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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숙녀 Dec 04. 2023

라떼는 말이야, 사실은 참 외로운 말


"라떼는 말이야" 

꼰대의 네임택으로 여겨지는 말.


유머인양 돼버렸지만  유머이지만은 않은. 시대와 세대를  때라면 그럴 수 있는 거여도 '라 떼'면 일단 고리타구분 짓고 보는. 결국 선천적 뜻보다 후천적 해석이 말을 잡아먹은 아주 묘한 말이라고, 나는 풀이한다.


그런다면서 어르신의 라떼를 들을라치면 부터 는 건... 띵행불일. 이럴 때면 자기반성과 함께 뇌가 인간 신체 기능 관장하  맞나 의문을 갖는다는 고백도 하는 바.


애니웨이. 이런 내가 한 번은 글쎄 이 말  구슬퍼. 대체 왜? 문 모를 감정의 원인을 알아야했다.


낼모레 불혹이니, 나 역시 혹자에겐 꼰대 나이이자 그 말이 겉돌지만은 않 예비 꼰대라 그런걸까?


반박 하겠지만 반박 하고 싶어지기에 지금 내 꼰밍아웃 여부가 중한 건 아니라 어렵게 줄 잡으, 라떼는 말이야가 별별 감정선 끝에 구슬픔으로 갔던 이유를 나는 이렇게 정리했다.


라임 살린   표현에, 시대 잘 만나 유명세도 톡톡히 치루제법 잘 나가는 것 같지만 그래봤자 언어학 쪽에서의 포지션은 개그캐&꼰대캐 녀석.


근데  자꾸만 그이 녀석의 전부, 진짜 아닌 것 같지.  이 모이지만, 따져 보면 사실 장히 유서 깊은 가문의 혈통 거 ? 이를테면 그리움을 가풍으로 둔 일가의 후이고 뭐 그런  있잖아. 하는 생각에 시달리기를 수...분. 내 밑도 끝도 없는 감정의 기원을 알았니,


그 족보를 좇자면 아주 멀, 오래가야 할  터라 내가 아는 가장 가까이에서 그 역사를 꼽아보자면 렇다.


<생각만 해도 사람을 아득히 촉촉해지게 만드는 유전자를 나눠가진 말들에 대하여>


처음엔 '옛날옛적에'로 시작했던 것이 얼마 안 가 '그땐 그랬지'가 되더니,  유행가에선 '1994년 어느 늦은 밤', 른 곡 에선 '그 해 여름'이라는 글자를 빌렸다.


추상적이고 건조하던 것이 명확하면서도 고급스럽게, 거기다 감성적으로 변 것. 


헌데 보다는 위대한 문자를 나라말로 가진 덕, 생김은 다르면서 결은 같 하는 말을 무수히 가진, 표현의 부를 누리 사는 결과해석이 더 맞을 테고 말이다. 리고 지금 드는 생각은 내일 퇴근길에광화문 광장에 들러야 할 것만 같은 뭐 그런 거고.


다시 라떼의 신세가 구슬퍼진  이어가 본다면 핵심은 거기에 있었다. 얘도 분명 그 집 핏줄이라는 거.  정서는 의심의 여지 없는 그리움진대! 얼핏은 훈계 같고 어떻게쩌라고 싶은 무용담, 또 많은 때엔 이 모든 걸 가장한 자랑... 같으니 문제것.


훈계랑 무용담을 가장한 자랑이든 뭐든 결국 바탕엔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된통 깔린 것인 거늘,  떻게 오해를 이렇게 직살나게 받을 수 는 거지?


이게 다여도 불쌍 마당에 조상들의 삶과  비교면 구슬픔은 한층 더 레벨업다. 후손 라떼는 단단한 오해를 받으며 조롱과 무시 속에 살지만, 그 조상들은 아니었 때문. 


옛날옛적부터 그 해 여름까지.  한 번의 저항 없이 과거로 스미게 하는 주문과 같은 이 말들 대다수가 열광했. 그들의 사회성은 실로 굉장했다.


어느 대상과 만나던 미친 시너지를 보여줬는데, 예를 들어 말들이 멜로디 만났다? 그리움은 그때부터 연중무휴. 노동법 위반이 우려될 정도였고.  말들이 곱디고운 청춘남녀의 얼굴 혹은 쓸쓸한 노년의 뒷모습과 만난다면 마음은 벌써 잠금해제. 사연도 모르는 그들 감정에 너도나도 동기화 돼버렸으니 개인정보 유출이 걱정될 지경었다고 하면 될까.


생각이 거기에 미치니, 나한테 얘 신세가 어찌 안 처량할 수가 있을까.


라떼는 말이야란,

누군가에게 건넨 대화인데,

하면서는 독백이하고 나선 잠꼬대마냥 들은 이 없 돼버리는 가여  것.


나 사는 게 바쁘고 중하니, 나한테 필요한 게 아니다 싶으면 절로  필터링되고 관심·

집중·공감… 그 투자도 자동 on/off 되는 매정 하루. 하물며 이젠 그마저도 숨소 없이 목소리만 내는 AI가 이 사람 저 사람을 대신하는.  말을 넘어 나를 나눌 '사람'이  귀한 세상에서,


라떼는 말야는 ' 시절이 그리워' '랑 대화하고 싶어' '나도 그런 때가 있었어'라는 마음을 런 티 덜 내며 건네고 싶을 때 쓰는 말이 아닐까? 만-에 하나 아무도 대꾸를 안 해 민망하더라도 그저 시쳇말 한 번 해본양 해버리면 그만이니까 말이다.


물론 아닐 수 있다. 밈 같은 것일 수도. 근데 나는 어쩌면 대부분의 라떼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 마음이 몹시나 동했다.


이렇게 정리가 되었으니 내일부터 무수한 날. "라떼는 말이야"라고 하는 이가 있다면 엇 할 게, 미간을 찌푸릴 게, 웃을 게 아니라 잘 들어줘야겠고 마음 잡는다.


필시 그 사람은 훈계하자는 것도 자랑하자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이것. 그때가 그립거나 지금이 외롭거나,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하거나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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