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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숙녀 Jan 27. 2024

숙녀의 버킷리스트. 정신과에 가다 1


2023년의 끝.

해 동안 나 자신 너무 애썼다며 노고를 치하기 위한 선택으로, 여러 나님들이 해외로 백화점으로 호텔로 종횡무진하던 그 연말.


내가 찾은 곳은 정신과였다.




정신과. 풀네임 정신건강의학과. 


이하터는 마음과로 그곳찾은 이유는 나 역시 그들과 같았다. 사랑하는 내가 그리고생했으니 잘했다 우쭈쭈 오구오구 해기 위.


누군가는 무슨 자기애 확인, 자존감 충전을 마음과에서? 갸우뚱할 수 있을 수도 있는바,

그 혹자 선 회신 드려놓겠다.


"는 만큼 보인다잖아요. 겪은 만큼 느끼더라고요. 조금 더 이 꼴 저 꼴, 아 제 꼴 겪어보시면 공감하실 날 올 거랍니다. 물론 비추지만요"


이렇게나 고요했던 병원이 있었던가. 긴장에 마른침을 삼키는 나부터가 일단 미칠 듯이 어색한 와중에 신기하게도, 듬성듬성하면서도 촘촘히 채워 앉은 대기실 공기가 따스하다.


이번에도 나는 이게 히터 때문이 아니라 아무래도 여기가 다른 곳이 아닌 마음과여서 그렇겠다는, 누가 봐도 MBTI 가운데 두 글자가 NF여서 가능한 결론에 도달한다.


이 병원엔 차가운 기보단 체온을 가진 사람가득하고, 뾰족한 주사기보다는  여기서 처음 꺼내지는, 각자의 가장 뽀얀 이야기들이 더 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환자를 호명하는 간호사 선생님의 목소리도 심야 라디오 DJ 마냥, 따뜻하고 다정하다.


"나숙녀 님"


그 목소리 꼭, 고생 많으셨어요로,


"3번 진료실로 들어가실게요"


그 말 마치, 이제 다 좋아질 거에요 들렸으면 말 다했지 뭐.




보험이 없는 내가 마음과에 간다는 건, 일단 그 측면에서만으로도 엄청난 결심이었다. 한 번 내원해 일주일치 약만 받아도 그때부로 당장 기본 5년은 보험 가입이 어려워질 게 뻔니까.


이 나이까지 왜 보험 하나 안 들어놨나를 자책할 뻔도 했으나, 원망이 좋은 거라고 내가 나한테 쏟겠는가. 원망, 자책, 후회. 그런 류의 철 지난 감정들로 속 시끄러워질 게 아니라 지금은 결심과 판단이 필요한 때였다.


한시가 급했고 이제 혼자 힘으로는 안 되는 지점까지 떠밀린 상태였니까.


생길지 안 생길지 모를 사고와 질병.

그 당연하지만 막연한 두려움을 진정시키는 장치도 물론 필요하, 어쨌건 그건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 의 나는 이미 너무도 오래 벌어진 일.


계속 이렇게 나를 내버려 뒀다간 내 눈엔 아직도 꽃다운 얼마 안 남은 내 30대가, 썩어문드러질 것 같았다.


그래서 찾았다. 죽고 싶 생각은 한 번도 추호도 앞으로도 예정 없으니, 살고 싶어 간 건 아니었고, 그저 이젠 정말 편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간절해서였다.




멘탈은 비율 잘못 맞춘 수제비 반죽처럼, 내 일상 오만곳에서 눌어붙고 치덕 대고. 손 쓸 수 없이 엉망이 된 상태.


이성 감성... 모든 감각눈만 꿈벅꿈벅한 채 무기력하다가도, 타인의 말 한 마디면 그 순간 벌떡! 빛보다 빠르게 깨어나서는 무섭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때부턴 답도 끝도 없는, 망상과 강박의 꼬리물기. 죽어날 일만 남은 것이다.


왜? 저 말 무슨 뜻이지? 내 대답은 제대로 됐던 걸까? 반응은 왜 그러는 거야?... 


말초신경이 죄다 깨어나 타인의 말과 행동에 무섭게 집착했다.


깨어있는 자체가 곤욕이었다. 머리가 쉬질 못 하니 진통제, 피로회복제, 에너지음료, 파스... 안 아픈 곳이 없고 아무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바라는 것은 오직 고요. 하지만 나의 랙홀 찾아보별의별 난리를 쳐도, 무념무상 그 근처에는 얼씬못 했다. 아니 컴퓨터도 움직임이 없으면 화면보호기가 켜지고 절전모드에 들어가는데. 이건 뭐 내 몸을 제일 잘 알면 뭘 하나, 다룰 줄을 모르는데. 는 나라는 주치의를 뒀지만 다 소용 없는 호사였다. 그 주치의가 세상 돌팔이으니 말이다.


그래도 한 가지 희망라면 그것은 바로 잠. 팔이여도 의사, 약사 면허가 없어도 잠이 보약이라는 건 인간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노릇.


자장자장, 자는 동안 만에라도  뇌를 쉬게 해주고 싶었으나 가지가지 어향가지,

이 와중에 나는 또 불면증 말기소리를 해야만 하는 신세. 무려 십 년 차  프로불면러라고 말이다.




좌우 시력 1.0, 1.2.

하얀 가운의 의사 선생님이 도사로 보이는 건 왜일까. 나한테 만큼은 의사 말고 도사 해주세요. 


어떻게, 어떤 게 힘드셨을까요?


"회사 때문에요"


-얼마나 다니셨어요?


"8년 좀 넘었어요"


-아마도 번아웃일 것 같네요


"ㅇ_ㅇ?"

(이게 진짜일리 없어... 번아웃? 설마 내가 아는 그 번아웃? 그 쉬운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고? 그것만은 아니어야 해 모두의 해피엔딩을 위해)"


-보통 한 회사에 그 정도 계시면 일도 지겹고 생활도 권태롭고 사람이 좀 맥이 빠진달까요


"아, 어, 네 그렇죠"

(혹시 사.. 사장님..? 저 여기 직원인가요? 왜 지금 맥이 빠지죠...)


-일단 설문하시고 다시 자세히 게요


"네!!"

(설문하고는 좀 다른 얘기를 해주셔야 할 거에요. 안 그럼 번아웃 아니고 넌 아웃일 것 같은 그런 느낌랄까요 촤하하)




지금부터의 이건 일종의 고백이자 치료.

잊지 않겠다는 약속이며 용기.

아주아주 사소하고도 사적인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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