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러시아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사실 사람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여행지라면 어디든 있는 중국인 관광객. 특히 패키지로 여행다니던 사람들이 기억나는데 정말 그들은 어딜가나 있었다. 그들이 어디에나 있기때문에 관광을 마음데로 할 수 없었다. 너무 시끄럽기도 했고, 내가 보고 싶은 것들을 가리기도 했으니까.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관광객들에 대한 짜증도 생겼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도 그 관광객들 중에 한명이었다. 결국 나는 나같은 사람을 비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패키지라는 이유로. 다같이 다닌다는 이유로 비판당해서는 안되는 것인데 말이다.
여행을 다녀오고 사진을 찍고나니 그러한 사람들을 열심히 피해서 사진을 찍었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이상만을 인정하려 했던거 같다. 사실 현실이라는 것은 그것보다는 훨씬 더 더럽고, 추한 모습이 군데 군데 들어가 있다. 심지어 그 사진들을 색까지 보정해서 원래 눈으로 보이는 것 보다 더 멋지게 만들어버리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당시의 기억을 간직하고 싶어서이다. 기억과 감정이라는 것은 파도와 같아서 한번 몰아치고 나면 증발하고 사라져 버린다. 그런 기억과 감정의 한 조각을 움켜쥐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쓰는 거 같다.
러시아가 특이했던 점은 '공산주의'시절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공산주의 국가를 제대로 가본적이 없어서 이런 모습은 마냥 신기하기만 했는데, 특히 '전러시아 박람회장'은 공산주의라는 체제를 선전하기 위해 만든 장소이다. "우리 이렇게 잘나가고 있으니까 자유주의-자본주의 국가들은 별거없네" 라고 외치는 장소다.
메인 분수를 보자면, 마치 소비에트가 만든 '여름궁전'같다.
전러시아박람회장 근처를 가보면 우주박물관이 있는데, 여기도 체제 홍보의 성격이 아주 짙은 곳이다. 머리로는 체제홍보에 불과하다라고 생각해도 실제 눈으로 보면 그 스케일에 위축이 되는 것은 어쩔수가 없다. 모든 건물들이 그렇지만 러시아에서 동상이 있는데 동상속의 인물이 콧수염이 나고 머리가 벗겨져있다면 90%정도의 확률로 레닌이다.
이번 러시아 여행에서 가장 큰 보람은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갔다는 것이다. 앞으로 또 언제 이런 기회가 있을까 싶다. 부모님도 이제 나이가 제법 있으셔서 외국을 나간다는게 쉬운 일은 아닌데, 조금은 중간에 싸우기도 했고, 내가 어린애처럼 짜증도 부렸지만 큰 탈 없이 다치지 않고 무사히 돌아왔다는데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앞으로도 여행을 가고 또 여행기를 쓰겠지만 예전과는 조금 다른 마음일 거 같다. 여행을 통해 색다른 경험을 하면 우리는 무엇이 바뀔까? 사실은 똑같은 경험은 하고 있는건 아닐까? 늘 외국어를 사용하고 숙소를 찾고, 안 가본곳은 가보는 것의 반복에 불과한 것 아닐까? 다른 환경속에서 지내다보면 나는 바뀌게 되는 것일까? 다른 환경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 아닐까? 다만, 분명한 것은 여행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낸다는 것이고, 많은 이야깃거리는 우리를 더욱 행복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가끔은 여행을 통한 행복감이 미디어에 의해 너무 과장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얼마전 읽었던 사피엔스에 이런 얘기가 나와서 더 생각이 많아졌다.) 러시아라는 나라에 대해서 열정이 있어서 여행을 가는것이 순서가 아니었을까? 러시아에 대한 애정은 여행 이후에 생긴게 아닐까? 내가 했던 경험은 남들과 비교할 수 없으니 더 아름답게 간직되도록 합리화시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마치면서 문득 어떤 여행이 가장 행복했는지를 돌이켜봤다. 이번 여행은 위에서도 언급했듯 가족적인 의미로써는 충분히 좋았지만 개인적인 만족감은 아주 높지는 않았던거 같다. 개인적으로 만족감이 높았던 여행은 '분명한 목적이 있는 여행'이었다. 내가 잘 모르고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장소들을 가는 것보다는 확실히 내게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장소들이 더 의미가 있었다. 나에게는 그런 장소가 샌프란시스코/실리콘밸리쪽이었다. 스티브잡스의 생가나 안드로이드 동산이 있는 구글본사나 에어비엔비본사같은 곳이 더 인상적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괜히 쓸데없는 생각들이 많은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