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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유토피아, 정신과 4

by 씀씀


오늘은 모름지기 전편의 여운과 기세를 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나의 언어로 외치며 시작하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익명이 익명이 아닌 시대에, 화끈하게 서론에서부터 폭로전?을 감행할 배알이 내겐 없다.


손 일기는 쓰게 되질 않아, 여기라도랍시고 만든 해우소인데 그런 곳에서마저 시원히 비워내지 못 하는 꼴이라니.


볼 것 없는 누추한 곳에 머물길 택해주신,

누군가에겐 '밖에'겠지만 나에겐 '씩이나'인,

41명의 구독자 분들 중에 나를 아는 분이 있을 리 만무하거늘.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나의 걱정은 자가증식의 정도가 심하고 속도는 빠르다.


나를 정신과(이하 마음과)로 끌고 간 이야긴 미괄식으로 두고, 오늘의 시작은 내 반려병을 소개는 것부터 하겠다. 이것도 나를 마음과로 들이민 부수적 요인 중 하나임엔 분명하니까.




내 반려병의 이름은 불면증. 나와는 10년 차.

그 긴 세월, 권태기도 없이 여전한 걸 보면

한 번 사람을 만나면 오래 가는 스타일인 듯다. 누가 좋아한다고, 누구 좋으라고.


사실 처음엔 꽤나 어리둥절. 상당 시간을 아했다. 젊은 나이(당시 27세)에 뭔 대단한 인생이고 골머리 썪을 일 있다고 잠을 못 자? 그러다 밤의 적막에 적응됐을 무렵엔, 한 관계가 긴 시간 지속된다는 건 쌍방로 필사적인 노력이 있어야 가능 건데, 내가 불면증이랑 왜? 하는 생각.


그렇게 어쩌다 낼모레 불혹인 지금은 전적으로 수긍한 상태. 이 관계엔 내 노력 분명히, 상당히 들어갔으리라. 민감한 기질에 여린 성향, 또 그걸 들키는 건 시간제인 주제에 사람 잘 믿고 맘 주는 에 겁도 없었으니. 어쩌면 무수한 밤. 나를 잠 못 들게 한 건 나였을 지도 모 일이었다.




나이 앞에 장사 없다 말은 잠에서도 마찬가지. 20대 30대 초반, 후반의 불면, 그 후폭풍은 원이 달랐다. 그래도 30 중반까지의 불면 그 후는 이튿날의 체력과 정신력을 하루 먼저 빌려 쓰는 정도다면 후반은 진짜 수명을 당겨서 버티 느낌.


부산행과 킹덤,

그걸 나는 매일 아침 거울에서 봤다.




불면의 가장 큰 고통은 졸린데 못 자는 것이 아닌 자고 싶은데 잠이 얼씬도 않는 괴로움. 이 와중에도 남들의 밤은 사하다는 외로움. 기어이 아침은 오고 말거란 두려움.


불면의 제일 큰 후유증은 온 신경이 '오늘은 자야 해'에만 몰두한다는 것. 돌볼 것들이 많은데 죽어라 잠 타령만 해대니 아쉬운 소리가 줄 잇지 않을 리가. 밤낮 찬밥신세가 된 몸 구석구석에서 두통, 신경과민, 근육통, 손 저림, 식욕감퇴, 안구통, 소화불량... 갖가지로 플러팅을 해오는데... 약물중독이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중독되고 싶은 약은 직 잠. 자기 위한 건 거진 다 해봤다. 수면제, 운동, 아로마, 카페인 줄이기, 트리스 바꾸기, 기상과 취침 시간 루틴 . 하지만 숙면에 힘 좀 쓴다는 화려한 라인업도 무용지물. 그나마 수면제만이 날 잠으로 인도지만 3~4시간. 마저도 며칠 못 가 초라하게 퇴장했.


고무적인 건 내 불면증엔 한 가지 Kick이 있다는 것. 삼단논법으로 접근자면,


1. 나는 고향집에선 잘

2. 고향집은 보통 주말에 간다

3. 그러므로 나는 주말엔 잘 잔다.


그리고 여기서 한 번 더 가면 얻 수 있는 것.


4. 주말엔 회사에 안 간다.




내 불면은 회사에만 반응했다. 선택적 불면. 회사가 내 심리와 수면에 그렇게 타격을 준다 중이 떠나면 그만일 노릇이겠으나, 나는 회사가 밉지도 싫지도 않았다. 오히려 사에 관해서는 애사심이라는 촌스러운 감정이 더 지배적인 편었다. 그지 않고서야 호프집 반건조 오징어마냥 꿔지고 뜯기고 하서도 9년 근속 어찌 하랴.


그럼 뭐가 문제냐. 답은 참 식상하게도, 사람. 예외는 있겠지만 보통 회사가 진짜 힘들 때는 일보다 돈보다 사람 때인 경우가 많은 법.


일해서 돈 벌자고 다니는 곳에서 사람에 치인다니 기가 차지만, 더 울화통 터지는 건 로 있다. 꼭 그런 빌런 전체도 다수도, 소수도 아닌 로또 같다는 것. 일단 나와 안 맞고 몇 명 안 되며, 몇 명이 이게 말이 되나 싶은 일을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내 느낌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젠 무엇으로 보나 내 로또. 내 정신과 내원 동기의 한축을 담당하는 나에겐 빌런인 누군가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때.


글쎄. 밥줄이 회사 하나라 얼마나 솔직히 쓸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일단 못 먹어도 고.




내가 근무하는 과엔 '빅마우스(이하 '빅모씨')가 있다. 당장 떠올리는 그 뜻이 맞다. 허나 여느 회사에나 있는 그런, 흔히들 말하는 '호사가'는 아니다. 내가 그렇게 칭할 생각이 없고 그렇게 여기지도 않기 때문. 그 이유는 명료하다. 빅모씨에겐 어떤 의미로라도 '좋을' 호 자를 붙여줘선 안 된다는 나만의 정의구현?

빅모씨 :
사실을 기반으로 한 정보가 아닌,
'감정'을 전제로 한 '픽션'을
사실로 둔갑시켜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재창조하여 전파하는 자


나이 서른까지 몰랐다. 모르고 살았고 몰라도 살 수 있었다. 이런 사람이 있는지. 그러니 서른 넘어서라 뭘,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그런 사람이 잠시도 아닌 9년을 나의 곁에 있어왔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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