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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숙녀 Feb 01. 2024

숙녀의 버킷리스트. 정신과에 가다 3


마음과.

(이 글에서 '정신건강의학과'를 부르는 말)


그곳에 대해 내가 막연 갖고 있던 이미지를 한 문장으로 쓴다면,

타로카드 없는 타로카드점집


살면서 마음과에 대해 생각해 볼 일이 얼마나 될까. 그곳에 대한 이미지를 정리해 볼 일도 흔치 않거니와, 만약 정신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도, 그 답변으로 "생각해 본 적 없는데요"가 가장 먼저 튀어나올 확률이 높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 그랬다. 내가 그곳을 염두에 둬야 할 상태가 되기 전까지는. 그러다 사투 끝에 이 일련의 과정에 놓이면서, 나도 모르는 동

여기저기 배어 있던, 마음과에  드라마 등에서 본 느낌이랄지 나의 해석이랄지 하는 것들을 차분히 모아본 결과,


- 아늑하니 나른한 것이 침대만큼 편한 소파가 놓 크지도 작지도 않은 방. 아로마 향이 은은 감도는 그곳 완전 초면의 사람이 마주하고. 그중 한 명이 가족과 오랜 친구에게도 말 안 한 가장 깊은 속내를 털어놓는 걸로 보아 마음은 이미 밀지 않아도 잠금해제 된 상태.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그 마음들을 놓칠 새라 집중하는 모습이 마치 세상의 편견들도 여기서만큼은 Sold out이구나 싶은 뭐 그런.


이런 꽤 유의미한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곳 -


이라는 내용이 도출 것인데,


상기 서술한 것처럼 그렇게 마음의 안식처 같은 느낌이었다면 왜 여직 못 갔! 그 이유라 하면, 자질구레하겐 열일곱 가지 정도, 굵직하게는 네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1. 보험 2. 이직 3. 약에 대한 두려움

4. 불만족스러운 동기




1. 에 대하여는 앞에 이야기하였고

2. 는 뭐 따로 설명 안 해알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그런데 이번에 내원을 결심하며 찾아본 결과, 마음과 진료 기록이 커리어에 장애가 되는 일은 굉장히 드문 경우였는 부연.

3. 은 좀 모순된 면이 있는데, 약물의 힘이라도 빌리고 싶은 솔직한 마음임에도 또 거기에 너무 의존하여 다른 그릇된 일을 부르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면.


4... 그래. 이제 대망의 4. 는, 빌어먹을 동기에 타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평소 병원 보기를 돌 같이 하는 내가, 타이레놀이 만병통치약이고 일주일이면 웬만한 병 또한 지나가리라 하는 내가, 다른 병원도 아닌 마음과를 가게 되는, 가야 하는 동기는 게... 읭? 영 언짢고 성에 차지 않았다.


내 인생에 하등 가치 없고 멀리 보아도 가까이 보아도 별 볼 일 없는 존재 때문에, 열일곱 가지의 걱정거리를 감내하면서까지 마음과를 가야 한다고? 그게 맞아? 아무리 인식이 변하고 있다하나, 아직은 더더욱 바로잡혀야 할 게 많은 마음과를? 내가? 너님들 때문에? 는 생각.


풧펙트. 너무도 정확히 알고 있는 나였다. 그러니 그냥  아는 만큼 개무시를 하면 그만이란 것도 익히 알았지만, 그걸 못 하니 문제. 존버가 답이려니 해서  8년을 존버한 결과가 결국 버텨내지 못하고 병든 내 오늘 것을 째쓰. 저기가 변할 거 같진 않으니 내가 변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너희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내가 대견해서 , 그런 곳이었다 마음과는.




실제로 가본 마음과는 나의 시뮬레이션과'당연히' 달랐다. 내 생각과 맞아떨어진 건 크지도 작지도 않은 방이라는 것처음 보는 사람이 나를 마주 보고 있다는 것과 그사이에 타로카드는 놓여 있지 않다는 것.


내가 들어간 2 진료실엔 침대만큼 편한 소파가 아닌, 간이의자보다는 편한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고 아로마향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어떤 약품류의 냄새가 나지도 않았다.


투박한 네모. 뾰족한 세모. 원만한 동그라미.


 중 꼽자면 완벽히 네모비유될 만한 공간. 곧 찌를 듯 날 섰다기보단 '병원'이라는 특성, 혹은 나의 인지 작용한 탓인지,  재단된 것처럼 쩐지 건조한 방에 침내 처음 온 나는,


처음 무색, 낯 가리는 성향은 무시 채 내 가장 최근이면서도 가장 깊숙 이야기를 게워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었다.


그런 내게 나타난 구세주이자 그 상황의 돌파구로 등장한 것은 다름 아닌, 어쩌면 한낱이고 겨우, 또 고작일 '티슈'였다.


다른 병원과는 다르게(장소가 장소인지라) 환자석 앞에 한 자리 차지한 티슈, 이미 자기 앞에서 여럿 울고 갔다는 듯 숙련된 솜씨로 내 맘의 빗장을 열었다.


두고두고 생각해도 신기한 노릇. 네가 왜 거기 있어 생경한 찌나 든든하던지.


주책이라 환청이라 손가락질할지 몰라도, 나는 분명 들었다. 빼꼼 고개 내민 채 나폴대는 티슈 한 장이 게 말하길,


말해도 . 울어도 .

모든 이야기, 모든 눈물, 모든 생각.

그게 뭐든, 여기서는 .

앞에 사람도 그랬고 뒤에 사람도 그럴 거야. 

그러니 너도 래. 너도 해.




궁금하다.


브런치에서 내가 하는 익명 처리는 얼마나 익명성이 보장될까. 경험이자 내 속내이지만서도 곧이곧대로 이것들을 썼다가 하필 운도 지지리 없게 말도 안 되는 확률로 당사자 또는, 내가 누구고 여기가 어디인지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이 이걸  (이하 생략) 등 내가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이런 걸로 또 그 입에 오르락내리락 얽힐 일은 없을까. 표현의 자유가 나에게도 보장될까. 


나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외치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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