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눈물이 남아 있다니
한강 작가님의 시를 읽다가.
솔직히 평판이 너무 극과 극이라 크게 기대치 않았었다.
감히 노벨문학상의 기준이 그렇게나 쉬운 거였나 싶기도 했었다.
그만큼 한국의 문학 수준, 문화 수준이 세계적인 지위로 끌어올라왔다는 반증이기도 하지 않을까.
그러나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1위를 지키고있는
아주 오랜만의 시집을 발견했을 때
가슴 뭉클한 느낌표가 심장을 두드렸다.
대부분 생의 본질을 꿰뚫으며 삶의 이면을 이야기하는 시들이었다. 단순한 장면의 감각화가 아니었다ㅡ
어떤 본질적인 통찰이 있어서 깊이가 느껴졌다.
그 중에 이 시가 유독 마음에 파문으로 남았다.
"아직도 눈물이 남아있다니,
더는 아무 것도 두렵지 않다니."
솔직히 딱 그런 마음이었다.
40을 넘어 중년으로 접어들며
세상사 모든 것이 부질없고 초월적으로 느껴질 때
더이상 마음 속에 눈물도 두려움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 텅빈 공허함이 언제 끝날지 너무 두려웠었다.
빈 항아리처럼 점점 더 깊어가는 허무함이
인생에 대한 애착마저 사라지게 하는듯하여.
하지만 작가님은 말했다.
눈물이 그득 차 오를 때,
검고 깊은 물소리가 울려펴져
파문으로 일고
비로소 당신이 죽어나가고
내 가슴에서 생명이 태어났다고.
ㅡ
시 전문을 소개합니다.
(출처: 한강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아두었다'중)
<눈물이 찾아올 때 내 몸은 텅 빈 항아리가 되지>
거리 한 가운데에서 얼굴을 가리고 울어보았지
믿을 수 없었어, 아직 눈물이 남아 있었다니
눈물이 찾아올 때 내 몸은 텅 빈 항아리가 되지
선 채로 기다렸어, 그득 차 오기를
모르겠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스쳐갔는지
거리 거리, 골목 골목으로 흘러갔는지
누군가 내 몸을 두드렸다면 놀랐을 거야
누군가 귀 기울였다면 놀랐을 거야
검은 물소리가 울렸을 테니까
깊은 물소리가 울렸을 테니까
둥글게
더 둥글게
파문이 퍼졌을 테니까
믿을 수 없었어, 아직 눈물이 남아 있었다니
알 수 없었어, 더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니
거리 한 가운데에서 혼자 걷고 있을 때였지
그렇게 영원히 죽었어, 내 가슴 속에서 당신은
거리 한 가운데에서 혼자 걷고 있을 때였지
그렇게 다시 태어났어, 내 가슴에서 생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