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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불편한 사람 한 명 쯤은 있는 거잖아요

by 씀씀


나도 여자면서 이런 말 외람되지만, 주제넘지만, 경우 없지만. 같은 여자끼리, 사람을 너무 닦아댄다. 같은 여자가 더 치댄다. 너한테 있는 거 나한테도 있고, 너가 하는 거 나도 할 줄 아는데. 왜 아닌 것처럼 모르는 것처럼 다른 것처럼, 서로 볶아대고 볶이게 할까. 여자의 내면세계는 여자의 사회생활은 골 아플 때가 많은 것 같다. 위 아 더 월드, 정녕 안 되려나?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것 같아 조심스럽고, 이게 필시 여자의 문제만도 아니겠고. 다만, 내가 여자라 여자의 일들을 겪고 접하는 일이 많은 까닭에 여자로 대표 잡은 것이지만, 이게 마냥 허무맹랑한 소리만도 아닌 게, 내 경우가 아니어도 친구 회사든 친구의 친구 회사든 참, 여자들은 다 비슷하게 피곤한 것 같으니 말이다.


직장 원투데이 다닌 것도 아니고 이 회사 저 회사에서 여러 인간 군상도 겪어본바. 직장 생활 해봤으면 다 아는 사실을, 마치 인류의 발견이라도 한 마냥 이러는 이유는, 두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날 갑자기 개안을 한 듯, 번쩍 정신이 들고 시야가 밝아지고 무언가 명확해졌는데 마침 그때가 나이 앞자리가 바뀐 직후였다. 겉으론 나 마흔이야? 헐하며 요란스러웠지만 속은 세상 평온. 비로소 정돈되는 느낌이 얼마나 좋던지. 일상과 사람을 대하고 생각하는 지평이 한 뼘 정도 더 열린 느낌을 받은 건 그때부터였다.


새해엔 어떤 여행을 하겠어, 일기 쓰기 습관을 들이겠어, 운동을 하고 말겠어 등등의 버킷 리스트가 아닌, 지금부터의 인생에 생긴 새로운 목표는 누군가를 기피하는 마음을 버리겠다는 것이었다.


직장에 반드시 있을 수밖에 없는 관계가 있다. 공자, 맹자 같은 성인이라도 이건 어쩔 수 없다 싶은 개연성을 가진 감정. 너무도 타당한 이유에 근거하여, 불편한 게, 미운 게, 싫은 게 당연한 사람.


나 또한 마찬가지. 헌데 이번에 먹은 나이 한 살에, 나는 그런 사람을 갖고 있는 일이 너무 고단해졌다. 이유 불문. 누군가를 불편해하고 미워하고 싫어하는, 해로운 마음에 에너지를 쓴다는 것에 현타가 왔다. 지쳤고 지겹고, 매우 비생산적인 데다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좋지 않은 것을, 굳이 나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즉시, 그런 관계에 세 주었던 내 마음의 칸들은 소리소문 없이 방을 뺐고, 괜히 서로 신경 갉아먹으며 스트레스를 나눠 가질 사람에겐 손을 내밀었다.


나라고 자존심 없고 잘잘못 따지는 계산기 두드릴 줄 모를까. 어떨 땐 나보다도 사정 아는 남들이 벨도 없냐며 뜯어말렸지만 자존심도 셈도 필요없었다. 사람 좋아하는 일보다 미워하는 일에, 더 정성이 필요하고 기운이 들어간다는 걸 알았으니까. 미움 받는 사람보다 미워하는 사람이 더 힘든 거였다.


해서 누가 더 잘못했고 먼저 잘못한 것인지, 이 불편함의 인과관계를 따져보는 일은 더이상 의미를 갖지 못 했다. 난 이제 너 그만 불편해 할래. 네 맘은 네가 알아서 해. 난 더이상 너를 싫어하지 않겠어. 너로 인한 스트레스도 이제 없어. 고백이자 사과인 일종의 선언을 하면, 웬만한 응어리는 그렇게 바람 빠진 풍선이 됐다.


업무 강도보다 인간관계 강도, 노동보다 감정 노동이 빡셀 때가 많은 사회생활. 일하러 돈 벌러 다니는 곳에 일보다 말이 많고, 버는 돈보다 스트레스가 많으니. 어디 나뿐이랴. 다 그러겠지.


모두와 잘 지낼 순 없어도 누구와든 불편하고 싶진 않다는 생각이 들어버렸고, 내 마음 해치려고 남이 깔아놓는 판에서 칼춤 추며 똑같이 미움 주고 누군가에게 스트레스가 되는 일을 그만하고 싶어졌더니, 남들의 그런 신경전을 듣는 일에도 내 피가 말랐다.


그래서 말인데 그러니, 부디 모두여.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처럼, 감정도 관계도 그렇다는 것을 아는 지성인들이니만큼, 우리 이렇게 해봄이 어떻겠나이까.


-시기 대신 동경, 걱정 보단 격려, 질투 말고 인정.

-궁금한 건 당사자에게 질문.

못 묻겠거든 안 궁금해하는 게 정답

-갑질은 스토킹.

하는 사람은 모른다, 당하는 사람만 알지

-여우짓은 깔끔하게 나를 위해서만 하기

남을 망가트리려고 해선 안 됨

-업무 분장도 계약서.

친해졌다고 만만하다고 넘기고 발 빼면? 고소감

-요리할 때도 안 치는 조미료,

말 옮기면서 치는 건 무슨 경우

-누가 한 일인지 너만 빼고 다 안다.

명의 도용, 명의 이전 비매너 비매너. 등등등


다닌 지 오래돼서 기억은 안 나지만, 이런 거 유치원에서도 안 가르쳐줬던 걸로 안다. 왜겠는가. 기본 중에 기본이라는 거지.


이러는 나라고 완벽한 부하직원이고 동료겠냐만, 내 사회생활은 클린하고 퍼펙트하겠냐만, 적어도 게으르고 비겁하고 모질게 마음 써, 누 되고 폐 끼치고 상처 주는 일은 없도록 주의하는바. 속은 무슨 생각일지 몰라도, 웃는 얼굴 했으면 뒤돌아서도 그 얼굴 그대로인 사람들일 수 있다면 모두 조금은 편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다 외로워서 그런 거라고 본다. 저만의 외로움들이 다양한 형태로 고착화된 것일 뿐. 소외되기 싫고 상처받기 싫어 나를 보호할 벽을 단단히 둘러 세운 것일지도 모른다. 근데 나를 지키는 일에 요령이 없고 서툴러, 썩 좋지 않은 감정과 방식들로 표출되는 거려니.


해서 나는 개개인의 그 벽을 서로가 조금씩 허물어도 주면서, 누구도 온전히 평화롭지 않은 감정 소모로 쇠약해지는 일을 다 같이 멈추기 위해 노력하면 좋겠다 싶은데. 어렵다. 여기는 그 벽을 허물기보다 선을 넘기가 더 힘든 세상이다.


직급의 선, 나이의 선, 직함의 선, 매일 봐봤자 그래봤자 여기 모두는 그저 회사 사람이라는 선.


휴전선도 아니면서 진짜 다들 혼자여도 되는 척. 센 척 오진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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