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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Jan 26. 2023

시어머니와 판도라의 상자

상반기의 주요 행사인 설날을 잘 보냈다.

연휴를 지내며 규칙적으로 유지해 오던 살림-육아-일 밸런스가 깨져서

오늘 일상복귀에 애를 먹긴 했지만.


시부모님과는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시가에 가면 우리 옷과 짐을 두는 방이 있는데, 이번엔 어쩌다 보니 그 방에 있는 장식물들을 유심히 보았다. 무슨 트로피 같은 것들이 많은데 주로 군인이었던 아버님 관련이다. 그중에 하나는 1985년의 국방대학원 졸업증서였다. 그리고 눈에 띄는 건 어머님 이름이 새겨진 명예 졸업증서.


내가 돌도 안 된 갓난아기였을 때, 그 아기의 미래 남편이 될 어린이의 아빠는 33살의 공군중령이었고, 그 아내는 명예졸업증서를 받았군. 상상 속에서 그날이 그려진다.  

어머님이 군인의 아내로 관사에서 살던 시절의 이야기는 몇 번 들은 적 있다. 군인인 남편의 계급과 서열은 그대로 아내의 서열로 이어진다고 했다.  그 서열에 따라 아내들은 각 집안의 대소사의 인력으로 동원되었다고 했다. 언젠가 어머님은 왜 이렇게 음식을 잘하시냐고 물었을 때, 왜냐하면 관사에 사는 동안 겨울이면 김장을 셀 수도 없이 했고, 그 세월 동안 하루가 멀다 하고 들이닥치는 손님들 상을 차리고 또 차렸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음, 말만 들어도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쉽지 않은 삶이었을 거다. 물론 군인의 아내로만 평생을 사신 것은 아니었다. 이후에 어머님은 사업가로서 또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는다.


여자 어른들의 지난 삶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지난 시대 여자들의 이야기는 어떤 영웅 서사보다도 파란만장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인지 판도라의 상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기억하기로 내가 가장 먼저 궁금했던 여자는 전쟁통에 홀몸으로 7남매를 키우며 억세게 살아남았던 우리 친할머니였다. 유년 시절 내내 나는 할머니랑 같은 방을 썼기 때문에 할머니의 생활을 관찰하는 게 하나의 취미였다. 엄마 다음의 애정을 담아 나는 할머니가 할머니가 아니었을 때의 생활을 상상하곤 했다. 주름이 없고, 팔은 희고, 눈은 여전히 부리부리했을 젊은 할머니의 모습은 나와 얼마나 비슷했을지를 말이다. 나는 어렸지만 그녀의 삶에 길고 긴 서사가 있음을 알았다. 가족이 많은 만큼 할머니에 대한 평가는 참으로 다양했는데, 정작 할머니 본인은 말을 아꼈던 것 같다. 아주, 지겨워서 생각하기도 싫다고 하셨던 것 같기도. 거기엔 팔자가 세다는 무신경한 표현으론 다 덮이지 않는 유구한 인생의 역사가 있을 것이었다. 여기저기에서 주운 이야기를 퍼즐처럼 맞춰 보면서 나는 묻고 싶은 게 많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직접 물어보기는 겁이 났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기엔 너무 어렸던 거다. 내가 어른이 된 후에,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정신이 온전하셨을 때에 본인에게서 종합적인 이야기를 듣지 못했던 것은 여전히 아쉬운 일이다. 내가 알지 못한 채 할머니와 함께 사라진 할머니의 이야기들. 사랑한 것에 비해 잘 모르고 헤어지는 가족의 이야기들.


어머니의 상자엔 무엇이 있을까. 반짝이는 유리 트로피 모양의 명예 졸업 증서를 보면서 생각했다. 무엇이 궁금해? 남편의 어린 시절이라거나, 뭐 그런 것뿐이 아니라 개인으로서 여자로서 살았던 한 시절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보물찾기 하듯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유전자의 힘으로 인해 나의 운명은 그녀의 운명과 어느 정도 맥을 같이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러나 아쉽게도 그런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기에 우리 사이에 아직 며느리와 시어머니 이상의 신뢰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가끔 지난 시절의 이야기를 하지만 이야기는 도돌이표가 있는 것처럼 자꾸만 어린 남편에 대한 추억으로 되돌아온다. 가장 안전하고 보장된 이야기 속으로 숨는 것처럼 말이다. 그녀와 추억이나 교훈 없는 인터뷰가 가능한 날이 올까? 궁금하다.


남의 엄마인 그녀를 어머니라 부른 10년의 시간 동안 소소한 실망들을 수렴하면서, 나와 남편의 엄마는 드디어 적당한 안전거리를 찾았다. 올 설날에는 여느 때보다 대충, 아주 대충 명절 같지도 않게 지냈는데 그래서 더욱 우리 사이가 안전하게 느껴졌다. 세상에 딸 같은 며느리란 게 있다면 이런 것 아닐까. 별로 애쓰지 않고 그냥 대충, 그럭저럭 적당히 명절을 넘기는 사이. 그녀는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없지만(상대적으로 실망을 더 많이 수렴하신 것 같기도) 나는 꽤 좋았다 이번 명절이. 이대로라면 판도라의 상자를 살짝 열어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는, 그런 순간을 기대해 봐도 좋겠다 싶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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