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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숙녀 Oct 05. 2022

그래서 나는 오지라퍼로 살기로 했다


축하보다는 위로할 일이 더 많은 세상.


토닥이는 손길을 기다리는 사연은

내 주변에도  있어왔기에, 내 맘은 하루에도 몇 개씩의 위로를 뚝딱뚝딱 만들어내야 했다.


내게 위로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현대인의 필수품 중 요즘 가장 Hot한 아이템인 공감능력, 그 최상위 티어에 설상가상 MBTI는 또 INFJ…


그 어려운 걸 다 갖춘 고스펙자가 바로 나였으니 이건 뭐 주문만 넣었다 하면

상황, 주제, 인물별 맞춤 위로가 척하고 나왔다나 뭐라나.


내 나름의 기준 하에, 위로에 필요한 요소를 총망라해 만들어진 '위로 제조 매뉴얼'에 따라 완성된, 내 보기엔 흠잡을 데 없는 위로들은 내 속에서 생산되는 그 즉시, 오매불망 나의 토닥임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에게로 보내져야 했다.


나의 공감능력과 인생 경험치를 한껏 녹여 만든 귀한 마음이 새 주인 찾아 먼 길 떠난다 생각하니 어찌나 걱정이 줄을 잇던지.

행여나 다칠까 상할까. 나는 위로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내 진심으로 무장시키고는 위로에게 그 목적지를 몇 번이고 일러주었다.


"혼자 잘 찾아갈 수 있지? 다른 거 보지 말고 듣지 말고, 내가 담아준 딱 이대로 가야 해?" 그렇게 확인에 확인을 하고 내 맘속에서 보냈으나...


세상에서 다시 만난 나의 위로는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분명 전후좌우 어디서, 누가 봐도 위로의 모습으로 길을 나선 아이가, 어떤 날은 참견, 때로는 조언, 운수 없는 날엔 동정이 되어서는 나를 빤히 쳐다봤던 것인데, 그건 정말이지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참 기이한 만남이었다.


문제그때부터였다. 위로란 그저 위로여야만, 오 위로일 때만 고맙고 따뜻한 마음여겨지는 인데 어찌 문제가 아니었겠는가. 더욱이 지금은 참견성가시고 조언은 주제넘고 동정은 불쾌한 세상이었. 러니 그렇게 위로에게 넌 처음부터 끝까지 위로여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던 건데, 저런 꼴로 재회를

했으니 난 이때껏 무얼 한 걸까.


내 위로엔 내 가진 제일 곱고 귀한 것만 담았고, 그저 힘내란 진심만 넣고 또 넣었랬는데 결과적으로 나는 내가 담은 예쁘고 좋은 맘은 오간데 없이, 굳이 안 줘도 되는 세상 불편한 간섭을 상대에게 굳이 준 것이나 다름없게 린 꼴이었다.


물론 내 잘못아니겠지. 애초에 그 감정이 무어건 만든 이의 의도에 상관없이 바깥공기와 접촉하는 순간 변질하고야 마는 것이 요즘 세상이라는데, 시대가 그렇다는데 내 위로가 뭐라고 그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작금의 순리가 그렇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에 말은 와전되고 감정은 왜곡되는 것이라면 내가 믿을 건, 내 위로를 그나마 그 원형 비슷하게 잡아주는 건... 뻔하고 식상하고 진부하게도 또 이것.


말은 공기 중에서도 사람 입에서도 놀아난다지만 글은 쓰는 이의 손과 펜 끝에서만 놀고 니, 깊어지지도 않겠지만 얕아지지도 않. 워지지 않겠지.


내 인생도 맨날 그 코가 석자인 주제에 타인에게 완전무결한 위로를 어찌 보낼 수 있을까 싶어, 틀린 길은 그만 고집하고 이제라도 그 노선을 달리하기로 했다.


고상한 말만 늘어놓는 위로

남 같지 않아서 한다는 참견

위한답시고 하는 조언

아끼니까 가능하다는 동정


같은  난 모르겠고 지금부터 내 길은 하나.


기분은 안 나쁘되 적당히 기운은 나고 띄엄띄엄 듣는데도 전혀 문제없는, 내 인생이 심심해서 내 꺼에 쓸 에너지를 남 인생에 써보겠다는, 세상 처음 보는 성심성의 오지랖.


내 것임에도 내 인생이 참 골치 아플 때.

누가 좀 대신 살아줬으면 싶을 때.

누구 할 일 없는 사람 어디 없나 할 때.


요! 저 여기 있는데, 제가 대신 살아드려 보겠고 그 골치도 한 번 아파보겠다고

내가 가진 이 위로보다 진한 오지으로

답해보고 싶기에,


오늘 그 대답으로 여기 고민하고 치열했던 두가지 순간을 뜰채로 건져 옮긴다.


이건 아주 보통의 내가 지금껏 살며 얻었던

아주 보편적위안. 그 응원과 격려의 모음이다.


그간 참견과 조언과 동정으로 곡해되었을,

지난 간섭들이 <이소에도 위로는 팔지 않길래>에서 마침내 위로로 읽히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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