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말들이 있다. 속담이나 격언은 아니지만 인생의 이치를 제법 관통하는, 나름 그럴싸한 표현으로 당장의 위안이 돼주는.
그냥 딱 그런 말이 필요한 사람이, 어딘가 또 있을 자기 같은 이들을 위해 만든 듯한 그 말엔 영험한 힘 같은 게 깃들었을 리 없단 걸 알면서도,
나와 내 주변인들은 숨통을 조이는 청춘의 해프닝과 마주할 때면 으레 그 단출한 문장을 종교인양 섬겼고, 가진 간절함 전부를 그 말 앞에 받치곤 거기 기대 살았더랬다.
누가 했는지도 모를 말 한마디를 신이자 종교로 삼으며 살던 남아있는 첫 기억은 대학교 2학년 늦가을. 한 친구의 절절했던 짝사랑이 끝나고야 말았던 날, 학교 앞 숯불구이집에서 시작한다.
한눈에도 짝사랑에 실패한 주인공이 누군지 알 수 있게, 웃다가 울길 수 초 단위로 반복하던 친구의 모든 말엔 그녀 홀로 2년을 좋아한 남자의 이름이 물려 있었다.
2년... 대학생활의 절반, 20대 초반의 거의 몽땅을 받칠 만큼의 엄청난 남자는 결코 아니었는데. 내가 여자 쪽 사람이라 팔이 안으로 굽어 하는 말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그 사람 좀 먹는 감정을 혼자 짊어지고 고생하는 게 어째서 내 친구? 왜?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겐 친구의 매력이 더 뛰어났다지만... 거기까지.
친구에겐 도서관 앞을 지키던 다비드상보다 빛나고 우월한 존재가 그 남자였던지라, 네 젊음에 미안하지도 않냐며 정신 좀 차리라는 소리는 단 한 번 꺼내지도 못했다.
그러니 속에선 천불이 나기 일쑤. 그도 그럴게 아무리 '짝'자를 데리고 다녔다 해도 명색이 사랑이오. 것도 자그마치 2년을 꼬박 채워가는 순애보인데, 그 역사란 2주차 썸보다 볼품없고 막 소개로 만나 애프터한 사이보다도 시시했기 때문.
친구와 같은 학교였으니 망정이지, 그게 아니라면 그 남자가 실존인물인지, 친구가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궁상떠는 건 아닌지 의심하고 남았을 정도로 그는 유령 같았다. 적어도 한 번은 지만 좋다는 여자한테 흔들릴 법도 하거늘, 이건 어찌나 미동이 없는지 흔들리지 않아 편안하다는 침대 광고를 보면 그 남자가 떠오를 정도였으니, 실로 대단한 놈이었달까. (아... 그런 범상치 않은 녀석이라 좋았던 건가? 하는 생각, 약간의 공감이 이제서야 살짝 들라한다. 이 뒤늦은 맞장구를 친구에게 말하면 좋.. 좋아할까?)
남들 짝사랑엔 희망고문이 판을 쳐 울고 웃고 난리도 아니라던데, 가엽게도 그 흉내 한 번 내 본 적 없던 친구는 2년 만에 처음 온, 잠깐 보자는 그 남자 연락에 전 학기 전액 장학금을 받는대도 그렇게는 못 웃었을 거 같은 얼굴로 기숙사를 나가더니, 이내 숯불구이집에 앉아서는 짝사랑,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겠노라 선포해왔다.
어찌 된 영문인지 풀고 싶지만 애초에 이건 친구의 그 엔간하지 않았던 짝사랑 이야기를 꺼내려 시작한 글이 아니었으니, 그쪽의 마무리는 짓지 않겠다.
그저 처음에도 말했던 그것. 속담도 격언도 아니지만 제법 위안이 되어, 꽤 많은 날을 종교처럼 우리 곁에 머물던 어떤 말들에 대하여만. 살면서는 변심하느라 못 지켜온 초심을 내 이렇게 글에서라도 지켜볼 참이다.
그리하여 다시 그 숯불구이집. 닭발이며 곰장어가 타든 말든 그 남자를 만나고 온 얘기와 지난 2년의 제 속앓이를 늘어놓던 친구는 대뜸
"진심은 통한다며"
"모아 네가 그랬잖아, 너네가 그랬잖아 진심은 통한다고"
"어디가, 이게 어디가 통한 거야"
우는지 웃는지 모를 호흡으로, 취기 때문에 어눌해졌지만, 어디를 향한 건지 모를 원망을 힘입은 덕에 제법 또렷한 발음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때 알았다. '진심은 통한다'는 멋 부리지 않아 더 현려한 그 한 마디가, 지난 2년 간 친구의 종교였고 살게한 원동력이었음을.
그걸 알았으니 이제 쟤를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할 차례였는데, 입이 먼저 움직였다.
"진심이 왜 안 통해. 통했어"
벌게진 눈으로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냐며 나를 쏘아보는 친구가 가여웠지만, 실패한 사랑에 우정 덕지덕지 바른다고 나아질 건 아니니까, 마저 이었다.
"그래 안 통했지 네 진심은. 근데 그 남자 좋아한 네 마음만 진심이야? 너 안 좋아한 그 남자 마음은? 통했어 진심. 그 남자 진심이 너한테 통했잖아. 인정해"
너무도 선명한 기억에 누가 보면 내 짝사랑이 끝난 날인 줄 알겠지만 이건 친구 이야기. 그럼에도 내 거처럼 이렇게나 명확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명쾌하다. 저 말을 마치기 무섭게 애들한테 욕을 오지게 먹었기 때문....
귀로는 애들의 욕이 꽂히고 눈으로는 테이블 위로 엎어져 우는 친구가 들어오니 머리론 친구의 그 자식이 떠올랐다. 나쁜 건 넌데 왜 내가 이러고 있냐. 억울했지만 까짓꺼. 원래 뭐든 진짜와 모든 진실은 늦게라도 밝혀지게 돼있는 법. 훗날 반드시 재평가 되리라며, 닭발 곰장어가 뉘인 숯불 위에 이 한 몸도 내던졌지 아마?... 나 어쩌자고 멋있고 난리.
실제로 재평가는 이르게 이뤄졌는데 얼마 후 친구가 말하길, 그때 내가 세상 제일 미웠는데 이상하게도 제일 고마웠다고. 그 말을 듣자마자 한 올 미련까지 말끔히 치워졌다면서 말이다. 근데 아무래도 고마웠다는 건 그냥 붙인 소리 같고 오지게 미웠던 게 맞는 거 같다. 그 후로 지금까지 나한테 속 상한 일만 생겼다 하면 모아야 진심은 통했네? 그쪽 진심이 통하고야 말았어 까부는 걸 보면 그게 틀림없다. 뒤끝이 이렇게 엄청난 애인 줄 알았으면... 아, 이래서 그때 걔가 널 안 좋아했...
어쨋건 모진 말로 상처 주려는 게 아닌, 그녀가 빨리 털고 일어나길 바랐던 내 진심 또한 결국 그렇게 통했으니, 애석하지만 친구의 진심을 제외한 나머지 마음들은 다 가야 할 이에게 제대로 전해진 셈이었다.
거기까지 정리되니 궁금했다. 과연 통하는 진심이란 더 센 쪽인지 더 오래가는 쪽인지.
하지만 그 통하는 녀석의 정체는 열몇 살을 더 먹은 지금도 여전히 모르겠다. 어쩜 그건 마음의 강도나 지속력이 아니라 사람 성향, 기질의 문제일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데까지 생각을 데리고 왔을 뿐.
그래도 고무적인 건, 결국 어떤 마음이건 이쪽에서 저쪽으로 반드시 흘러간다는 것. 멈춰있는 것 같아도, 그 고임도 자세히 보면 서로의 피나는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는 움직임이라는 것을 알아냈다는 것이리라.
그리고 하나 더. 진심이 통하는 일이 꼭 남녀 사이 사랑을 두고만 벌어지는 작용이 아니라 매상황, 다양한 관계 속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음 또한 새삼 느낀 것을 높이 사, 이를 기념하고자 지금은 시집 가 잘 살고 있는 친구의 코 묻은 로맨스를 허락도 안 받고 꺼내게 되었다는 뭐 그런 말씀.
왜냐고? 왜겠는가. 뻔하지. 내가 지금 또 그 아무것도 아닌 말 한마디를 종교 삼아야 하는 어느 시기를 지나고 있다는 거 아니겠는가.
진심은 통한다는 스무 살 시절 내 친구의 종교가 서른일곱의 내게 전도됐다.
끝내 누구의 진심이 통할지 모르겠으나, 아주 소수여도 좋으니 나를 알아줬으면 하는 이들에게만큼은 나의 것이 통하기를.
그러다 운 좋게 내가 생각 못 한 사람들이 내 진심을 알아봐 줬다면, 나는 내게 온 그 마음들을 귀히 품을 줄 아는 괜찮은 사람일 수 있기를.
그런데 혹 나의 진심이 어디에도 통하지 않는다면, 그럼에도 되도록 상처받지 않기를. 지난날 제 것이 아닌 그 남자의 진심을 기꺼이 받아주고도 금새 웃었던 내 친구처럼, 그 친구에 그 친구이기를.
끼리끼리는 싸이언스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진심은 그저 "방향은 상관없어, 넌 그냥 통하기만 하면 되는 거란다" 그렇게 듣고 태어났을 뿐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