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트 치거나 사고 치거나
손뼉 치거나 후려치거나
맞장구치거나 뒤통수치거나
선수치거나 뒷북치거나
합치거나 해치거나.
늘 생각했다. 저 위에 조물주이신지 누구신지 몰라도, 얘네 얼마나 골치 아프게 살아댈지를 아니까 성별도 남녀. 딱 두 개로만 구분 지어 놓은 걸 거라고. 딸랑 두 개로도 이렇게 다이나믹한데 성별까지 +a였어봐. 어후, 대혼돈 그 자체. 사는 게 곱곱절은 힘들어졌을 터.
심플 이즈 베스트고, 튜닝의 끝은 순정에 클래식은 영원하다는 마당에, 절대로 산다는 게 고난일 수가 없다. 애초엔 고난이 아니었을 거다. 정말 단순하고 평이할 일을, 인생이란 시스템의 사용자인 우리가 시간이 남아돌아선지 에너지를 주체 못 해서인지, 복잡하고 어렵게 셀프로 심화시켰을 확률이 매우 높다고 본다.
요새 나는 뭐가 꽤나 바쁜데 짬만 났다 하면 이런 명상을 가장한 망상을 한다. 근데 그 망상대로만 내가 살아진다면 너무 좋겠다 싶다. 짬짬이 하는 그 생각을 모아보면 인생 진짜 별 게 없기 때문.
즐거우면 웃으면 되고 슬프면 울면 되고. 웃는 날이 많으면 지금 행복한 거고 우는 날이 많으면 당장은 힘든 거고. 부자이고 싶으면 돈 열심히 벌고, 열심히 놀고 싶으면 부자 되길 포기하면 되고. 그런 거랄까. 이거 아니면 저거고 이거면 이거고. 그래도 뭐, 왜.
하여 나는, 사는 게 버겁다는 건 내가 욕심을 부리기 때문 아니면 내가 1인분 이상의 욕을 보고 있기 때문이구나 하는 잠정적 결론에 도달했고. 그 다음 스텝은 잔인하고 나태하고 참 무의욕적인 말이 될 수 있겠지만,
이 땅에 백 개의 행복이 있다면 그중 내가 굳이 아등바등하지 않고 체감할 수 있는 행복이 몇 개인지를 세고, 가진 행복의 바운더리 안에서 두 발 뻗고 눕는 것에서부터 살기 시작하자는 생각에 정착했다.
그 안에 누워 바라보노라면 내 선 밖에 놓인 못 가진 행복이며 남의 행복이 보이지도 않을 텐데. 내 마음이 크게 간섭받을까.
안다 물론. 다수가, 일단 나부터가 내 건 욕심 아니야. 약간의 노력이고 작은 희망! 하겠으나, 무이자 서비스 못 받는 할부는 욕심이다. 마이너스 통장? 마음에 마이너스다. 갚을 능력이 돼서 빌렸다고? 갚느라고 몸 갈리면 그 희망은 선 넘은 거다.
고로 우리의 요즘에는 다 채워 배 가르는 기쁨을 주는 돼지저금통 같은 희망보다, 몇 개월 몇 년의 시간과 체력을 담보 내주고 강제 실현하는 기묘한 희망고문이 많다. 아니 고문희망. 선 고문 후 희망.
무얼 이루기에 내가 가진 게 모자라면, 찰 때까지 남은 그 찰랑 말랑 하는 공간의 감질맛을 살아가는 동력 삼으면 좋겠고, 나한테 있는 걸로 이루고 넘칠 정도면 넘칠 것들은 넘치기 전에 모자라 하는 곳에 나누면 좋겠는데. 왜 돈 버는 투자는 겁나 다양하게도 프로그래밍 돼있으면서, 사람 마음 부르게 하는 시스템은 책 말고 경험 말고 없는지, 슬프다.
어느 하루 내 마음 성하다 싶으면 다른 사람은 또 어떤 일로 힘들었는지 마음 성치 않기를 보고 듣고 눈치로 알기를 매일. 사는 게 그 반복이고 연속인 것 같다. 다들 이 피 말리는 사이클을 어디서 나는 힘으로 견딜까.
가끔 뉴스 보면 전기 아끼는 차원에서 어느 아파트에서 1분간 전등 소등하고 하던데. 그런 날 있으면 좋을 거 같다. 한 시간이라도 나를 제외한 모든 것으로부터 off. 온전히 나에게 집중함과 동시에 타인에게도 완전한 자유를 줄 수 있는 시간. 있다면 그건 정말 국경일 말고 사경일. 이 사회에 경사스러운 날이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