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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진 Aug 11. 2018

도시, 살다 9화 - 경주 황리단길

리단길은 아프다 2

나가라고는 안 했어요


수정 씨의 남자 친구는 견실한 중견기업에 취직을 했다. 꿈을 꾸듯 프러포즈를 받은 수정 씨는 결혼을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입학은 했지만 여러 가지 개인 사정으로 졸업을 못한 그녀는 나이 서른의 미대생이었다.


"조금 더 자리가 잡히면 개인전을 열거야."


그녀의 꿈이 늦은 여름의 포도송이처럼 싱글 싱글하게 익어가고 있었다. 자신도 가정 경제에 보탬이 돼 꿈에 그리던 대학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었지만, 일찍 생겨버린 아이로 그 결정을 좀 미룬 것이 유일한 흠이라면 흠. 그래도 참 괜찮은 출발이었다.  


가진 것이 별로 없이 시작한 결혼 생활이라 서울의 외곽에 월세로 방 한 개짜리 빌라 - 말이 빌라지 실제로는 대학가의 원룸보다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 - 를 간신히 얻을 수 있었다. 지하철 역에서 빌라로 오려면 거의 등산을 하듯 언덕을 올라야 했다. 물론 마을버스가 있긴 했지만 이제 수정 씨의 신랑이 된 남자 친구는 그것마저 아끼고자 걸어 올라 다녔다. 남자의 걸음으로 약 30분은 족히 걸어서 언덕을 올라야 보금자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제 아이도 제법 자랐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 조금은 여유를 찾을 수 있겠다 싶어 미술 재료를 사놓고, 최근 작품의 경향과 주요 작가들에 관한 정보도 수집하기 시작했다. 집 나간 감을 찾아야 하니까.


하지만 그 날 이후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남편의 회사가 쓰러진 그날 이후로.


어쩔 수 없이 수정 씨도 일해야 했다. 아이는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해서 시간적 여유는 조금 있었다. 수정 씨의 빌라 1층에는 빌라 건물의 주인이 오랫동안 창고로 사용한 공간이 하나 있었다. 공방을 해볼까 했다. 사실 할 줄 아는 것도 별로 없었고.


주인아주머니와 이야기를 해보니 월세 50만 주고 쓰란다. 보증금은 필요 없고. 수정 씨와 6년째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보니 정이 많이 든 아주머니는 수정 씨의 손에 10만 원을 쥐어주며 조금 더 보태서 사람 불러 치우라 했다. 혼자 고생하지 말고. 이렇게 감사할 때가.


창고였던 공간이 공방으로 변신했다. 며칠 밤을 지새우며 청소하고 혼자의 힘으로 인테리어를 했다. 수정 씨는 전공이 미술인지 건축인지 스스로도 헷갈려할 정도로 빠르게 인테리어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해가며 실내를 완성해 갔다.


서울 중심가도 아니고 외곽 동네, 땀내만 가득했던 언덕 어디쯤 세상 예쁜 공방이 생겼다. 그동안 저축한 돈으로 커피를 내릴 수 있는 기계도 하나 들여놓고 보니 수정 씨의 눈에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사랑스러운 그런 공간이 탄생한 것이다.  


동네 사람들 위주로 사람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넉넉하지는 않아도 신랑이 어엿한 직장을 다시 얻을 수 있을 때까지는 버틸 정도가 되지 싶었다. 미대생이라는 소문도 돌아, 공예를 배우고자 찾아오는 손님들로 꾸린 공예 교실은 이제 빈자리를 예약하기도 쉽지 않게 되었다.


수정 씨의 공방은 이제 동네의 시그니쳐가 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다 보니 수정 씨 공방의 맞은편에는 인문학 서점이 생겼고, 수정 씨 빌라의 옆 옆 빌라의 1층에는 메뉴가 단 두 개이지만 젊은 감각으로 조리하는 수제버거 가게가 생겼다. 수제 버거 집에 이어 우동집도 생겼고, 작은 카페도 두어 개 더 생겼다. 도시 한 켠의 어두웠던 동네는 이제 밤과 낮으로 관광객이 찾는 곳이 되었다.


수정 씨의 몸은 말이 아니었다. 커피 손님만으로도 일하기가 벅찬데 이제 서울의 온갖 동네에서 공예를 배우러 오는 사람들 때문에 공예 교실을 멈출 수도 없었다. 그래도 수입이 늘었으니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빌라 주인이 찾아왔다. 빌라 건물의 가격이 많이 올라 살 사람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바깥 양반이 다른 사업을 시작하고 싶어 한다면서. 별일이야 있겠나 싶었지만 새로운 빌라의 주인은 수정 씨에게 500% 인상된 임대료를 요구했다.


가게를 차리기 위해 얻은 빚을 다 갚고 이제 형편이 조금 나아지려는 순간. 수정 씨가 할 수 있는 일은 새로운 주인에게 하소연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나가라고 하시면 어떻게 해요."


새 주인이 말했다.


"나가라고는 안 했어요."


지금 수정 씨는 어디에 있을까?


수정 씨의 이야기는 논픽션이면서도 픽션이다. 당연히 이 에세이집을 구성하는 저자가 자판 위 손가락이 움직여지는 대로 써 내려간 한 편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런 면에서 수정 씨 이야기는 픽션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독자 중 수정 씨와 같은 지인이 있는 독자의 비율이 상당히 높을 것으로 확신한다. 혹은 최소한 매스컴을 통하여 접해봤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이 이야기는 논픽션이다.


사이먼스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자발적 이주로 주거지를 잃거나 일터를 잃어버린 우리의 이웃은 도시 빈민이 된다고. 그리고 그 아픔에 공감해야만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에 대한 해결 의지가 생긴다고.


수정 씨가 도시 빈민으로 전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느 곳을 삶의 목적지로 삼던 그곳이 환희와 기쁨의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 또 다른 수정 씨는 서울 외곽 그 땀내 나는 언덕의 중간 어디쯤에 위치한 빌라를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황리단길
경주에서 살아남기


경주에서 학회가 있었다. 학회에 참석을 하면 숙박비나 교통비 등 약간의 비용이 학회 측으로부터 나온다. 학회가 경주에서 열린다고 하길래 마음의 고민 없이 바로 지원했다. 황리단길을 만나기 위해서. 변수는 가족이 함께 한다는 것이었다. 그 유명한 장소가 많은 경주에서 황리단길을 꼭 둘러보자는 내 의견에 따라 줄 것인가. 나와 아내 모두 고등학교 이후 거의 처음이니 오래도 되었다. 경주. 당연히 우리 아들은 처음이다.


다행히 이틀을 머물고 돌아오는 길에 황리단길에 들를 수 있었다. 황리단길은 경주 첨성대와 대릉원 인근에 있는 황남동 한옥 마을의 주 도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황남동의 도로인데 경리단길을 따라 황리단길이란 이름이 붙었다. 경주의 명소로 부상한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으며, 전체적인 느낌은 매우 소박한 전주 한옥 마을과 경리단길을 합친 것 같았다.


황리단길을 먼저 차로 한 바퀴 훑었다. 황리단길을 따라 가장 반대 끝으로 가보니 차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나왔다. 차를 주차하고 황리단길을 만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면 한옥 집들이 보인다. 전형적인 한옥이라기보다는 60-70년대 지어졌을 법한 작은 집들 위에 한옥 지붕이 올려져 있는 듯한 그런 느낌. 그래도 분명 위로 눈을 들어보면 매우 푸근한 감정을 불러오는 한옥 맞다.


황리단길이 마을은 한옥 마을이다.

 

주차한 곳에서 사잇길처럼 나 있는 골목을 지나면 황리단길의 주도로를 만날 수 있다. 사람이 모두 거주하는 곳이므로 매우 조심조심 지나쳐 왔고 셔터도 최소한 사용하려 했다. 마을에는 여기저기 좁은 골목이 있었는데 몇 집들은 파란색이나 녹색으로 칠해져 있어 매우 이색적인 느낌을 선사했다.


좁은 골목. 우리 삶도 이렇다.


황리단길의 입구 방향으로 찍은 사진이다. 차선은 단 두 개. 편도 1차로이다. 주차를 막 하고 나오니 차가 좀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이 정말 많이 붐빌 경우에는 경주 시내로 나가기 위해 이 도로에 차가 길게 늘어서 있는 장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입구 쪽에 대릉원이 있다. 맑은 날 오면 좋을 듯. 사진 찍으러 갈 때마다 날이 흐리다.


일요일 낮 풍경이다. 비도 흩뿌렸고 일요일 낮이어서 한산한 편이었다. 하지만 점심시간이 되면서 사람이 갑자기 많아지기 시작했다.


사람이 붐비는 여기는 황리단길


황리단길은 오래된 주거 공간과 상가 등 흔히 우리 동네에서 우리가 예전부터 흔히 볼 수 있었던 건물을 수많은 수정씨들이 문화와 예술, 역사가 숨을 쉬는 명품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곳이다. 경리단길에 비해 훨씬 자연스러우며 젠트리피케이션의 진행 정도는 더딘 편으로 볼 수 있다. 황리단길을 여기저기 살펴보는 동안 프랜차이즈는 볼 수 없었다. 낙후된 것처럼 보이는 건물을 이어져있어도 그 느낌은 부정적으로만 흐르지 않았다. 우리 삶의 한 구석이 이렇게 보존되고 있구나. 기쁜 일이다.


옛스러움은 예쁘다.


다만 황리단길의 임대료는 불과 지난 2-3년 사이에 적게는 다섯 배에서 많게는 열 배까지 뛰었다고 한다. 여러 기사를 통해 우리가 접할 수 있는 황리단길은 이렇게 두 가지 모습이 공존한다. 그 볼 것 많은 경주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사랑받는 장소로서의 황리단길. 하지만 치솟는 임대료로 인하여 상점의 교체가 빨리 발생하고 이제 비어 가는 상점들이 생겨나고 있는 곳. 젠트리피케이션 경고 지역으로서의 황리단길. 과연 내 아들인 이 거리를 내 나이 즈음에 만나볼 수 있을 것인가.


이 곳에도 새로운 주인이 나타나길


황리단길에는 작은 서점이 두 군데 있다. 분위기는 매우 달랐다. 먼저 들어간 곳은 '어디에나 있는 서점, 어디에도 없는 서점'인데 줄여서 '어서어서'로 부른다. 문학 전문 서점이라 주로 시집과 소설, 에세이 등이 진열되어 있었고 자기계발서도 발견되긴 했다. 사람이 매우 붐벼 서점 안을 촬영하기 쉽지 않았다. 책을 한 권 샀는데 이색적인 것은 약봉지에 넣어 준다는 점이다. 여기에 넣어줄 줄 알았으면 선물용으로 한 권 더 살 것을. 방심한 틈에 사장님께서 이미 책을 넣으셨다. 왜 내 이름을 물어보셨는지 빨리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어서어서 카운터 위에 걸려 있었다.

 

책을 약봉지에 담아 준다.


'어서어서'를 나와 조금만 더 걸으면 '지나가다'라는 서점인 듯 서점 같지 않은 이색적인 상점을 만날 수 있다. 간판에서 볼 수 있듯이 책과 약간의 기념품을 파는 곳이다. 매우 이색적인 책을 만날 수 있다. '어서어서'에 진열된 책은 아마 없었을 거다.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책들이거나 어쩌면 이 서점 주인의 책들일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의 독특한 책들이 서점 안을 차지하고 있다. 사진은 안 찍었으면 좋겠다는 사장님의 바람에 간판만 찍었다.   


세상 독특한 서점. 사장님도 독특하시다. 그러나 재미있다. 들려보면 추억이 만들어 질 수 있을 듯.


후기


의도한 결과만 나타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우리 삶이 그렇지 않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더 크게 우리 삶을 흔들어 버릴 때가 적지 않다. 선의가 반드시 선을 만들어 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악의가 누군가에게는 선일 수도 있다. 그래서 삶이 더 재미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많이 사랑해주면 때때로 사랑을 받는 대상이 아프다. 꽃을 너무 사랑해 화분에 물과 거름을 많이 주면 꽃이 죽는 것처럼. 아껴가며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렇게 우리의 손 때가 덜 묻을수록 오래가는 것들이 있다.


경리단길이나 황리단길은 사람이 찾아야만 의미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그 거리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사랑이 그 길 위의 사람들을 아프게 해서는 사랑을 주지 못하느니만 못하다. 차라리 몰랐으면 비극이 시작되지 않았을 수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길을 찾는 우리는 더 아껴주되 그 안의 사람들의 삶을 존중해 줘야 한다. 구경의 대상이 아닌 그냥 이 좁은 하늘 같이 이고 사는 사람들이다. 소비에는 권리뿐만 아니라 의무도 따른다. 멋진 소비로 좋은 가게가 오래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하고 윤리적 소비로 착한 가게가 프랜차이즈를 이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한 가게의 사장님이 도시 빈민으로 전락하지 않고 그냥 바로 거기서, 있던 자리 그곳에서 계속 일하실 수 있도록 매의 눈으로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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