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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진 Aug 09. 2018

도시, 살다 8화 - 서울 경리단길

리단길은 아프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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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것이 다 비슷하기는 하지만 지방자치만 공부하다가 - 사실 이 것도 그렇게 열심히 한 것 같지는 않다. - 갑자기 도시재생을 공부하려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통계 좀 알고 통계 소프트웨어(예를 들면 SPSS나 STATA 따위)를 다룰 줄 안다고 사이먼스 교수님과의 인터뷰 당시에 생색낸 것이 후회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혼자 책이나 논문을 읽어가며 배워야 할 이론도 많은데 ArcGIS(도시학에서 지도 그리는 소프트웨어)도 익혀야 했고 'R'이라는 오픈 소스 기반의 통계 프로그램도 익숙해지도록 계속 연습해야 했다.


잘 한다고나 하지 말걸. 정말 잘하는 줄 알고 이것저것 막 시킨 교수님의 황당해하는 표정을 많이 봤다. 그래도 잘 기다려주신 것 같다.


(몇 명 되지 않지만)교수님의 제자 중 내 역할은 주로 데이터 분석 쪽일 수밖에 없었다. 쓰기가 안되니. 가끔 "미국은 초딩도 영어를 잘하는구나!"라고 쓴 맛을 다실 때가 있었다. 내 영어 쓰기가 미국의 초딩보다 좋을지 나쁠지 난 매우 궁금했다. 그래도 사이먼스 교수님은 종종 칭찬하셨다.


"지금까지 만난 한국 학생들 중 네 영어 발음이 제일 소프트해."라며. 칭찬이라 믿고 감사했다. 지도 교수 때문에 속 앓는 대학원생들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참 많은데 난 이 방면에서는 받을 복을 다 받았다.


아무리 내 주 역할이 데이터 분석이어도 내 논문을 쓰려면 미국 책과 논문을 자주 읽어야 한다. 관심 분야가 쇠퇴하는 도시를 살리는 정책이다 보니 이 분야의 글을 자주 읽으려 노력했는데 계속 만나는 한 단어가 있었다.


젠트리피케이션.


사전을 찾아보니 '고급 주택화'란다. 주택이 개선되는 것. 참 좋은 일 아닌가. 허름한 우리 집이 그럴듯하게 리모델링된다면 참 행복할 것 같다. 도시학에서 이게 왜 이렇게 중요한 일인지 1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말 난 도시학의 문외한이었던 것이다.


계속 읽어도 잘 이해가 되지 않길래, 사이먼스 교수님이 좀 한가해 보이실 때 여쭤보았다. "교수님, 젠트리피케이션이 뭔가요?"


교수님은 내 질문을 귓등으로도 안 들으시고, 컴퓨터 모니터만 응시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Google it!"


난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가 주로 연구할 분야는 아닌가 보다.라고.


White in, Black out


신경쓰지 않으려 해도 Gentrification은 교수님이 읽어 보라고 권하는 글에 자주 등장했다. 도저히 못 참고 다시 교수님을 찾아갔다.


교수님께서 웃으시면서 구글 잘 찾아봤냐고 물으셨다. "Google it!"이라고 명령조로 말씀하신 것을 잊지 않으시고 그리 물으신 거다. 난 찾아봤노라 했다. 하지만 잘 이해는 안 간다고 했다. 그리고 약간 따지듯이 -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다. - 교수님께 질문했다.


"교수님, 흑인 커뮤니티에서 흑인이 떠나고 백인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좋은거 아닌가요?"


교수님이 나를 인종차별주의자로 판단하셨어도 할 말 없는 질문이었다. 아직까지 아찔하다. 난 그렇게 백인은 선, 흑인은 악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무의식 중에 나온 말이긴 하지만 사람의 무의식에는 진심이 담긴다. 아니면 무식이 담기거나.


백인이 주로 거주하는 동네에 흑인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백인의 떠난다. 이를 블랙 인, 화이트 아웃(Black in, White out)으로 표현한다. 미국 도시의 공간적 분리는 매우 심각하다. 당연히 분리의 기준은 피부색이다. 그런데 젠트리피케이션은 반대의 현상이다. 흑인이 주로 사는 동네에 백인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화이트 인, 블랙 아웃.


사이먼스 교수님은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 무구한 나를 잘 참아 주셨다. 교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왜 구글에서 찾아보라고 했는지 아니? 젠트리피케이션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야. 그래서 내 설명보다 스스로 느껴보라고 한 것이지."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난 마음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난 보통 머리로 생각부터 하고 마음이 따라가는 편인데, 이번에는 감정의 흐름을 이성으로 쫓아가려 했다.


시작은 '비자발적 이주'부터였다. 책이나 논문에서는 비자발적 이주로 표현하는데, 그냥 쉽게 말하면 쫓겨난다는 것이다. 왜?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이 내 땅이 아니니까.


친구의 통곡


내 마음이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초등학교 친구의 통곡 장면이었다.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 근처에는 달동네로 불리는 마을이 있다. 당연히 초등학교의 각 반마다 몇 명씩 달동네 친구들이 있었다. 나랑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었던 종혁(가명)이도 학교 근처 달동네에서 통학을 했다.


어느 날 종혁이가 학교에 오지 않았다. 몇 친구들도 마찬가지로 오지 않았다. 궁금하긴 했는데 아프려니 했다. 첫날은 그렇게 지나갔는데 이상한 것은 종혁이가 다음 날도 오지 않은 것이다. 난 선생님께 여쭈어보았다. 종혁이 어디 아프냐고.


사실 가장 친하다 친하다 하면서도 난 종혁이의 집에 놀러 가 본 적이 없었다. 주로 종혁이가 우리 집에 왔었다. 우리 집도 별반 좋을 것 없는 집이었지만 한 사코 종혁이는 우리 집에 와서 놀기를 원했다. 올 때마다 우리 집 냉장고를 털만큼 먹성이 좋았다. 솔직히 말하면 가끔은 얄미운 적도 있었다. 왜 우리 냉장고만 털려야 하는 것인가. 나도 종혁이네 냉장고를 한번 털고 싶었다.


선생님은 종혁이의 집에 일이 좀 있다고 하셨다. 종혁이의 결석이 길어지자 난 찾아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집 위치는 정확히 몰랐지만, 일단 달동네로 들어가서 종혁이의 행방을 물어볼 생각으로 길부터 나섰다. 사실 이 당시에 난 아무 생각 없이 친구를 찾기 위해 달동네로 향했던 것 같다. 거기 가면 막연히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달동네 초입까지 걸어간 난 종혁이 찾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용역과 포클레인이 달동네를 아래부터 이미 상당히 밀어 버렸고 사람 살던 동네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처참히 무너지고 있었다. 이 것을 이제야 알았다니. 아무리 철이 없을 시절이었지만 바라만 보아도 눈물이 흘렀다. 내 친구들은 과연 저 안에서 무사한 것인가.  


휴대전화가 없었을 시기였으므로 친구와의 통화를 위해서는 집으로 전화할 수밖에 없었는데 종혁이네 집은 당연히 전화가 되지 않았다. 며칠이 더 흐르고, 선생님께서 교무실로 잠시 나를 부르셨다. 친구 몇 명과 함께 3-4명이 불려 간 것 같다. 상담실에 들어서자마자 내 친구 종혁이의 통곡이 시작됐다. 그 날 이후 난 지금까지 나와 초등학교 4년을 같이 지낸 내 베프의 행방을 알지 못한다.


비자발적 이주, 즉 내 의사와 상관없이 내가 살던 곳에서 나가야 한다는 사실은 초등학생교 4학년 학생이 통곡할만큼 절절한 것이다.


경리단길
어디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가게가 있는 길은 더 이상 매력적이지 못하다.


남산 바로 아래 하얏트 호텔로부터 아래로 죽 내려가는 이태원동의 좁은 길. 그 길을 우리는 경리단길로 부른다. 경리단길의 조성은 이후 수많은 아류를 탄생시켰는데 망리단길, 황리단길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경리단길이 경리단길로 불리는 이유는 이 길의 아래쪽 시작 점에 과거 육군중앙경리단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국군재정관리단으로 이름을 바꿨지만.


회사의 경리라고 하면 회계 담당자를 의미하듯이 국군의 회계를 담당하는 부대가 바로 국군재정관리단이고 이 부대에서부터 시작되는 길이므로 경리단길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경리단길의 시작을 알리는 안내문


이런 '리단길'의 생명력은 다양함에서 나오는 것 같다. 다양함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동네라서 매력적이고 촌스러운듯하지만 멋있다. 여러 국가의 대사관이 이 길 위에 있다. 더군다나 공간적으로 이태원동 안에 있으므로 이 곳을 찾는 이는 한국인만큼 외국인도 많다.


휴양지로만 알았었는데 피지도 정부가 존재하는 어엿한 국가이다.


또한 다양한 느낌의 카페와 식당을 만날 수도 있다. 밤에 찾아오면 활기를 되찾겠지만 낮은 매우 한산한 편이다. 한 가지 장점은 한적하게 이 곳 저 곳 둘러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다림 없이 식사를 즐길 수 있다는 점. 카페와 식당임을 알리는 벽화들이 매우 이색적이다. 분명 한국적인 문화가 아님에도 왠지 우리 것으로 지켜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태원동의 수많은 외국인에게 현재 우리나라의 모습은 바로 이런 모습일 테다.


이런 길 위에는 작은 가게의 사장님들이 모이기 마련이다. 자신만의 디자인과 색으로 매장을 가꾸고 여기 아니면 만나볼 수 없는 그런 맛이나 공예품을 선물해주기도 한다. 이런 작은 가게의 사장님들이 만들어가고 발전시켜온 리단길의 선구자가 바로 경리단길이다.


벽화 1


벽화 2

하지만 경리단길을 낮에 둘러보면 몇 가지를 느낄 수 있다. 우선 여기도 사람 사는 동네라는 것. 가끔 우리는 겉에 정신을 팔려 내면을 읽는 것에 실패할 때가 있다. 경리단길의 중턱에서 바라보는 동네는 여기 역시 나와 똑같은 사람들이 자신의 터전을 일구고 정착하여 삶을 꾸리고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경리단길 바로 옆에는 사람 사는 동네가 있다. 사실 경리단길에 위치한 많은 상점의 2층은 주거 공간이다.


그리고 이 길은 리단길의 멋을 하나 둘 잃어 가고 있다는 점도 읽을 수 있다. 적지 않은 프랜차이즈가 이미 입점해있고 최근 임대를 구하고 있는 상점에도 프랜차이즈가 들어온다는 소문이 있다고 한다. 당장 동종 업계의 작은 가게 사장님은 매우 걱정이 많았다. 거대 자본을 등에 업은 상점들이 골목에 침투하기 시작하면 작은 가게는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다.


프랜차이즈의 진출은 젠트리피케이션의 영향이다. 임대료가 높아지면 기존의 사장님들은 가게를 접을 수밖에 없고 비싸진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유명 프랜차이즈가 들어서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디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가게가 있는 길은 더 이상 매력적이지 못하다. 거기에 가야만 볼 수 있어야 하는데.


비자발적 이주는 공간의 획일성을 유도한다. 다시 말해 작은 가게가 떠나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저 그런 동네가 된다는 것이다. 경리단길에만 가야 맛볼 수 있는 음식과 마실 수 있는 술,  즐길 수 있는 음악과 예술 등이 사라지면 경리단길이라는 이름만 남을 뿐이다.


도조 입구


아워커뮨 간판


더젤 입구


경리단길은 또한 인형뽑기방으로 유명하다. 무슨 이유에서건 유명해지는 것은 좋은 측면이 있지만 인형뽑기방으로부터 어떤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경리단길은 단순한 상업 지구가 아니라 우리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후기
화이트 인, 블랙 스태이


경리단길은 그 자리를 지금껏 지키고 있는 멋진 가게들로 인해 여전히 빛이 난다. 하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이 심해져 오히려 상권이 활기를 잃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이 정도의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은 거대 자본밖에 없다. 거대 자본의 진출은 단기간 기업의 이윤창출에는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경리단길의 빛을 바라게 할 것이다. 이미 이 길의 매력은 다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직접 찾아 느껴보면 여전히 우리의 새로운 문화는 이 곳에서 탄생하고 있다. 모진 세월 그 자리를 지켜온 작은 가게의 사장님들 덕이다.  


흑인이 백인으로 대체되면 안 된다. 비록 백인이 동네로 돌아와도 높아진 집값과 월세를 감당 못해 기존의 흑인이 동네에서 쫓겨나면 안 된다. 물론 일정한 수준의 개발은 필요하다. 도시재생 과정에서도 동네의 생활환경 업그레이드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런 업그레이드가 동네 안으로 부자를 부르고 저소득층을 동네 밖으로 내모는 것으로 결론 나서는 장기적으로 동네에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동네를 빛나게 한 작은 가게의 사장님들이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들을 내쫓은 자리에 거대 자본이 침투해도 오래갈 수 없다. 리단길은 작은 가게가 지킬 때에만 빛나도록 설계되었으므로.


이제 행정부와 입법부, 대기업 모두가 응답할 차례이다. 리단길이 아프지 않게. 아니 그 길 위의 사람들이 아프지 않게.


ps.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는 이어서 한 차례 다루고 이후에도 몇 차례 더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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