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파리 시간으로 17일 21시 10분
냉장고를 정리하다가 계란을 바닥에 떨어뜨려 깼다. 야외 벤치에 앉아 파이브가이즈 햄버거를 먹던 도중 함께 주문한 오레오셰이크 컵을 잘못 쥐는 바람에 옷과 바닥을 포함한 사방에 셰이크가 튀었다. 아침에 전열기구를 켜놓은 방에서 휴대폰과 이북리더기를 충전하면서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던 도중 심상치 않은 냄새가 나길래 확인해보니 그 모든 플러그가 연결돼있던 콘센트 어댑터가 녹고 있었다.
5월 9일 오전 열 시경 프랑스 파리에 도착한 이후 지금까지 내가 한 일들이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대한민국에서 30년 가까이 살면서 단 한 번도 부엌 바닥에 날계란 하나를 통째로 박살내거나, 길거리에서 허공을 향해 셰이크를 발사하거나, 전기 콘센트를 태워먹은 적은 없었다(고데기를 켜놓은 채로 외출한 적은 있지만). 내가 파리에 간다고 말하면 이어지는 질문은 당연하게도 언제나 그 목적과 이유를 묻는 것이었다. 알고 있다. 질문한 이들에게 내가 단 한 번도 속 시원한 대답을 안겨준 적 없음을. 대체로 나는 단지 ‘그냥.’과 같은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질문한 이를 멋쩍게 만드는 결례를 범하지 않기 위해 언제나 예의상 몇 마디를 덧붙이긴 했지만, 그 어떤 말도 정확할 수 없었다. 나는 무엇을 하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게 아니라, 이곳에 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가 궁금해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주일, 이곳에는 내 손에 박살난 계란, 내 손에 박살난 오레오셰이크, 내 손에 박살난 전기 어댑터가 있었다. 단 일주일만에 이 많은 걸 박살내다니, 나쁘지 않은 출발이다. 신선하고 좋은 예감이다.
‘속지 않는 자가 길을 잃는다’는 라캉의 유명한 문장이 있다. 지젝을 한 번 거친 다음 내 작은 뇌 사이를 비집고 나온 형태로 대강 부연하자면,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우리는 실수하고 실패하고 미끄러지고 속아야만 한다는 뜻이다. 꿈이든 목표든 가치관이든,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가지고 오차 없이 똑바로 걸어가는 방식으로 그것을 성취해내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쪽이 과연 옳은 방향이 맞는지, 내가 그것을 정말로 원하기는 하는지, 끝없이 의심하고 때로는 거부하고 종내는 빗겨가면서, 그렇게 완전히 비틀대고 절뚝이는 걸음으로만 우리는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시킨 일을 못하겠다고 대들던 모세처럼, 싫다고 쌩까고 반대 방향으로 향했던 요나처럼.
허나 차라리 이 말을 몰랐으면 참 좋았을 것을, 나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일부러 속는 척하려다 결국 길 한 번 잃어보지도 못한 채 여기까지 와버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모두 무언가가 되어 있었다. 대체로 회사원이, 어쩌다 사장이, 벌써 전문가가, 심심찮게 배우자가, 놀랍게도 부모가, 여전히 학생이, 하다못해 준비생이 되어 있었다. 나는 모든 걸 포기했다. 회사원을 하기엔 사고뭉치였고, 사장이 되기엔 무식했고, 전문가가 되기엔 게을렀고, 배우자나 부모가 될 만한 운은 아직 없었고, 학생을 계속 하기엔 끈기가 없었고, 준비생을 할 만한 용기도 없었다. 나에겐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믿음이 하나 있는데, 바로 내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자신감은 마치 파리에서 관광객의 얼굴을 한 채 지퍼가 열린 백팩을 메고 두리번거리며 아이폰을 손에 쥐고 다니는 것만큼이나 위험하다. 온몸에 남는 거 하나 없이 그저 낙동강 오리알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좀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말은, 아무것도 못 한다는 말과 동의어다.
옛날에 그런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엄청 잘 사는 집에서 자녀가 이도저도 못하면 국내에 그 개수를 손에 꼽을 정도로 비싸고 희귀한 악기 하나를 가르쳐서 전공하게 한다고. 그럼 그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몇 사람 없기 때문에 그거면 먹고살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 당연히 사실은 아닐 것이다. 이도저도 못하는 애가 그 악기를 곧잘 연주할 수 있다면 아무튼 악기 연주의 재능이 있는 것이고, 애초에 엄청 잘 사는 집이면 뭐하러 굳이 자녀한테 기술을 가르치고 노동을 시키겠나. 회사든 저작권이든 물려주고 말겠지. 아무튼 나는 대충 이런 마음으로 파리에 왔다는 말을 하려는 거다. 이도저도 아닌 내가, 어떻든 파리에 다녀가면 최소한 ‘파리에서 살다 온 애’는 될 수 있을 테니까. 이 논리가 웃긴가?
나는 꿈이란 건 내가 만들어서 꾸는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다. 꿈은 그냥 지나가다 마주치는 거고, 다른 사람이 흘린 걸 줍는 거기도 하고, 어느 날 거울을 보니까 묻어있는 거기도 하고, 누가 억지로 덮어씌워놓는 거기도 하다. 그냥 그렇게 문득 나에게로 오는 거다. ‘내가 왜 하필 프랑스에 가야 하는가’를 놓고 몇 개월 내지 몇 년을 고민했었다. 답이 나올 리 없는 질문이었다. 이 질문은, ‘프랑스면 안 되는 이유는 뭔데’ 하는 답 아닌 답으로 끝났다. 지금 이렇게 파리에 왔으니, 최소한 ‘파리면 안 되는 이유’라도 알아갈 수 있을 것 아닌가. 근사한 성을 한 채 올리지는 못하더라도, 멀쩡히 있던 성 한 채 박살이라도 내면 하다못해 속이라도 시원하겠지.
내가 계란을 깨먹을 때, 셰이크를 공중으로 쏘아올릴 때, 콘센트와 어댑터를 녹여 한 몸이 되게 만들었을 때, 그곳엔 모두 내 룸메이트가 있었다. 그 가공할 순간들을 친히 촬영해주고, 더 잘못되지 않아 다행이라며 안심시켜주고, 닦을 휴지를 갖다주고 고도의 팔 힘으로 콘센트와 어댑터를 분리해줬다. 그런 룸메가 방금 나를 다급히 불렀다. 룸메의 방으로 건너가서 작은 벌레 한 마리를 잡아줬다. 그래 룸메야. 이런 벌레라면 백 마리라도 잡아줄 수 있어. 에프킬라만 있으면 바선생 정도도 가능해. 이러니 꿈과 목표가 뭐 대수니. 내가 돌연 파리에 세스코를 차리게 될지 누가 알겠어. 그렇게 되면 그땐 파리의 모든 벌레 박멸이 내 오랜 꿈이고 목표였던 게 되는 거야. 일단은 계란처럼 셰이크처럼 콘센트처럼 벌레처럼 자꾸만 박살나버리는 시간들을 조금이라도 살살 붙잡아두기 위해, 매일 먹는 빵처럼 바삭한 한 편씩의 글을 적는 일을 해보려는 게 내 파리 같은 발버둥이야. 바삭한 것들만이 박살날 수 있는 거잖아. 박살나는 것들은 대개 부스러기를 남기잖아. 그러니까 내 글은 막 말랑말랑하기보단 바삭바삭 뚝뚝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