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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진 Jul 04. 2019

도시, 살다 21화 - 청주 동부창고

다양성이 춤추는 도시, 난장을 벌리다. 

게이 도시


오하이오주에서 두 번째로 큰 대도시권인 클리블랜드 서쪽 접경에는 레이크우드(city of Lakewood)라는 서브어반이 있다. 클리블랜드의 서브어반 중 가장 먼저 개발된 동네답게 지어진 지 100년이 다 된 건물이 적지 않았고, 사람 사는 공간임에도 아파트도 족히 지어진 지 50년은 된 것 같은, 매우 낡은 모습으로 동네 곳곳에 무너지지 않고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레이크우드에 대한 전반적인 느낌은 "올드하다" 일 수밖에. 


쇼핑몰도 없고, 공공기관이나 관광지 등 특별한 공간이 없어서 굳이 찾아갈 이유가 없는 동네였지만, 딱 한 곳 가끔 발길이 향하던 공간이 있었는데, 이리 호수가 바라보이는 호수 공원이었다. 


파란 하늘,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며 구워 먹는 삼겹살(삼겹살은 중국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다.)은 유학생활의 몇 안 되는 위안거리 중 하나였다. 호수 주제(?)에 수평선 너머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했고, 엄청난 규모의 갈매기 떼까지, 나름 괜찮은 곳이었다. 삼겹살 하나를 갈매기에게 던져주면 금세 수백 마리의 갈매기가 모여들어 엄청난 공포감을 주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보니 추억. 무서웠지만 해운대나 가야 만날 수 있는 갈매기 떼를 학교 근처에서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한국 유학생들과 두 번째인가 레이크우드 호수 공원으로 고기를 구워 먹으러 온 날, 지금까지 잊기 힘든 장면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호수 공원에는 마치 해변처럼 모래밭이 조성된 곳이 있었기에 땀나는 여름에는 물놀이를 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 날, 내가 처음 이 호수 공원을 방문한 바로 그 날, 두 명의 매우 건장한 남자가 반바지만 걸치고 이리 호수에서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처음에는 별반 이상한 광경이라는 생각은 안 들었지만, 잠시 후 다시 그들의 물놀이 장면을 우연히 목격했을 때, 묵직한 이질감이 몰려왔다. 그들은 키스를 하고 있었다! 


수영을 마친 두 남자는 서로의 새끼손가락을 걸고, 세상 행복한 미소와 함께 내 시선에서 멀어져 갔다. 목사 아들이자 선비의 나라에서 온 나는 처음 경험해 본 현실적이지 않은 광경에 어쩔 줄 몰라하며, 삼겹살을 앞에 두고 갑자기 식욕을 잃어버렸다. 사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혐오'였다. 부끄러운 과거의 내 모습이다.


 이상한 선택, 이상한 결과


다시 한 주가 시작되고, 지역 공동체와 관련한 수업 시간에 내가 본 호수 공원의 광경에 대해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유학 초반이라 떠듬떠듬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그 광경이 나 같은 코리언에게는 상당히 기이한 장면이라는 것을 최대한 강조하며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아마 수업 중에 담당 교수님께서 미국 도시에 대해 느낀 점을 말해 보라고 권유하셨던 것 같다. 


난 이야기를 마칠 때까지 내가 본 레이크우드의 게이 커플이 어떤 사회학적, 도시학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 그런데 이야기를 마치자 갑자기 교수님과 수업에 참여한 모든 박사 과정 학생들이 도시, 게이 등을 화두에 올리며 열띤 토론 배틀을 시작하였다. 


클리블랜드에서 가장 먼저 개발된 서브어반인 레이크우드는 당연히 가장 먼저 쇠락하기 시작했다. 도로가 더 잘 깔리고 모든 시민이 자동차를 소유할 수 있게 되면서 레이크우드의 부유한 주민들은 굳이 이 도시에 살지 않아도 클리블랜드로 출퇴근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따라서 경제적 여건이 좋은 주민들부터 레이크우드를 탈출해 환경이 좋은 더 먼 서브어반으로 이주하기 시작했고, 이윽고 1970년대 즈음부터 레이크우드는 가난한 백인 노인과 중산층 이하의 흑인이 주민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활력을 잃은 도시가 되었다.  


레이크우드와 클리블랜드의 상위 지방정부인 쿠야호가 카운티(Cuyahoga County) 정부는 이제 막 생겨나기 시작한 서브어반도 많았고, 도시 문제는 클리블랜드에 집중되어 있으므로 레이크우드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고 한다. 이때 우연히 도시에 몇몇 게이와 레즈비언 커플이 이주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오래된 도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동성애 문제에 대해 대단히 보수적이다. 오래된 도시에는 기독교도인 노인이 많기 때문이다. 레이크우드는 백인 노인이 상당수 거주하는 지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게이와 레즈비언 커플을 잘 받아들여줬다고 한다. 이유는 누구도 모른다. 어차피 빈집이 많이 있으니 인심이나 쓰자는 의미였을 수도 있고, 그냥 무관심한 것이었는데 잘 받아들여준 것으로 사람들이 해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레이크우드 주민의 게이 수용은 게이 인구의 증가를 불러왔다. 도시에서 매우 흔하게 게이와 레즈비언 커플을 만날 수 있고, 이제 사람들이 레이크우드를 게이 도시로 부르기에 이르었다. 


게이 인구의 증가는 매우 이상한 결과를 불러오고 있었다. 도시가 다시 활력을 찾은 것이다. 


게이를 받아들여준 도시이기에, '혐오'대신 '관용'의 도시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관용이 필요한 사람들이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레이크우드로 이주했다. 게이와 레즈비언 인구는 지속해서 증가했고, 청년 예술인들이 이 도시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기독교를 믿지 않는 제3세계의 부유층의 이주도 시작되어, 러시아를 포함한 동유럽인, 아이리쉬 등의 유럽문화권뿐만 아니라, 이집트나 남아프리카 공화국 이주민도 레이크우드에 정착하기 시작해 '다양성'은 도시를 설명하는 매우 강력한 단어가 되었다.


도시에 난장을 허하면


사람은 누구나 끼리끼리 노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끼리끼리만 모이다 보면 도시는 획일화된다. 획일화된 도시는 재미가 없다.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만들어지지 않으니 지루하고, 행복감은 여러 요인에 의해서 충족되는 법인데, 늘 허전하다. 대신 나와 전혀 다른 사람, 이질감을 극복하고, 내가 그런 사람을 받아들이면, 도시에 다양성이 생겨난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인데, 그림 그리는 아줌마가 내 옆집에 살고, 기타 치며 노래하는 꽁지머리 아저씨가 그 옆집에 살고, 목공을 하는 청년이 또 그 옆집에 살면, 그리고 이 마을에 공동체성이 회복되면, 얼마나 재미난 일들이 매일 쏟아질까. 


다양한 사람들로 인한 '난장'을 도시에 허락해야 한다.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이다. 락을 연습하는 청소년들의 드럼 소리와 비명인지 모를 노랫소리가 우리 대화의 데시벨을 좀 높이면 어떠한가. 우리는 전혀 소화하지 못할 옷을 입고, 또 이상한 헤어를 하고, 도저히 우리의 삶과는 상관없는 것 같은 뭘 만든다, 뭘 판다, 좀 소란스러우면 좀 어떠한가. 그들이 사라진 도시보다 100만 배는 멋진 도시가 될 것이다.


난장을 위한 판, 동부창고


청주 연초제조창은 1946년에 최초로 만들어졌다. 이후 2002년까지 정부 소유의 담배 제조공장으로 스스로의 역할에 충실하다가 만 2년의 짧은 민영화 기간을 거쳐 2004년에 최종적으로 문을 닫았다. 상당히 큰 규모의 공장이었음에도, 2014년 재활용에 대한 본격 논의가 진행되기 전까지 10년간 버려진 상태로 존재했다. 이 기간 동안 지역경제는 심하게 몰락하였고, 공장주변의 빈집은 늘어만 갔다. 


2014년부터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와 청주시 그리고 시민사회는 지혜를 모아 공장의 재활용을 통한 지역의 재생을 꿈꾸었다. 그 결실로 2015년 5월 시범 운영을 거쳐, 같은 해 8월에 시민에게 개방되기 시작했다. 


동부창고는 총 7개의 독립된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는 34동, 35동, 36동 등 세 개의 동이 새로운 역할을 부여 받아 시민에게 개방되었고, 나머지 네 개 동은 여전히 리노베이션이 한창이었다. 사실 동부창고를 내비게이션에 찍고 운전을 해 가보니, 여전히 공사 중인 건물만 잔뜩 보여 어느 건물을 들어가야 할지 막막했다. 


동부창고는 총 7개의 독립된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34동의 이름은 '커뮤니티 플랫폼'이다. 아래의 건물 계획에서 볼 수 있듯이 갤러리, 목공예실, 푸드랩, 랩실 등의 지역 주민을 위한 교육 및 체험 공간과 다목적홀이 디자인되어 있다. 


출처: 동부창고 홈페이지(https://dbchangko.org/)


아래의 사진에서는 우측 공간에 다목적홀이 위치하고 있고 좌측 공간에는 랩실과 푸드랩실이 위치하고 있다. 즉, 위의 설계도면과 좌우가 뒤바뀌었다. 방문한 날 푸드랩에서는 청소년들의 수다와 부산하고 소란스러운 소리가 넘쳐났는데,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우리 다음 세대의 친구들이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굳이 모든 벽면을 다 리노베이션 하려 하지 않고 공장의 예스러움과 오래됨을 최대한 살려 놓은 것 또한 인상적이었다. 


방문한 날 푸드랩에서는 청소년들의 수다와 부산하고 소란스러운 소리가 넘쳐났다. 


사진의 오른쪽은 34동의 외벽이다. 그 뒤로 35동이 보이는데 왼쪽 건물은 8동으로서 여전히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공사가 진행되고 있으므로 관람객이나 이용하는 시민을 위해 보행로를 확보해 놓았다. 비록 공사 중이지만 안전한 관람이 가능하다.  


사진의 오른쪽은 34동의 외벽이다. 그 뒤로 35동이 보이는데 왼쪽 건물은 8동으로서 여전히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35동의 이름은 청주공연예술연습공간이다. 건물의 이름에서 충분히 알 수 있듯이, 35동은 청주시의 모든 공연 예술팀에게 연습 공간을 마련해 주기 위해 디자인되었다. 적지 않은 규모의 대연습실뿐만 아니라 중, 소 등 세 개의 연습실이 더 있고 샤워실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출처: 동부창고 홈페이지(https://dbchangko.org/)


대연습실 옆으로 남자 샤워실과 탈의실이 보인다. 안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었으나 불을 켜는 스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 35동에는 사무실이 따로 없어 불을 켜기 위해서는 34동으로 돌아가야 했는데, 관리인에게 수고를 끼치기 싫어 바깥 사진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대연습실 옆으로 남자 샤워실과 탈의실이 보인다.


이 건물에는 중연습실 외부 벽을 끼고 사물함이 길게 늘어서 있다. 사물함에 다가서 보니 사물함 전체의 3분의 2 정도에 이름표가 붙여 있었는데 모두 청주시의 예술인 단체였다. 연습을 위해 이 공간을 찾을 때 이 사물함을 활용할 것임에 분명하다. 


실내를 둘러보는 동안 가곡 연습 소리가 중연습실에서 새어 나왔다. 연습에는 에너지가 느껴졌고, 연습을 마치고 나오는 단원들의 표정에서 행복감과 만족감이 묻어났다. 비록 그들은 배고파 죽겠다며 무엇을 먹으러 갈까를 하이톤으로 논쟁하고 있었지만. 


이 건물에는 중연습실 외부 벽을 끼고 사물함이 길게 늘어서 있다.


36동은 청주생활문화센터로 네이밍되었다. 닉네임은 동부창고문화살롱인 것처럼 보였고. 36동은 다른 동에 비해 조금 더 버라이어티 했고, 시민을 위한 다양한 배려가 눈에 띄는 공간들로 디자인되어 있었다. 보는 맛도 가장 컸다. 


출처: 동부창고 홈페이지(https://dbchangko.org/)


다음 사진에서 보이는 공간이 빛내림홀이다. 소박한 무대에 소박한 음향이 설치되어 있는, 말 그대로 시민 동아리를 위한 공간이다. 이 공간은 그 이름처럼 특별한 조명 없이도 자연 채광과 실내 디자인으로 멋진 '빛'이 창조되고 있었다. 동아리실에서 연습을 마친 회원들의 멋짐이 뿜어져 나올, 소박하지만 위대한 공간이다. 꿈이 만들어지고, 다양함이 살아나는 진정한 난장의 판. 


여기가 빛내림홀이다. 소박한 무대에 소박한 음향이 설치되어 있는, 말 그대로 시민 동아리를 위한 공간이다


연습실이다. 연습실은 전면 거울이 있어 걸, 보이그룹 댄스를 카피하며 연습하기에 매우 좋은 장소로 단정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공간도 넉넉했다. 


연습실이다. 연습실은 전면 거울이 있어 걸, 보이그룹 댄스를 카피하며 연습하기에 매우 좋은 장소로 단정할 수 있었다.

  

카페가 보인다. 운영은 되지 않고 있었다. 큰 규모의 대관이 있거나 동부창고의 프로그램이 운영될 경우 문을 열 것으로 보인다. 관람객은 피곤한 다리를 잠시 쉬게 해 줄 수 있는 공간이다. 36동의 닉네임인 '동부창고문화살롱'이 보인다. 


카페가 보인다. 운영은 되지 않고 있었다. 큰 규모의 대관이 있거나 동부창고의 프로그램이 운영될 경우 문을 열 것으로 보인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데코가 된 공간이다. '미래에 추억을 전하는 느-린 엽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어 미래의 나, 미래의 사랑하는 사람 등에게 보내면 훗날 동부공장에서 이를 보내준단다. 언제 전달될지 쓰여 있지 않은 것이 오히려 기대감을 갖게 한다. 2년 후, 3년 후 혹은 더 먼 미래에 혹시라도 허무하고 깊은 한숨뿐인 시절을 지내고 있는 나에게 지금의 행복한 나의 마음이 배달되면 얼마나 기쁠까.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데코가 된 공간이다. '미래에 추억을 전하는 느-린 엽서'.


후기


동부공장은 도시에 난장을 벌리기 위한 하나의 위대한 판이다. 우리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시끄럽고, 시민들의 떠드는 소리, 자신을 개발하기 위한 연습 소리가 끊이지 않을 공간, 다양한 사람이 소통을 하며 솜씨를 뽐내고, 이를 통해 삶에 큰 위안을 받을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도시는 시끄러워야 한다. 나와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사람, 이질적인 문화라도 모이고 소통하고 융합할 때 새로운 미래가 창조된다. 획일적인 도시, 나의 이기심을 위해 존재하는 나만의 도시는 머지 않아 내 자녀도 거부하고 떠나고 싶어 하는 그런 공간으로 전락할 것이다. 


동부창고는 한때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냈을 일자리 창출의 허브였다. 하지만 수명이 다한 오늘, 도시의 다양성을 높이고 있다. 문화 예술인을 포용하고, 청소년을 포용하고, 아이들을 포용하고, 시민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포용하고 있다. 지역이 다시 살아날 것이다. 여전히 공사 중이지만, 전면 개관이 이루어지면 이 엄청난 개방성과 포용성은 도시의 미래를 밝히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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