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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 했습니다. 친애하는 나의 구독자님들아

by 씀씀


어그로는 아닙니다.


다만, 제목에서 풍긴 무드는 마치 “자니?”라고 물어야 할 것만 같은데. 저도 민망과 무안이 뭔지를 아는 사람인지라 그렇게는 못 하겠습니다.


호기롭게 아닌 취기롭게 쓰는 이 글이 과연 얼마망큼의 시간 동안 열려있을진 모르지만 일단 고해볼게요.


저는 여섯 시에 칼퇴를 하고 그 빡신 퇴근 정글을 살아 남아 모처럼 한 잔 했습니다. 모두의 퇴근길이 정글이겠습니다만 저의 퇴근길이 특히 그러해 강조 좀 했습니다. 저 다니는 회사 위치가 요즘? 뭘 하기에도 빡빡하거든요.


제목부터 또 글 시작부터, 취중진담 선언을 한 탓인지 글에서 은은히 묻어나는 알콜향을 느끼셨을 거예요. 근데 놀랍게도 마신 술이라곤 둘이 소주 한 병… 그마저도 한 병을 비우기 무섭게 야야 일어나 내일이 코앞이라며 서둘러 일어났지 뭡니까.


네. 그러니까 저 지금 겨우 반 병 마시고 이러고 있는 거예요. 실화인가. 아, 젊음이여 객기여 체력이여.


쏘주 반 병에 이성의 끈을 놨을 리 만무하지만, 컨디션 난조(365일 컨디션 난조ㅋㅋㅋ)로 띠리해진 김에 오늘이 날이다 생각하고 에라 모르겠다! 지르고 보려 합니다. 구남친도 아니고 구독자분에게 받치는 나름의 럽레터. 아. 여기서 구가 옛 구자 되면 안 됩니다 정말.


저는 일기도 안 쓰고 에스엔에스도 안 하고 그렇다고 뭐 여기저기 미주알고주알하지도 않는 애라. 어떻게 보면 되게 세상에선 깜깜무소식인 애인데. 그래도 여기서는 그나마 엄청난 생존신고를 하는 중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여기가 제게 남다른 공간인 이유는 충분한 것 같아요.


그런 곳에서 제 딴엔 제 생각, 마음속의 딥한 얘기를 되게 떠들고 있다 여기지만, 그 와중에도 제 신상은 어떻다 특정이 안 될 정도로의 얘기만을 하는 지라 약간 갈증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런 저의 행태는 세상이 저를 중심으로 돌아 왠지 이리저리 돌려 써도 나를 알아볼 것만 같은 불안 때문은 아니구요.


딱 한 곳 여기에 그나마 떠들었는데 하필이면 그걸 읽는 몇 안 되는 사람이 나를 아는 사람일까 봐. 그 말도 안 되는 불운이 내 차지일까 봐 글에서도 눈치를 보고 나를 사리게 되더라고요. 해서 더 재밌게 쓸 수 있는 데도 못 쓰고 쳐내는 아쉬움이 어마무시합니다.


하나 더 아쉬운 건 제가 브런치의 트렌드랄까요. 그런 걸 잘 모릅니다. 알려면 한 시간이면 알겠지만, 저는 그냥 쭉 모르려고 합니다. 어설프게 흉내 내서 이도저도 안 되느니 그냥 비주류로 살려고요. 그러겠단 고집에 다른 분 구독도 안 하고 이러코롬, 정말 제 해우소처럼 저를 비워내야 할 때 들렀다가 떠나고 있습니다.


안물안궁. 이런 티엠아이를 왜 얘기하냐면요. 브런치를 이리저리 안 둘러보더라도 로그인하면 홈이 먼저 보이잖아요. 그러니 저도 한 번씩 홈에 뜬 리스트를 쭉 내려보는데 그러다보면 와, 내 건 뭐가 겁나 없겠구나. 내지는 엄청 촌스럽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지 뭐에요.


네. 그런 생각이 들면 생각을 합니다만, 역시나 오래 안 가져갑니다. 제가 시류에 맞는 얘기할 만큼 연륜 경험 테크닉이 쌓인 애도 아니고, 브런치 입맛에 맞는 글 쓰자고 이거 시작한 거 아니니까요.


저는 그저 무한히 무작정 씁니다.


그런 저의 세련되지 못한 여정. 되고 말고 쓰는 일에 묵묵히든 무지성이든 무심코든, 왔다 가주시는 분들이 계셔주니, 내심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르겠습니다. 특히나 몇몇 분들은 제가 그 닉네임을 알겠으니. 이 내적 친밀감…. 삼성만 또 하나의 가족이 아닌 걸요.


전에 만나던 사람과 힘겹게 헤어지며 이별해내려고 꾸린 이 공간이, 제게 든든한 대나무 숲이 됐습니다. 그 대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돼주신, 오늘 보니 예순 그루의 나무님들. 복 받으실 거예요. 아울러 누추하게 모셔서 송구합니다.


이런 글은 엄청난 구독자 둔 유튜버도 안 쓰지 않나 싶은데, 인생은 한 치 앞을 모르는 거라고 생각해 표현 많이 하고 살자는 주의라. 이 야밤, 물의를 일으킵니다.


저는 내일 미라클 모닝 날이라 이제 그만 정신 챙기고 수면제 호로록 먹어볼랍니다.


모두 오늘 밤도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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