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고장 나서 내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
글이 써지지 않는다.
매주 수요일, 한 편씩 글을 올리겠다 한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은데 최근 몇 주간은 도저히 글이 써지지 않았다.
결국 저장해두었던 글은 바닥이 났고 여전히 나는 한 글자도 글이 써지지 않았다.
흙탕물처럼 혼잡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회사에 남기로 결심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는데, 신기하게 그 시점부터 겪어보지 못했던 어려움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마치 수렁에 빠진 기분이 들었다.
"저 고장 난 것 같아요."
직장 내에서 어려움을 겪던 입사 동기의 말이 이제야 이해가 간다.
그때는 머리로만 공감을 표시했는데, 지금 다시 돌아간다면 내 모든 가슴을 다해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지금 딱 고장 난 기분이기 때문이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결국은 견디지 못하고 실수를 해버린 날,
그날은 공교롭게도 남편과의 기념일이었다.
물론 나는 완전히 잊고 있었지만 말이다.
꽃을 사들고 회사 앞까지 데리러 온 남편을 보고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한 시간쯤 울었을까.
감정이 한 꺼풀 꺾이고 나니 이성이 나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지금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까?
눈앞이 캄캄해져 오던 찰나, '감정은 언제나 옳다'는 말이 떠올랐다.
<당신이 옳다>의 저자 정혜신 박사는 감정은 어느 순간에도 옳다고 했다. 어쩌면 내가 지금 수렁에 빠진 이유는 감정에 따르지 않은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스스로의 감정을 부인하려 노력했던 시간이 먹구름처럼 모여 오늘의 폭풍우를 만들어낸 것이다.
감정을 마주하기 위해 정말 오랜만에 상담 선생님을 찾았다. 선생님은 현재 내 상황을 어린 시절 충족되지 않은 '의존 욕구'가 말썽을 부린 일이라고 해석해주셨다.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어도 뿌리가 깊은 나무는 의연히 자리를 지킬 수 있는 법인데, 나는 자꾸만 마음의 뿌리를 타인의 마음에 심으려고 하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나의 일과 타인의 일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내 감정과 타인의 감정을 구분하지 못하는 일이 잦다. 마음을 너무 쉽게 주는 탓에 누군가에게 속아본 일도 많다. 스스로 불길로 향하는 나방처럼 상처받을 것이 예견되어 있는 곳으로 자꾸만 향하는 악순환이다.
어린 시절의 외로움이 남긴 습관적 행동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외로운 사람이 맞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는 외로움의 구렁텅이에서 살아남은 사람이고 지금 내 곁에는 세상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는 남편이 있고 나를 위해선 무엇이든 해줄 수 있는 엄마도 있고, 때로는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소중한 친구들도 있다. 이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상담을 받는 동안 잠시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고 온 기분을 받았다. 홀로 텅 빈 집에 앉아 있는 어린 시절의 나를 꼭 안아주고 다시 한번 애도를 표하며 작별을 고했다. 내 안의 외로움을 인정하고 그로 인해 또다시 외로움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내 모습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바라봐주었다.
앞으로 몇 번을 더 과거의 상처에 사로잡히게 될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그때마다 오늘처럼 작고 외로운 어린 시절의 나에게 작별을 고할 것이다. 나는 더 이상 그 시절의 아픔에 갇혀 있지 않기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만 얽매여 있기에 나는 오늘에 두고 온 것이 너무 많다. 과거의 문턱 너머, 오늘에는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과거의 아픔을 당당히 딛고 일어난 나 자신도 있다. 이만큼 성장하기까지 나를 도와주신 분들의 수많은 손길과 사랑, 그리고 내가 흘린 눈물과 땀이 내 뒤를 두텁게 지지하고 있다.
언제나 그래 왔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