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을 하면서 새삼스러울 정도로 나를 놀라게 하는 점은
이 세상엔 정말 별 사람이 다 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어떤 직업을 가졌건, 연령대가 어떻건 그런 자질구레한 조건들과는 전혀 상관없이
정말 '별'스러운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들을 마주할 때마다 생각하는데
성선설을 주장한 옛 성현들은 방에서 공부만 하느라(+계급이 높았던 것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다양한 인간군상을 만나보지 못하고 성선설을 주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과
우리나라의 의무교육이 실패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떠오른다.
내가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 사람에겐 상식이 아닌 순간
그 찰나의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다 스쳐 지나가고
'어? 내가 이상한가?' 하는 자아성찰까지 마치고 나면
'아 이 사람도 오랜만에 마주친 별스러운 사람이구나.'하고 납득하게 된다.
하지만 머리로 납득이 된다고 해서 내 마음이 답답한 것을 막아주진 못 하기에
나는 오늘도 정신승리를 위해 한 가지 새로운 가설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또라이 총량의 법칙"이다.
실제로 이 법칙은 내가 주변 사람들이 꽤 그럴듯하다고 인정하는 법칙이기도 하다.
우리 인생에 마주칠 또라이 수는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정해져 있다고 보는 법칙인데,
예를 들어 내 인생에 마주칠 또라이가 10명이라면 오늘 그 숫자 중 하나를 만났다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이제 내 인생에 남은 또라이는 9명밖에 남지 않았다! (야호!)
물론 정확히 몇 명이 남아있는지 모른다는 게 실망스러울 순 있겠지만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옛말이 진가를 발휘하는 순간이 바로 지금이다.
우리 인생에 중요한 순간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그 소중한 순간에 또라이를 만난 게 아니라
나의 일상 중에 어쩌다 마주친 그대가 또라이라서
그래서 나의 또라이 할당량을 한 명 줄여준다면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할까
그 사람이 내 직장상사라면 내 남편으로 만나지 않아서 다행이고
내 남편이 그렇다면 내 부모로 만나지 않아서 다행이고
내 부모가 그렇다면 내 친구들이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고
이런 식으로 돌고 돌리며 생각하면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순간에 또라이를 마주친 게 된다.
내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은
구만리 같은 우리의 삶에서 백신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저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교훈은 매우 효과적이지만 결코 혼자선 얻을 수 없는 가르침이라는 단점이 있다.
그들이 자신의 시간을 할애해서 나에게 귀한 가르침을 주어 감사할 뿐이다.
p.s 그리고 내 경험에 따르면 약 99.9%의 상황에서
'어 내가 이상한가?'를 생각하는 사람이 정상일 가능성이 높다.
진짜 이상한 사람은 문제점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지 않는다 타인에게서 찾아내지.
그러니 단 한 번도 스스로가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면
당신이 당신 주변 사람들의 또라이 할당량을 -1 해주었으니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