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좋은 배우자를 만났으니 나 역시 격하게, 좋은 배우자가 되고 싶었다. 살림이라곤 해본 적 없었지만 잘하고 싶어서 두근거렸다. 결혼 한 달 만에 예상치 못한 아이까지 들어섰다. 완전히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새로운 인생을 나는 정말 잘 살아내고 싶었다. 이전 삶에서 겪은 혼란과 좌절 실패를 모두 보상받을 만큼 대단히 멋진 가정을 이루고 싶었다. 입덧이 심했는데 남편이나 어른들이 일을 잠시쉬기를 권했다. 잠시 쉬려던 나는 곧미련 없이 일을 때려치우고 본격적으로 현모양처가 되기로 했다.인생의 목표는 이렇게 바뀌기도 한다.
요리와 청소와 빨래에 진심이었다. 살림과 육아책만 수십 아니 수백 권은 본 것 같다. 볼 수 있는 건 다 봤으니까 말이다. 남편에게 정리를 잘 못한다는 말을 듣고 정리 컨설턴트 자격증까지 따면서 나를 집사람으로 최적화시켰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할 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산후 우울증이 왔지만 남편에게 집안일을 맡긴 적이 없다. 남편은 집안일에 신경 쓰지 않고 바깥일에 전념하도록 하는 게 '현모양처'고, 그게 내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나에게 잘해주었고 아이들도 잘 커갔다. 모든 게 잘 되어가는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유능하고 지혜로운 현모양처가 되어가고 있다고 믿었다. 스무 살에 자립하고 늘 일에 쫓기던 나에게
온전히 내 살림 내 가정만 가꾸며 주인으로 사는 건... 즐거웠다.가정주부가 체질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나는
오래전 방송국에서 도망치며 회피했던 바로 그 두려움을 10년 만에 다시 생생하게 경험하고 있었다. '어, 이게 아닌데, 덫에 걸렸다'는 느낌. 그저 유예했을 뿐일까?
아마 코로나 상황이 아니었다면 몰랐을지도 모른다.
숨이 찰 때쯤 한 번씩 여행, 작은 일탈 등을 하면서 이 정도면 행복하다고 되뇌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코로나가 없어서 아이들이 등원도 하고최근 시작한 내 작은 사업을 키워갈 수 있었다면, 아마 이 모든 것-내 인생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고, 남편은 내편이 아니고, 내 감정은 둘 곳이 없다는 것-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게 사랑인 줄 알았지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가지고그의 안락과 행복을 위해 10년이나 애를 썼단 말이에요. 그 사람은 사실 청소년기에 화목하고 안락한 가정에 대한 결핍이 있거든요. 그걸 제가 알고 채워주려 애를 썼으면, 저도 얻는 게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저 많은 걸 바라지도 않았어요. 집안일도 육아도 싹 다 제가 해요. 부담 안 줘요. 요즘 그런 사람이 어딨어요? 그런데도 인정받는 거 같지가 않아요."
-인정이요?
"그냥 다정한 말 좀 해주고 잘한다고 인정해주고 그러길 바라는 게 욕심인가요? 그 사람은 절대 희생하는 법이 없어요. 제가 바라는 건 이만큼인데 무조건 자기는 딱 요만큼만 되니까 받아들이라는 말만 하잖아요. 뻑하면화성 금성 거지 같은 책 들먹이면서 변명하길래 진짜 꾹 참고 책처럼 대놓고 요구해도 '결국 안 준다'니까요? 저는그동안 제가 한 노력들이 너무 억울해요. 저는 뭐 청소하고 빨래하고 애 키우는 걸 언제 해봐서 지금 하고 있는 줄 아는 건가 봐요. 닥치면 하는 거고 간절하면 하는 건데 그런 노력조차 안 하는 게 너무 화가 나서 미치겠어요.. 엉엉엉...."
끄덕이며 내 말을 듣던 선생님은 말했다.
-그런데... 그건 사랑이 아니라 미끼를 던진 거 아닌가요? 사랑은 원래 조건이 없는 건데요.
사랑으로는 안 되는 일
전문의와 상담을 했는데, 알고 보니 내가 10년간 전업주부로서 수호해온 가치는 사랑이 아니었다. 내가 열심히 10년간 해 온 것은 사랑과 헌신이 아니라, 그냥 집안일과 생활이었다. 또한 내가 한 게 사랑이 아니듯, 내가 바란 건 남편의 사랑이 아니었다.
나는 현모양처라는 환상 속에 숨겨진 내 노동과, 내가 포기한 시간, 내가 될 수 있었던 나, 이 모든 것에 대한 보상을 원했다.
그리고 이미 알고 있지만 보상 같은 건 어디에도 없다. 놀랍게도 결혼에선 기브 앤 테이크가 안 통했다. 운명이라고, 결혼이란 1+1-=1 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우리는 각자 1인분의 삶을 살아내야만 하는 게 진짜 운명이었다.
그게 남편을 닦달해도 소용없는 이유였다. 내 그릇이 안되어 못했지만 아마 좋게 회유했어도 마찬가지였을거다. 남편이 아무리 좋은 사람이고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고 해도 이건 내 문제였다. 완벽히 내 인생의 문제였다. 지난 10년간, 내 인생이 생각보다 너무 많이 비어 있었다.
10년 만에 데자뷰처럼 다시 직면한 이 두려움은 그럼 어서 도망가라고 속삭였다. 그런데 어디로? 이미 도망쳐 온 나는 나는 더 이상 도망칠 데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