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토피아, 정신과 3

by 씀씀


마음과.

(이 글에서 '정신건강의학과'를 부르는 말)


그곳에 대해 내가 막연히 갖고 있던 이미지를 한 문장으로 쓴다면,

타로카드 없는 타로카드점집


살면서 마음과에 대해 생각해 볼 일이 얼마나 될까. 그곳에 대한 이미지를 정리해 볼 일도 흔치 않거니와, 만약 정신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도, 그 답변으로는 "생각해 본 적 없는데요"가 가장 먼저 튀어나올 확률이 높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 그랬다. 내가 그곳을 염두에 둬야 할 상태가 되기 전까지는. 그러다 사투 끝에 이 일련의 과정에 놓이면서, 나도 모르는 동안

여기저기 배어 있던, 마음과에 해 드라마 등에서 본 느낌이랄지 나의 해석이랄지 하는 것들을 차분히 모아본 결과,


- 아늑하니 나른한 것이 침대만큼 편한 소파가 놓인 크지도 작지도 않은 방. 아로마 향이 은은히 감도는 그곳 완전 초면의 두 사람이 마주하고. 그중 한 명이 가족과 오랜 친구에게도 말 안 한 가장 깊은 속내를 털어놓는 걸로 보아 그 마음은 이미 밀지 않아도 잠금해제 된 상태.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그 마음들을 놓칠 새라 집중하는 모습이 마치 세상의 편견들도 여기서만큼은 Sold out이구나 싶은 뭐 그런.


이런 꽤 유의미한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곳 -


이라는 내용이 도출 것인데,


상기 서술한 것처럼 그렇게 마음의 안식처 같은 느낌이었다면 왜 여직 못 갔! 그 이유라 하자면, 자질구레하겐 열일곱 가지 정도, 굵직하게는 네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1. 보험 2. 이직 3. 약에 대한 두려움

4. 불만족스러운 동기




1. 에 대하여는 앞에 이야기하였고

2. 는 뭐 따로 설명 안 해도 알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그런데 이번에 내원을 결심하며 찾아본 결과, 마음과 진료 기록이 커리어에 장애가 되는 일은 굉장히 드문 경우였는 부연.

3. 은 좀 모순된 면이 있는데, 약물의 힘이라도 빌리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임에도 또 거기에 너무 의존하여 다른 그릇된 일을 부르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면.


4... 그래. 이제 그 대망의 4. 는, 빌어먹을 동기에 타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평소 병원 보기를 돌 같이 하는 내가, 타이레놀이 만병통치약이고 일주일이면 웬만한 병 또한 지나가리라 하는 내가, 다른 병원도 아닌 마음과를 가게 되는, 가야 하는 동기는 게... 읭? 영 언짢고 성에 차지 않았다.


내 인생에 하등 가치 없고 멀리 보아도 가까이 보아도 별 볼 일 없는 존재 때문에, 열일곱 가지의 걱정거리를 감내하면서까지 마음과를 가야 한다고? 그게 맞아? 아무리 인식이 변하고 있다곤 하나, 아직은 더더욱 바로잡혀야 할 게 많은 마음과를? 내가? 너님들 때문에? 는 생각.


풧펙트. 너무도 정확히 알고 있는 나였다. 그러니 그냥 아는 만큼 개무시를 하면 그만이란 것도 익히 알았지만, 그걸 못 하니 문제. 존버가 답이려니 해서 8년을 존버한 결과가 결국 버텨내지 못하고 병든 내 오늘 것을 째쓰까. 저기가 변할 거 같진 않으니 내가 변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너희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내가 대견해서 간, 그런 곳이었다 마음과는.




실제로 가본 마음과는 나의 시뮬레이션과는 '당연히' 달랐다. 내 생각과 맞아떨어진 건 크지도 작지도 않은 방이라는 것과 처음 보는 사람이 나를 마주 보고 있다는 것과 그와 나 사이에 타로카드는 놓여 있지 않다는 것.


내가 들어간 2 진료실엔 침대만큼 편한 소파가 아닌, 간이의자보다는 편한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고 아로마향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어떤 약품류의 냄새가 나지도 않았다.


투박한 네모. 뾰족한 세모. 원만한 동그라미.


이 셋 중 꼽자면 완벽히 네모에 비유될 만한 공간. 곧 찌를 듯 날 섰다기보단 '병원'이라는 특성, 혹은 나의 인지 작용한 탓인지, 재단된 것처럼 쩐지 건조한 그 방에 침내 처음 온 나는,


처음은 무색, 낯 가리는 성향은 무시 채 내 가장 최근이면서도 가장 깊숙한 이야기를 게워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었다.


그런 내게 나타난 구세주이자 그 상황의 돌파구로 등장한 것은 다름 아닌, 어쩌면 한낱이고 겨우, 또 고작일 '티슈'였다.


다른 병원과는 다르게(장소가 장소인지라) 환자석 앞에 한 자리 차지한 티슈, 이미 자기 앞에서 여럿 울고 갔다는 듯 숙련된 솜씨로 내 맘의 빗장을 열었다.


두고두고 생각해도 신기한 노릇. 네가 왜 거기 있어 싶은 생경한 티찌나 든든하던지.


주책이라 환청이라며 손가락질할지 몰라도, 나는 분명 들었다. 빼꼼 고개 내민 채 나폴대는 티슈 한 장이 게 말하길,


말해도 돼. 울어도 돼.

모든 이야기, 모든 눈물, 모든 생각.

그게 뭐든, 여기서는 돼.

앞에 사람도 그랬고 뒤에 사람도 그럴 거야.

그러니 너도 래. 너도 해.




궁금하다.


브런치에서 내가 하는 익명 처리는 얼마나 익명성이 보장될까. 내 경험이자 내 속내이지만서도 곧이곧대로 이것들을 썼다가 하필 운도 지지리 없게 말도 안 되는 확률로 당사자 또는, 내가 누구고 여기가 어디인지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이 이걸 (이하 생략) 등 내가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이런 걸로 또 그 입에 오르락내리락 얽힐 일은 없을까. 표현의 자유가 나에게도 보장될까.


나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외치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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