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열정을 찾아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나를 알고 싶기 때문이다. 좀 더 범위를 확장하면 나를 통해 이 세상에 대해서 더 알고 싶고,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언제나 이런 열정을 가지고 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내가 사용하는 단어는 늘 내 머릿속에 그려진 형체를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이 글자화 되는 순간 또 다른 사람들의 머릿속에 들어가면서 한번 더 왜곡될 것이다. 그 간극을 조금은 좁혀나갈 수 있기를.
이 소설이 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았던 것은 스트릭랜드가 우리들의 아바타가 되어 우리가 절대 저지를 수 없던 일(하지만 한 번쯤은 해보고 싶었던 일)을 대신해주었기 때문이다. 18세기 이후에 종교의 시대가 가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이 중요한 인본주의의 시대가 왔다. 가족이나 주변 커뮤니티의 힘이 작아지고 개인의 결정과 생각이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과도기 속에서 불꽃과도 같은 삶을 산 사람이 스트릭랜드이다.
나도 한때는... 아니 누구나 언젠가 한 번쯤은 스트릭랜드가 된 적이 있을 것이다. 활활 불이 되어 주변의 모든 것을 무시하고 지금 이 순간 내가 하는 것만을 집중했던 삶을 살았던 적이 있다. 책을 읽으며 그랬던 삶을 다시 떠올려본다. 그때는 나의 한계도 인식하지 못한 체 그냥 무언가를 만드는 게 좋았던 거 같다. 만드는 행위 자체가 너무 좋았다. 밥 먹을 시간이 되었는데도 일어서지 않고, 한 줄 한 줄 아름다운 코드를 만들기 위해 집중했었다.
하지만 이후의 현실은 내 안의 열정을 많이 앗아갔다. 더 이상 내가 남들보다 훌륭한 개발자가 아니라는 거 때문일까. 그저 그런 사람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 혹은 경제적인 안정 속에서 찾아온 나태함일까. 더 이상 나는 반짝반짝 거리진 않는다. 불꽃의 순간을 다시 한번 맞이 할 수 있을까? 이제는 그냥 재가돼버린 것은 아닐까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그런데, 재가 되어도 괜찮은 거 아닐까? 꼭 열정적인 삶을 추구해야 하는 것일까. 평안 속에서 잘 지내는 것이 혹시 행복은 아닐까? 아직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책을 더 읽고 더 고민하다 보면 이 질문에 대해서 조금은 대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