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와 이토 <츠바키 문구점>
마음을 나타내는 방식
1. 형식은 형식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형식은 때로 감동을 주기도 한다. 마음이 나타나는 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슬픈 편지는 연한 먹으로 쓴다는 발상은 당신과 슬픔을 공감하고 있다는 한 표현 방식이다. 연하게 쓰는 이유는 벼루에 눈물이 떨어졌기 때문이란다. 얼핏 들으면 얄팍 하달 수도 있겠지만, 슬픔의 무게에 겨워하는 사람들에게는 작지만 잔잔한 위로가 될 수 있다. 이 구절을 다시 읽으면 형식, 매너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본다.
오래되고 소소한 것들의 힘
2. 츠바키 문구점은 편지를 대신 써주는 한 문구점의 이야기다. 남의 편지를 대행해주는 일 자체가 존재했던 건지 궁금하지만, 실제로 있었던 모양이다. 요즘처럼 이메일이나 sns가 발달한 시대에 편지를, 그것도 남이 대신 써줄 것을 부탁한다는 것이 너무 먼 이야기 같다.
편지를 의뢰해오는 사람들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 주인공은 집과 고향이 지긋지긋해서 도회 생활을 한다. 먹과 벼루, 종이 같은 오래되고 케케묵은 것들로 탈출하고 싶어 하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다시 고향에 돌아온다. 할머니가 했던 편지 대필업을 이어가며 사람들의 마음을 이어주는 일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본다는 내용이다.
작품의 내용 자체도 좋지만, 옛날의 종이, 벼루, 먹이 쓰임새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문구의 오랜 역사를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를 준다. 작가의 취재 덕분이겠다. 소설의 장소가 되는 가마쿠라의 문화 (놀이, 축제, 건축물, 장소, 맛집, 온천 등)를 소개하는 부분은 소설 전반에 걸쳐 느슨하고 꾸준하게 나타나는데 읽다 보면 이 지역에 대한 작가의 애정을 느낄 수 있다. 마치 가마쿠라를 여행하는 기분이다. 이 소설이 애당초 가마쿠라 홍보를 목적으로 쓰인 것은 아닐 테지만, (그럴 거라 믿고 싶지만) 가마쿠라에 가고 싶어 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것이 문화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