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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숙녀 Aug 17. 2023

바야흐로 정신승리학이 필요할 때

행복하려면 심리학, 관계학보다 그게 시급해요


심리고 관계고 그런 건 모르겠어요. 어렵습니다. 내 속도 모르겠는 마당에 남의 속을 어느 세월에, 무슨 수로 알겠어요.


관계도 그래요. 관계없인 생존이 어려운 세상이니, 필연적 사이부터 선택에 의해 정립된 사이, 얼결에 맺고 연까지. 갖은 관계 속에 있 한데,  골치 아파요.


혼자가 좋고 사람은 혐오하이냐고요? 그 반대에요. 사람이 좋고 혼자는 고독해요.


어, 잠깐만요. 어차피 인생은 혼자라는 말로 저를 인도하시 거라면... 괜찮습니다. 많이 들었고 익히 알고 있거든요. 암요, 그렇다마다요. 그런데요. 인생이 정말 혼자 맞아요? 보면 그것도 인간에 질리고 관계에 치일 때, 그 상황과 감정에서 면피하려고 찾는 말인 거 같던데. 마냥 행복할 때는, 누구도 그 말을 찾는 걸 못 봤어요.


한 명의 인생은 그 개인의 운명 덩어리니까. 거기에 제삼자가 관여할 수도 없고, 한 것도 아니니 책임론에서 보자면 삶은 혼자가 맞겠죠. 헌데 그렇게 치면,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은 어떻게 되는 건요? 그 아이 인생에 얽히고설킨 이가 많은 걸 모두가 알잖아요. 사람들은 물론 마을의 바람, 햇빛, 물까지. 온 마을이 그 인생 오롯이 아이 책임, 아이 소유라 해도 되는지. 그 아이가 태어나 죽을 때까지 혼자인 게 정녕 맞는 건지요.


아니라고 봅니다. 인생이 혼자라는 건 두 가지 의미에서 비겁한 말에요.


첫 번째는, 인생은 한 치 앞을 모르 발 빼고 보는 거란 뜻에서요. 그 인생 쪽박일지 대박일지 알 수 없으니 거리를 두는 거랄까요. 안 풀리면 온전히 네 거이자 모두 네 탓. 잘 풀리면 0.001%은 내 덕, 네 삶엔 내 지분도 있어라고 하고 싶은데 배팅에 확신이 없으니까 선 딱 긋고 일단 '인생은 혼자'라고 해두는 거죠.


두 번째는요. 저 말을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고리처럼 써버리는, 인간의 나약한 마음과 연약한 멘탈이 비겁해요. 행복할 땐 함께여야 좋지, 혼자는 한계가 있어 으면서 그렇지 못하게 인생이 그렇지 뭐 한다거나, 역시 혼자가 편하다 합리화해요. 나보우리일 때 복의 폭이 넓어짐을 인정하고, 그럴 수 없게 된 현실받아도 들이고. 인생 '어차피 혼자인 게' 아닌 '혼자일 때도 있는 것'으로 대하는 편이 훨씬 훌륭할 것 같은데 말이에요.


아, 이 모든 이야기는 제 개인적 생각이고, 어디까지나 당사자 지척에 있는 인생한정입니다. 완벽 남의 인생에는 적용이 안 돼요. 왜냐면 나와 옷깃 한 번 안 스친 이에 대해 인간은 그 베풂이 굉장히 관대하기도 하지만, 되게 무관심하기도 하거든요. 전자관대하게 베푼다면 행이니 타의 귀감이칭송 받 테지만, 후자처럼 노신경이상관없어요. 나와 교집합이 없는 타인에겐 구라도 무관심이 디폴트니까요. 잘 해주면 박수 받는 거고 것도 안 해줘도 그걸로 그만. 손가락질 받을 일은 없다는 걸 다 아는 거죠.


 씁쓸한 일이에요. 생은 혼자니까 각자도생. 네 인생 잘못책임전가 연하고 시 모를 원망까지 싹을 잘라놓겠단 마음은 각박하구요. 인생은 혼자여도 우리는 남이 아니잖아?그 사람이 잘 풀리기라도 하면, 어쩌다 한 마디 보탠 걱정 입 발린 소리로 흘린 응원이면서, 본인이 그 인생의 개선장군 양 어놓는 공치사는 뻔뻔해요. 리고, 어차피 인생은 혼자로 귀결되는 그건요. 주변에 사람이 넘치지만 혼자이고 싶어 내가 택한 고독과, 혼 혼자여야하는 적막은 차원이 다름을 알 텐데도 모르는 척, 살기 위해 해야만 하는 정신승리인 것 같아 짠합니다.


왜 사람이 사람 때문에 힘들어야 할까요.

마냥 좋을 수는 없는 걸까요.


사람이 싫어지고 관계가 고달파지는 이유 하나는 이것이 아닐까 싶어요. 누구나 어떤 때는 라떼라며 '가 한 걸' 생각하면서, 어떤 때는 '지가 한 건 모르고' 각해 버려서.


내가 기준이고 답안이다가도, 유체이탈식의 사고와 행동을 막무가내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코미디가, 우리 모두를 고달프게 만드는 것은 아닐런지요. 그러고보 자기 객관화가 이렇게 중요하고 또 어려운 건데, 그걸 그 옛날에 깨우친 안 소크라테스 당신은 대체.


그런데요. 그런 모순이 있다고 해도요. 돈 때문에 힘들고 병 때문에 고통스럽고 시간 때문에 아등바등하더라도 모두가 '사람' 때문에 괴롭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알고 싶어요. 과학도, 의학도 이렇게나 발전하는데 사람 사이의 일은 어째서 공식화되지 않는 건지. 우리 관계에도 인풋과 아웃풋이 정해져 있다면 불필요한 갈등들도 그 길로 아웃일 텐데. 여기엔 제가 다 알 수 없는, 저 높은 세계에서 뜻하시는 어떤 바가 있는 거겠죠? 그렇게 모두가 평화로워지면 그땐 또 그게 평화가 아닌 게 된다던가. 인간관계가 그리 단순해지면 발전 없이 퇴보만 있게 된다던가 하는 그런 것들요.


100세 시대 겨우 3분의 1을 넘긴 주제에, 고독사 뉴스에  가슴 아프고 휴대폰 없이 먹는 혼밥 두려운 제가 할 말은 아닌 걸 알지만요. 해야겠어요. 인생은 혼자가 아니라고. 혼자인 게 있다면 인생이 아니라 감정이지 않겠냐고. 내 감정을 누구도 나만큼 아는 사람이 없어서 적적하고 막막한  아니겠냐고요. 그렇다고 정은 혼자야. 내 마음은 아무도 몰라하면서 거기에 매몰 될 필요 없어요. 그소외감은 구나 지독하게 갖고 있다는 거, 우 모두가 아니까요.


누가 물어봤냐고요? 아뇨. 아무도 안 물어봐서 이러고 있답니다. 오늘 , 인생은 혼자 생각을 족히 열댓 번은 했고, 가만 뒀다가는 이십 번 찍을 거 같길래 라도 해야겠다 했는데, 그게 이거네요. 정신승리가 필요는데 굿초이스였죠. 인생 혼자든 감정이 혼자든 브런치는 혼자일 리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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