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우면 길을 잃은 게 아니다

우리 삶의 대부분은 이야기되지 않는 시간이다.

by Nova G
나는 평생 동안 책을 읽었다. 얼마나 많은 신기한 모험 이야기를 읽고, 비극적인 인물들과 별난 성격들을 접했던가. 마치 비일상적, 예외적, 일회적 사건과 우연 외에 다른 이야깃거리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인생이란 별난 모험이 아닌 일상적 법칙의 흐름이다. 삶에 나타나는 특이하고 비일상적인 것은 단지 삶의 바퀴가 덜컥거리는 소리일 뿐이다. - 카렐차페크, <평범한 인생>, 열린책들


우리는 흔히 인생을 몇 개의 장면으로 기억한다.


첫사랑, 어떤 중요한 선택, 실패나 성공 같은 순간들. 마치 한 사람의 삶이 그런 사건들로 이루어진 것처럼 말하곤 한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장면들 사이에는 훨씬 더 긴 시간이 있다. 특별히 말할 것도 없는 평범한 날들, 기록되지도 기억되지도 않는 시간들.


오늘 선택한 문장을 읽으며 얼마 전의 밤이 떠올랐다.


퇴사를 코앞에 두고 있던 때였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이 되면 아이들을 재운 뒤 책상 앞에 앉았다. 이미 피곤한 몸이었지만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이상하리만큼 집중해서 문장을 이어가던 어느 순간,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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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이 글을 쓴다고 당장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글 쓰는 삶으로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면...? 이 시간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게 아닐까. 차라리 잠이라도 푹 자는 게 더 현명한 선택 아닐까. 건강까지 해치면서, 지금 내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다가도 이상하게 또다시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꾸준히 쓰지는 못했지만, 나는 결국 다시 노트북을 켜고 앞에 앉아 있었다. 때로는 내가 쓴 한 문장이 마음에 들어 기분이 좋아지고, 한 편의 글을 마치면 괜히 뿌듯하기도 했다.


물론 이걸로 무언가를 이룬다면 더없이 행복하겠지. 하지만 그러지 못한다면?


그러다, 우연히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


주말에 딸아이가 <인사이드아웃2>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대사가 내 귀에 꽂혔다.


"즐거우면 길을 잃은 게 아니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조금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늘 결과로 시간을 판단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일이 결국 어디로 이어질지, 무언가를 이루게 해 줄지. 그래서 글을 쓰는 그 밤의 시간도 자꾸만 ‘쓸모 있는 시간인가’ 하고 따져 보게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글쓰기로 결국 어떤 성과를 이루지 못한다 해도, 그 시간 동안 내가 몰입하고 있었고, 한 문장을 붙잡고 기뻐하고 있었다면 그건 길을 잃은 시간이 아닐 것이다.


차페크의 문장처럼, 인생은 별난 모험이 아니라 대부분 조용한 일상의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사건’이라고 부르는 순간들은 어쩌면 그 흐름 속에서 잠깐 나는 덜컥거림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을 채우는 시간의 대부분은 아마도 특별한 이야기로 남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들려줄 만한 사건도, 기록할 만한 성취도 없이 흘러가는 날들이 더 많다.


하지만 그 평범한 시간 속에서 우리가 가끔 웃고, 어떤 일에 마음을 빼앗기고, 이유 없이 조금 기뻐하고 있었다면.


그 순간들은 결코 길을 잃은 시간이 아니었을 것이다.


인생이란 결국 어디에 도착했는가 보다, 어떤 마음으로 시간을 살아냈는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조용히 흘러가던 나의 평범한 하루들도 조금 다른 의미로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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