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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해한 취미 - 캠핑 !

캠핑에 대한 끄적임.

by 은비령

<의자와 테이블 하나의 자유>


캠핑을 좋아하게 된 건 그저 눈 앞에 펼쳐진 편안한 풍경 때문이었다. 사람들과의 거리두기가 습관화되면서 넓게 탁 트인 공간에서 나만의 비밀스럽고 은연 중에 공개된 의자와 테이블 하나의 자유를 누리고 싶어졌다. 어디든 간이 의자 하나만 놓으면, 그곳이 바로 하룻동안 내 집이 된다는 안정감, 자유로움, 한산함 등이 좋았다. 그러다 하루 종일 눈 앞에 놓인 풍경을 안주삼아 삼 시 세끼 먹을 궁리를 하고, 중간 중간 간식거리며 안주거리, 후식거리 등을 세팅하고 먹고 멍때리고 하는 순간 순간들이 만족스러웠다. 그저 먹고 쉴 궁리만 하면 되는 거였다. 뭘 모르는 사람들이 간혹 '캠핑 가서 심심해서 뭐하냐?'고 묻는다. 그럴 때면 난처하지만, '엄청 바빠. 그냥 한 번 가봐.'라고 말해줄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캠핑을 가면 정말로 이유없이 계속해서 바쁘다. 비록 간이지만 새로운 집을 지어야 하고, 그 작은 집에는 나름대로 부엌과 거실과 침실 공간이 모두 필요하다. 주로 활동하는 공간은 거실(전실) 역할을 하는 의자와 테이블이다. 먹고 즐기기 위해서 필요한 공간을 구성하면서, 캠핑 용품들을 손쉽게 꺼내쓸 수 있도록 선반에 진열도 해야 하고, 좋아하는 데코레이션으로 감성있게 장식도 한다. 어떤 캠퍼들의 텐트를 보면, 이건 뭐 디자인 화보가 그대로 전시된 것처럼 예쁘게, 감성터지게 잘도 꾸며놓는다. 서로 서로 이웃 캠퍼들의 집을 은근히 염탐하면서 따라하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간혹 아무한테나 말을 쑥쑥 거는 분들은 '이건 어디 제품이에요?'하고 꼭 물어보곤 한다. 그렇지만 그런 부러움의 시선을 즐기는 것도 캠퍼들의 낙 중에 하나이리라.


캠핑 초기 시절에는 주로 캠핑 용품을 준비하고, 설치하는 과정이 즐거웠다면, 요즘에는 변화하는 계절 속에서, 또 하루에 해가 뜨고 지는 동안의 같은 공간의 풍경의 변화를 바라보는 즐거움이 아주 크다. 같은 장소라 하더라도 시간에 따라 시시각각 얼마나 예쁜 하늘을 보여주는지. 바람은 얼마나 어떻게 부는지. 낙엽은 어느 정도 떨어진건지. 노을의 색깔이 오늘은 몇 가지로 구성될지. 보랏빛, 분홍빛, 주황빛의 다채로운 하늘 빛깔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저 잡생각이 없어지고, 내 머릿 속이 샤워한 듯, 깨끗해진다.


참 좋은 시 한 편 옮겨적어 본다.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 정현종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앉아 있거나

차를 마시거나

잡담으로 시간에 이스트를 넣거나

그 어떤 때거나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그게 저 혼자 피는 풍경인지

내가 그리는 풍경인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사람이 풍경일 때처럼

행복한 때는 없다.

머릿 속을 비우고, 멍하니 눈 앞의 초록이들을 보는 순간들이 마치 멈춰진 사진의 한 장면처럼 평화롭다.

풍경 사진을 찍는 것은 전문가들이나 하는 건 줄 알았는데, 요즘에는 워낙 스마트폰의 화질이 좋다 보니, 대충찍어도 달력 배경같다. 전국 방방곡곡의 캠핑장을 찾아다니다 보니, 산 속, 숲 속, 바닷가, 강가, 호숫가, 들판 등등 우리나라의 자연을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되어 너무 좋다.


여행의 종류에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유명 문화유산을 돌며 가이드들의 설명을 듣고 끌려다니는 것 같아 힘들고 지루했는데, 캠핑을 하다보면 그럴 필요가 없다. 그저 어느 곳에서든 자연을 벗삼아, 맛있는 음식을 안주삼아, 하늘과 바다와 산과 땅의 풍경 속에 하나로서 '함께 있음'을 즐기면 된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 술익는 마을 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박목월의 시구절에 저절로 공감이 된다. 옳다구나! 이거였구나! 나는 지금 '구름에 달가듯이, 가고 있구나!'

여기에 잘 익은 탁주 한 사발, 뜨끈한 뱅쇼 한 잔, 새콤하면서 깊은 원두 커피 한 잔이면 세상 다 가진 기분일 것 같다. '내게 무해한 사람'이라는 책이 있었는데, 캠핑을 떠올리면 '내게 무해한 취미'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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