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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진 Aug 26. 2019

도시, 살다 - 에필로그

다 전하지 못한 이야기

전하지 못한 이야기


부산의 감천문화마을에서 강릉의 월화거리까지 총 24편의 에세이를 이젠 마무리하고자 한다. 우울한 뉴스가 넘쳐나고 있는 현실 속에서, 4년간 한국의 특별한 '공간'을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은 내게 매우 큰 기쁨이었다. 글로 배우는 도시학이 아니라, 현장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정답을 고민하는 여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충분히 목적을 달성했는지 알 수 없지만, 가벼운 이야기 속에 숨겨진 무거운 주제 의식이 독자에게 전달되었다면 그것으로 정신 승리를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전히 가고 싶은 곳이 많고, 이미 갔던 곳 중에서도 글을 보태보고 싶은 곳이 있지만, 아쉬움이 남아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겠지. 다만, 글을 쓰기 위해 방문했으나, '도시, 살다'에 담지 못한 몇 개의 장소를 짧게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먼저 상하목장. 다들 잘 알겠지만, 우유와 아이스크림으로 유명하다. 물론 이 목장이 운영하는 로컬 푸드 마켓을 직접 방문해보면, 훨씬 더 다양하고 훌륭한 제품을 만나볼 수 있다. 식물을 좋아하는 부모님 세대와 동물을 좋아하는 아이들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장소다. 비슷한 안성 팜랜드가 소개되어 굳이 에세이에 포함하지 않았다. 밀린 것은 아니다. 여기도 매우 훌륭한 공간. 


상하목장은 오히려 마감 시간이 더 아름답다. 한가하고, 한 여름에도 선선하고. 전북 고창에 있다.


매우 탁 틔인 뷰를 제공한다. 각종 채소를 심어 놓았는데, 아마 재배해서 직접 식당에 제공하는 것으로 보인다.
상하목장은 매우 훌륭한 관광지이다. 마감 시간이 더 아름답다. 한가하고, 한 여름에도 선선하고. 전북 고창에 있다. 다양한 동물을 만나볼 수 있다.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과 프로방스 마을은 관광지로서는 이미 '전국구'이다. 경기 북부권에서 최고의 핫플레이스가 아닐까 한다. 규모가 매우 커서 하루 코스로 두 장소를 모두 체험하기는 어렵다. 책에 싣고자 하는 욕망이 컸으나 엄청 거대하고 유명한 장소여서 굳이 에세이로 작성하지 않았다. 전국구 스타는 감천문화마을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서. 


헤이리란 뜻은 파주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농요인 '헤이리 소리'에서 따왔다고 한다. 우리나라 예술인 마을의 시초 같은 곳이다. 1997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했다. 남부 프랑스 풍의 마을을 꿈꾸며 조성된 프로방스 마을은 유럽 스타일의 상점과 카페, 레스토랑 등이 한데 어우러진 마을로서, '한국 속의 유럽'을 비전으로 내세우고 있는 다양한 유럽 마을의 맏형 격이다. 헤이리와 비슷한 시기에 조성되었다. 

 

헤이리 마을은 정말 거대한 하나의 작품 같다. 플리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헤이리 마을에서 하루, 프로방스에서 하루를 보냈는데, 헤이리 마을에서는 잔뜩 구름낀 날씨였으나, 프로방스 방문할 때는 하루만에 날씨가 화창하게 바뀌었다.


제주도 서귀포시에는 걷기 좋은 거리로 소문 나 있는 '이중섭 문화거리'가 있다. 미술이나 사학을 전공하지 않아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한국의 대표 서양화가 이중섭(1916~1956)이 살던 집을 개조한 박물관을 중심으로 거리가 조성되었다. 


박물관은 그의 대표작을 구경할 수 있으며, 식물원처럼 꾸며져 있어 산책하기에도 참 좋다. 주변 거리에서는 마음에 드는 예술 작품이나 소품과 공방이 제작한 액세서리 등을 구경하고 구매할 수 있다. 이중섭 문화거리 역시 훌륭한 이야깃거리를 창조할 수 있는 소스를 제공할 수 있었으나, 부산 전포동 카페거리와 유사한 측면이 많고, 제주도에 위치한 장소가 에세이에 많이 포함되어 뺄 수밖에 없었다.  


문화거리에서는 마음에 드는 예술 작품이나 소품과 공방이 제작한 악세사리 등을 구경하고 구매할 수 있다.
작가의 산책길을 따라 걸어보자.


또 하나의 제주도 핫 플레이스. '성이시돌 목장'도 아쉽게 '도시, 살다'에 포함되지 못했다. 이미 많은 사례를 탐험한 제주도에 위치한 이유가 제일 컸지만, 도시 공간으로 보기에는 너무 자연주의적이었다. 이시돌 목장은 제주시 한림읍에 위치하고 있는데 인근의 앤트러사이트, 명월초등학교와 함께 방문할 수 있다. 


이시돌 목장은 외국인으로서 첫 명예 제주도민이 된 아일랜드 국적의 가톨릭 선교사 임피제(아일랜드 명: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 신부가 한라산 중턱에 양을 키우는 목장을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이시돌이라는 이름은 마치 우리말 같은 친숙함이 느껴지고, 이 목장을 만든 신부님의 한국식 이름 같지만, 사실 세비야의 대주교인 이시도르의 이름에서 유래하여 임피제 신부가 작명했다는 것이 거의 정설처럼 굳어진 것 같다. 


이 곳은 두 가지가 매우 유명하다. 먼저 아이스크림은 상하목장에 견줄 정도로 맛있다. 다음이 바로 이시돌 목장의 랜드마크인 테쉬폰이다. 테쉬폰은 페르시아 풍의 건축양식을 일컫는 데, 제주도에서도 1960년대에 이 양식을 따라 건물이 많이 지어졌다고. 이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은 잘하면 2000년 이상 생명이 지속된다고 한다. 


이시돌 목장은 아일랜드 국적의 카톨릭 선교사 임피제가 한라산 중턱에 양을 키우는 목장을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테쉬폰은 페르시아 풍의 건축양식을 일컫는 데, 제주도에서도 1960년대에 이 양식을 따라 건물이 많이 지어졌다.


수암골 벽화마을은 청주에 위치하고 있다. 수암골 벽화마을은 동피랑 벽화마을, 감천문화마을과 함께, 혹자의 평가에 의하면, 우리나라 3대 벽화마을로 꼽히는 곳이다. 이 장소는 아마 저자가 다음 책을 쓰기 시작한다면, 이야기 처음에 등장할 만큼 멋진 곳이다. 수암골은 한국의 전형적인 달동네로서 피난민의 정착촌이었다. 개발에서 소외되어 마을 전체가 빈민가로 전락하자 벽화마을 조성에 관한 논의가 2000년대 중반에 시작되었다. 


감천문화마을이 이 에세이의 시작을 열어주었고, 전주의 자만벽화 갤러리도 포함되어 수암골을 주인공으로 한 장을 집필하지 못했지만, 다음을 기약할 만큼 멋지고 멋진 공간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곳 역시 사람 사는 동네라는 점이다. 관람에 주의가 필요하다.


수암골 벽화마을에 방문한다면, 전망대는 들러야 한다. 반드시. 


수암골 벽화마을은 동피랑 벽화마을, 감천문화마을과 함께 혹자의 평가에 우리나라 3대 벽화마을로 꼽히는 곳이다.
왼쪽 사진은 전망대에서 바라본 청주시내 전경, 오른쪽 사진은 수암골 벽화마을에 조성된 먹거리 타운. 먹을 것 걱정 없이 방문해도 된다.


마지막으로 안성 바우덕이 축제와 남사당 공연장(안성 맞춤랜드)을 소개할까 한다. 안성은 조선시대 전국적 지명도를 가진 남사당패의 거점이었다. 안성시청 홈페이지에 따르면, 조선후기 바우덕이라는 인물은 안성에 살았던 남사당패의 꼭두쇠(남사당패의 우두머리, 등장에 앞장을 서며 공연을 리드)였다. 바우덕이는 열다섯에 여성 최초로 꼭두쇠에 올라였으며, 천민 신분이면서도 정삼품의 벼슬에 오를 만큼 한반도의 스타였다고 한다. 바우덕이의 전설 같은 이야기가 현대에 재창조되어 안성의 지역경제를 이끄는 축제로 다시 태어났다. 


현대의 바우덕이를 양성하는 곳이 남사당 전수관이, 이 풍물단의 홈(home)이 남사당 공연장이다. 안성시민의 자랑이 되고 있으며, 안성의 혼이 깃들어 있는, 마치 성지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큰 가치가 부여된 공간이다. 어려서부터 꼭두쇠로 자녀를 키우고 싶은 전국의 부모가 유학을 보내고 싶어 끊이지 않고 찾는, 진짜 남사당의 성지라 할만하다. 


바우덕이 축제는 10월 초 가을에 열린다. 세계 민속 축전을 유치했을 만큼,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민속 축제로서 관람객도 엄청나다. 안성 시민은 자동차를 가지고 바우덕이 축제가 진행되는 안성 맞춤랜드를 찾지 않는다. 대신 단체 버스나 셔틀을 이용한다. 외부 관광객에 대한 배려가 향기로운, 이 축제는 딱 5일 동안 즐길 수 있다. 


10월이면 안성을 검색해보자. 


바우덕이 축제의 하이라이트, 줄타기. 드론이 촬영을 하고 있는 것이 이색적이다.
왼쪽 사진은 안성 남사당 공연장 전경. 오른쪽 사진은 축제 중 어가행렬.
공연뿐만 아니라 다양한 놀거리와 먹거리가 준비되어 있다.


에필로그의 에필로그


글을 끝맺으려 하니 알 수 없는 감정이 마음속에서 일어난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에세이를 쓰기 위해 이야기를 생각해 내고 장소를 생각해 냈으니, 이 책의 마감으로 삶의 일부가 정리되는 느낌마저 든다. 이 에세이는 도시가 살아나는 공간을 바라보는 저자의 생각이 묻어있을 뿐 아니라, 크게 두 가지 테마의 이야기가 '장소'에 대한 소개와 함께 등장하고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유학시절의 이야기는, 비록 이 책이 저자의 끄적임에 지나지 않을 뿐이지만, '도시재생'을 연구하고 공부하면서 느낀 점을 통해 바람직한 '도시재생'에 대한 저자의 가치를 에세이를 읽는 독자와 공유하기 위해 삽입되었다. 


어린 시절 이야기는 도시라는 공간이 우리의 추억을 간직하는 공간으로 남아주었으면 하는 소망, 사람과 사람이 단절되는 공간이 아니라 소통하는 공간으로 도시가 다시 태어났으면 하는 소망을 독자와 공유하기 위해 삽입되었다. 


무너진 우리의 잿빛 도시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사람의 노력이 한 곳으로 모아져야 한다. 한때 부흥했으나 쓰러진 도시의 역사를 온몸으로 기억하는 주민에서부터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획으로 무장한 활동가와 연구자, 그리고 정책을 만들어 내고 집행하는 공직자에 이르기까지 한 마음으로 이어질 때, 얽히고설킨 도시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희미하게나마 드러날 것이다. 


우리의 도시가 더불어 함께 살만한 공간으로 회복되고 치유되길 바라면서 여정을 잠시 쉬어갈까 한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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