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드는구나, 들었구나를 느꼈던 지점들이 있다. 잔잔바리까지 다하면 셀 수도 없겠지만, 세월은 자동으로 기록되지 않는 흠이 있는지라. 여태 살아있는 기억은 딱 몇 개. 처음 그 느낌을 받은 건 대학교를 간 이후의 일로, 나이 먹어감을 자각하게 된 것에 관한 기억은 그때부터 순차적으로 이어진다.
1. 교복 입은 사람은 무조건 나보다 어리다는 사실을 깨닫다
2. 외국에 키다리 아저씨가 있다면 내겐 군인아저씨가 있었다. 헌데 그 유일한 아저씨가 더는 아저씨 아닌 군인 친구, 군인 동생이 되더니 현 기준으론 군인 조카...가 됨을 발견하다
3. 넋 놓고 보던 가요프로그램에서 난해함, 시끄러움을 느끼다
4. 방구석 1열에서의 본방사수가 디폴트던 연말 시상식을 다음날 수상자 명단으로 보거나, 보고도 수상작과 수상자를 모르다
5. 회원 가입 시 생년월일을 요구하는 경우, 생년에서 내 출생 연도에 이르려고 스크롤을 한참 내리다
6. 연휴 전야면, 칼퇴해 4차까지 갔으면 갔을 애가, 4차가 아니라 4차원스럽게 야근을 하겠다고 회사에 남아 청승, 궁상, 꼴값을 떨다. 연휴 전일인 오늘. 지금. 이 순간.
6번 중요하다. 말해보자. 이러는 이유가 있을 거 아냐. 갈 집이 없냐. 만날 친구가 없냐. 쓸 돈이 없냐. 쌓인 피로가 없냐.
말하겠다. 다 있다. 다 가진 몸이다. 없는 거라곤 딱 하난데, 회사서 할 일. 그건 없다. 근데 그것도 없는 현시점에, 나 왜 변태처럼 남기를 자처하여 이거 깔짝 저거 깔짝하다 여기에 정착한 걸까. 고민해봤으나 알다가도 모르겠어 알지 않기로 했다. 알아봤자 별 쓰잘 데기 없는 것일 게 뻔해서.
오케이. 그럼 다음. 이 글의 요지는 나이를 먹었다고 느끼게 된 순간에 대한 토크일까, 연휴전야에 회사에 남은 내 이유 모를 선택에 대한 추적기일까. 정하려면 정할 수 있지만 정하지 않기로 했다. 고심해 선택해 봤자 그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을 게 뻔해서.
그럼에도 누구도 묻지 않은 그 내막에 대해 고해본다면 이렇다. 연휴 동안 컴퓨터 앞에 앉을 일이 없을 것 같아, 뭐라도 끼적이려고 들어온 길. 그러나 내가 소재 자판기도 아니고, 버라이어티 하게 사는 별천지 사람도 아니며, 공상가 철학가도 아니니, 지금까지 쉬지 않고 그렇게 써댄 마당에 쓸 게 있을 리가.
하지만 내가 누구? 쓰기에 꾸준하기로 마음먹은 몸. 해서 머릿속에 널브러진 것들 중 눈에 띄는 것을 골랐는데 하필이면, 어김없이 그게 또 그놈에 나이고 난리.
마흔 타령은 내가 다 지겨운 데다, 마흔 된 게 마냥 싫은 것만도 아니기 때문에. 나이 카테고리를 더 뒤져본 결과, ‘나이 들었다 느낀 순간들 모음'을 보았으니. 오늘은 이거다 하며 단순하고도 호기롭게 두드린 키보드가 여기에 이르고 만 것이다.
지금 심정, 참담하다. 원래 글을 이렇게 산으로 보내지 않는데. 쓸 게 없는데 쓴다는 건 역시 힘들다. 없는 걸 써내는 것 또한 힘들고. 창작이 괜히 고통이 아니다.
이쯤 되니 이제 쓰기 위해서라도 좀 버라이어티 하게 살아야 하나 싶어진다. 글을 위해 이 한 몸 불살라? 이참에 닉네임도 글 쓰는 불나방으로 바꿀까. 현생 그렇게 못 사니 글생은 화끈하게 살아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은데. 아무래도 여기서 그만해야 할 것 같다. 사람이라면 여기까지 하는 게 맞다. 의식이 아무리 정처 없이 흐른대도 이렇게 방향성이 없는 건 문제가 있는 거고, 그걸 필터 없이 그대로 쓰는 너는 더 문제가 있다.
이 글은 어디서부터 잘못되기 시작했을까. 손 보고 싶지만, 날 것 그대로 두련다. 이것도 엄연히 나의 씀이다. 이렇게 또 하나의 가능성을 본 것이다. 나는 소재, 주제, 의도, 결론... 무엇 하나 짐작할 수 없는 글도 쓸 수 있다. 즉, 흰 바탕과 한글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음을 다시금 확인했다는 뜻. 어디 그뿐이랴. 그와 동시에 내가 나이가 들었구나 하는 일곱 번째 순간과도 마주했으니.
7. 하늘을 그리라면 무조건 하늘색으로 칠하고, 바다를 그리라면 무조건 파란색으로 칠하던 것이 하늘을 회색으로, 바다를 청록색으로 여길 줄도 알게 되다.
무슨 말인고하니, 나이가 들면 어떤 것을 액면 그대로만 받아들여 그것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이면을 보거나 다른 차원의 해석을 하는 여유. 더 유연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수용성을 갖게 됨.
내가 이 글을, ‘이것도 나의 씀이다. 또 하나의 가능성을 봤다. 소재, 주제, 의도, 결론. 무엇 하나 짐작할 수 없는 글도 쓸 수 있다'라며 정신승리한 것이 그 증빙.
이 글 장르가 뭘까. 호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