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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meejong Jun 26. 2024

고기 중독에서 벗어나 채식을 시작했다

다큐멘터리 '음식이 나를 만든다: 쌍둥이 실험'을 보고

최근 '음식이 나를 만든다: 쌍둥이 실험'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그동안 소홀했던 다큐멘터리를 좀 봐야겠다 싶었던 참에 넷플릭스에서 추천 콘텐츠로 떠서 플레이를 하게 된 것. 내용은 여러 쌍둥이들을 대상으로 한 명은 잡식식단을, 한 명은 비건식단을 진행하며 그 변화를 지켜보는 것이다. 크게 성기능, 뇌, 신체나이, 장내 미생물 이 네 가지 관점에서 추이를 바라보는데, 결과를 말하자면 비건식단을 진행한 집단이 잡식식단을 진행한 집단보다 대부분의 영역에서 우위의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냈다. 인상 깊은 점은 여기서 제공한 잡식식단이 미국식 정크푸드가 아니라, 영양적 균형이 매우 훌륭하게 잡힌 식단이라는 부분이다. 


실험을 통해 비건식단이 훌륭한 잡식식단과 비교해서도 충분히 건강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더 우수하다고 충분히 뒷받침되었음에도, 그 내용이 나에게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아마 내가 채식을 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나는 여러 종류의 음식을 골고루 적당히 먹는 것이 인간의 몸에 더 자연스럽고 좋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너무 달거나 기름진 그래서 자극적인 것들을 멀리하고, 화학첨가물이 적게 들어간 내 눈으로 식재료가 큼직큼직하게 그대로 보이는 음식이라면 제일 좋다는 입장이다.


정작 내 눈길을 끈 것은 환경과 동물복지에 대한 기여, 그런 변화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행동이었다. 이 다큐는 앞서 얘기한 쌍둥이 실험의 가설과 시작, 중간 과정, 그 결과 분석 이 과정을 순행적으로 풀어내면서도, 그 중심 서사의 중간중간에 비건과 관련된 여러 가지 내용을 교차하여 보여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저소득층 지역의 낮은 채식 접근성. (2) 오로지 식용으로 태어나 길러지는 동물들의 끔찍한 사육 환경. (3)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구 오염 문제와 이 오염에 일방적으로 영향을 받는 빈민 지역 사람들. (4) 깨끗하다고 여겨지는 식품들의 위생 안전 문제. (5) 비건 치즈를 만드는 스타트업, 비건으로 완전히 탈바꿈한 세계 최고의 미슐랭 레스토랑, 버섯 농가로 전환한 전 양계 농장주. (6) 과거 담배와 우유가 그랬던 것처럼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산업자본이 만들어내는 축산업에 대한 허구의 이미지들.


사실 나는 얼마 전까지 최고급 한우를 직접 키우고 그것을 음식으로 판매하는 회사에 다녔다. 시장 조사를 위해서 이런저런 음식들을 많이 맛봤고, 사람들에게 회사의 제품을 최대한 많이 팔기 위한 일에 최선을 다해왔다. 그러다 언젠가 회사 레스토랑에서 최고 품질인 1++ (No.9) 한우 스테이크를 만들어 팔았는데, 이런 호사가 다 있을까 싶을 만큼 그 맛이 정말 훌륭했다. 그 소는 회사 소유의 농장에서 키운 초우량 소였는데, 사실 너무나 초우량이라 빠른 성장 속도를 무릎이 버티지 못하고 서 있을 수가 없는 상황에 대비해 미리 도축시킨 것이었다. 


외면하고 싶었지만, 업계의 내면을 알면 알게 될수록 마음속에 찝찝한 감정은 더욱 커졌다. 그렇게나 애정과 열정을 갖고 해 왔던 일인데 거리낌이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의 혀가 열광하는 마블링이라는 개념은 강력한 기득권 집단인 옥수수 사료 회사가 만들어냈다. 최고 품질의 한우는 대부분 오로지 식용만을 위해 인공 수정으로 태어나 평생 어떠한 번식활동도 하지 못한 채 우리 안에서 키워지다 죽는다. 어디 소만 그런가? 돼지며 닭이며 연어며 모두 마찬가지다.  


이런 거리낌이 채식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렇지만, 그와 동시에 또다른 생각도 들었다. 인간은 오랫동안 동물을 잡아먹어왔는데 본성에 기반한 행동이 잘못된 것일까? 그리고 나라는 사람은 평생을 고기반찬이 없으면 밥도 잘 먹지 않아 놓고서는 갑자기 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고기를 소비할 텐데 그러면 그 사람들은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인가? 채식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유난 떤다고 생각하고 나를 불편하게 생각할 텐데? 유튜브에는 채식에 대한 온갖 비난들이 가득하던데 몸이 잘못되면 어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쳐도 한참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기를 먹는 게 문제가 아니라 너무 과하게 많이 먹는 것이 문제였다. 어쩌면 중독일지도. 나는 많은 경우 식사를 식당이나 배달을 통해 해결하는데, 대부분 식사 메인은 고기가 차지하고 있다. 삼겹살, 돈가스, 치킨, 닭갈비, 제육볶음, 보쌈, 탕수육, 차돌박이, 불고기, 양꼬치, 순댓국, 갈비탕, 족발, 우삼겹샐러드, 돼지김치찌개. 이 음식들의 맛은 모두 다 아는 맛인데, 아는 맛이 반복되면 질리니까 질리지 않게 하기 위해 최대한 메뉴를 번갈아가면서 먹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언젠가부터 고기와 음식에 대한 만족감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분명 맛없는 음식이 아닌데, 맛있다는 느낌이 점점 줄어들었고 남는 것은 기분 나쁜 포만감뿐이었다. 더 나은 자극을 찾아 양을 늘리고, 센 것을 찾는 것이 중독이지 않았나?


동물에게 잔혹한 사육환경, 그리고 지구 자연의 오염에 일조하면서, 이제는 식사의 만족감까지 떨어진 식단을 할 필요가 없었다. 모든 식사가 맛있음과 고기맛과 짜릿한 자극을 추구해야 하나? 평상시에는 소박하게 먹다가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맛있다고 생각되는 식사를 해도 충분할 것 같았다. 오히려 그럴 때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바로 다음날부터 채식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약 두 달이 지났다. 


너무 빡빡하게 하기보다는, 일단 고기를 최대한 줄여보자는 관점으로 시작을 했다. 계란은 먹기로 했다. 대신 비싸지만 난각번호 1번을 선택하고, 그것이 불가하면 2번을 먹기로 했다. 외부 모임이나 미팅 때는 상대방이 불편할 수 있으니, 식당이나 음식을 가리지 않되 반찬을 많이 먹고 고기는 조금씩 먹는 것으로 했다. 왜 이렇게 안 먹냐고 물어보면 요새 고기가 안 당긴다고 대답하기로 했다. 김치 등 한식에 많이 사용되는 액젓까지는 가리지 않기로 했다. 그것까지 따지면 시작하기가 너무 어려울 것 같아서다. 나중에 적응이 되면 그때 더 깐깐해지는 것으로. 그리고 장모님이 주시는 반찬을 먹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해보니 생각보다 쉽다. 한식에는 나물과 같은 채식 반찬이 많아 집에서 밥만 하면, 반찬가게에서 사 온 반찬들로 충분히 풍성한 채식식단이 가능했다. 거기다 요새 비건 간편식이 많이 출시되어 나처럼 음식을 직접 하지 않는 사람들도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추천하는 냉동 3대장은 만두, 떡갈비, 볶음밥. 제일 좋아하는 조합도 생겼다. 콩고기로 만든 냉동 제육볶음밥에 난각 번호 1번 계란으로 만든 프라이를 얹고 오이에 간장/고춧가루/마늘/매실청을 버무린 오이무침을 곁들여 먹는 것이다. 워낙 볶음밥을 좋아했던지라 삼시세끼를 몇 날며칠이고 먹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밖에서 먹는 것은 제한이 많다. 보리비빔밥, 샐러드/포케, 야채김밥, 두부집 같은 것 외에는 딱히 대안이 없다.


계란을 먹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 건강 문제도 없다. 지인 몇몇이 비건을 하다가 건강문제로 포기를 했는데, 지켜봐야겠지만 부족한 영양분만 보충제를 통해 섭취하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 식물성 프로틴과 견과류도 최대한 챙겨 먹었다. 살은 1-2킬로 정도 빠졌는데 인바디를 보니 근육 운동을 꾸준히 해서 그런지 지방만 좀 빠졌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얼굴이 좋아졌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체감하는 가장 좋은 점은 찌뿌둥하고 무거운 느낌 없이 몸이 가볍고 속이 편하다는 점이다.  


두 달 동안 고기를 한 세 번 정도 먹은 것 같다. 모두 모임에서였는데, 맛있긴 했지만 생각보다 큰 감동은 없었다. 먹고 나면 채식이 무너질 줄 알았으나, 그다음에 또 당긴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분명 훌륭한 맛집이었는데도 말이다. 생각지도 못하게 여전히 끊지 못하는 것도 있다. 바로 간식. 과자, 초콜릿, 빵, 아이스크림. 하나씩 대체재를 찾고 있다. 아이스크림은 찾았고, 나머지도 찬찬히 찾아보려고 한다. 그리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술이 많이 줄었다. 논알콜맥주나 위스키를 살짝 섞은 하이볼 정도가 주를 이루지, 예전처럼 위스키를 니트로 몇 잔씩 마시지 않는다. 이건 아마도 자극적인 음식을 적게 먹다 보니, 페어링이 되는 술도 자연스레 적게 먹게 된 것 아닐까 싶다.


이번주에 오랜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 위스키를 좋아하는 애들인데 출장 갔다 오면서 좋은 걸 사 왔다고 간만에 보자고 한다. 나는 내가 알아서 먹을 테니 너넨 먹고 싶은 거 알아서 시켜 먹으라 해야겠다. 나는 위스키에 비건만두에 썬칩을 먹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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