간의 기상과 출근, 퇴근. 일어나서 물 한 잔 마시기 정도다.
일어나 이부자리 정돈. 커튼치고 기지개를 켠 뒤 오디오 음악 플레이. 그다음은 커피 내리기와 같은 미디어에서 주입시키고 나와 다른 품격 있는 여성들이 투영한, 고즈넉이 여는 하루의 시작 같은 거? 없다.
영양제도 안 먹으니 거기서 챙길 박자감 없어, 숨쉬기 빼곤 운동도 안 해. 루틴이 있다 하면 오히려 신기할 수도 있는 일과. 근데 이 팽팽하지 않고 약간 느슨한 사이클이 내겐 더없는 안정이다. 마디마디 짜여진 틀 없이 사는 하루가 알맞게 편안하다.
루틴 경연대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있다한들 나갈 것도 아닌데. 남들 하는 거 구색 맞추겠다고 없는 거 만들면서 지내고 싶지 않으니,
지금 그대로를 얼마든 만끽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이 방식은 해야 할 도리와 구실은 성실히 이행하며 사는 내게, 스스로가 허용하는 최소한의 자유이지, 될 대로 되라며 두 손 놓은 방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비주류인 비루틴파가 된 데는 자유와 편안함도 한몫했지만 거기엔 사실 다른, 가장 큰 이유가 있다. 루틴이 없으면 내 일상과 헤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
내게 루틴을 길들여짐이다. 길들여진다는 것은 대상 불문, 깊고 묵직하고 거대한 서사. 해서 쉽게도 많게도 하고 싶지가 않다. 가족, 연애, 베개, 하다못해 버릇까지. 우리 모든 일, 우리 모든 게 다 길들여짐의 연속과 반복이고, 언젠가는 그것과 어떤 식으로든 분리되는 경험임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길들여졌던 것과 따로가 되는 일. 이별, 졸업, 이사 등등의 모든 작별과 성장들은 찬란하지만 슬펐던 바. 길들여지는 것이 두려운 나는 내 일상이 아주 최소한의 규칙만으로 무리 없이 돌아가기를 소원한다.
하루를 받쳐주는 동력이자 일과의 체크리스트가 되는 루틴을, 상황이 달라지고 환경이 변해 못 하게 된다면, 결국 내 마음엔 결핍과 불안이 자생할 것이므로, 나는 내 하루에 날 길들일 규칙을 만드는 일이 조심스럽다.
어겼다고 벌금 내는 것도 아닌, 나만 아는 소소한 스케줄임을 잘 앎에도 그러는 걸 보면, 아직은 스스로 정형화되어 살기 싫어서인 것도 같고.
“성공한 사람들은 다 규칙적인 생활을 해" "네가 그런 생각이니까 여기까지 밖에 못 왔지"라고 귀에 인이 박히게 말을 한다면 그래서 뭐 어쩔. 내가 추상화처럼 살겠다는데. 콧방귀 흥해주면 될 일이다.
아. 마지막으로 이걸 쓰게 된 이유. 그런 내게 브런치 네가 감히 루틴이 돼버렸다? 두어 달 지켜본 결과는 일단 그렇네? 아니 뭐 그렇다고. 알고는 있으란 거지. 영광인 줄 알아라 그런 말은 아니니까 부담 갖진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