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 Jun 04. 2019

새싹 캐려다 만난 내 작은 악마

나는 성악설의 후예.

  나는 여러 개의 식물 계정을 팔로우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네 개 화분의 주인으로써 무시할 수 없는 글을 보게 됐다. 벚꽃이 질 무렵 벚꽃나무 아래에는 새끼 벚꽃나무들이 새싹을 트는데 이 아이들은 조만간 잘려 나가니 생각 있는 사람은 서둘러 새싹을 캐와서 길러보라는 것이다. 당장에 집에 있는 지퍼팩을 들고 모종삽을 사러 갔다. 그리고 이슬비가 보슬보슬 내리던 날, 남편을 대동하고 집에 가는 길에 항상 우리 눈을 사로잡은 크고 예쁜 벚꽃나무 아래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새싹은 도처에 깔려있었다. 다 데려 오고 싶었지만 나는 식물계의 미니멀리즘. 네 개 화분의 주인이므로 두 개만 파서 지퍼팩에 고이 모셔왔다. 산삼이라도 모시듯 아주 정성스레 흙을 담았다. 십 센티 정도 자란 아기 나무. 말이 두 개지 가판에 파는 플라스틱 화분 안에 두 개가 다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작다.


남편과 새싹을 캐러 가기 전 혼자 집 앞 화단에 있는 다른 나무의 새싹을 캐러 간 적이 있다. 벚꽃나무가 그렇다면 계절이 계절인 만큼 다른 나무들도 새싹을 내지 않을까 싶어 미니멀리즘 답지 않게 새싹 욕심을 냈다. 열심히 새싹을 캐고 있는데 어떤 할머니가 와서 뭐하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유교사상 중심의 동방예의지국인 한국에서 자랐으므로 짐짓 예의 있게 설명을 드렸다. 인자하게 웃거나 귀여워하실 줄 알았지만 웬걸, 할머니는 비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심는다고 나무가 자랄까?" (응? 네?) "하하 일단 해보는 거죠 뭐." 다른 새싹이 또 없나 구경하는데 할머니가 말을 보탰다. "내 부추를 누가 그렇게 발로 밟았나 했네~"그러시는 거다. 그제야 화단 근처에 잔디처럼 생긴 게 부추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날 처음으로 새싹의 존재를 알게 된 나는 억울하여 여기 처음으로 발을 디뎓다고 설명을 드렸다. 그래도 할머니의 음모론은 그치질 않았다. 나 말고 누구라도 '일부러' 자신의 대파와 부추를 밟는다는 것이다. "누가 일부러 그러기야 했겠어요. 저처럼 모르는 사람이 실수로 밟았겠죠." "에헴, 뭐 그야 그렇겠지." 나는 서둘러 새싹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 달쯤 지났을까.

여유로운 아침을 보내는데 밖에서 큰 소리가 나길래 내다봤더니 공사를 하고 있었다. 주차할 자리가 없어 민원이 잦았는지 화단을 없애서 주차장을 넓히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래, 저 화단 주차할 때마다 너무 방해였어. 할머니 속 좀 아프겠네.' 그렇게 애지중지 대파와 부추를 생각하더니 공식적으로 텃밭이 짓밟힌 현장을 보며 나는 할머니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굉장히 고소해하며 나갈 준비를 했다.


이다지도 별일 아닌 별일에 일희일비하고 뒤끝이 긴 나는, 해를 거듭할수록 성악설에 조금 더 신뢰가 간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가 뭉클하지 않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