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어도 되는 아이에서, 울지 않는 아이로
그때까지 가정과 작업장과 친구들 무리에 속해 왔던 아이는, 이제 학교라는 곳에서 대부분 알지도 못하고 공통된 세계를 나눌 것이 없는 40명의 아이들 속에 외롭게 홀로 앉아 있었다.(...)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고 싶었지만, 다른 아이들의 비웃음을 살까 봐 두려웠다.
- 카렐 차페크, <평범한 인생> 열린책들 32p.
둘째가 초등학생이 되었다.
남편은 아직도 저녁마다 딸을 보며 감탄을 연발한다.
“아, 우리 **이가 초등학생이야!”
그게 뭐 그렇게 엄청난 일이라고 유난을 떠는지 남편이 오버스럽다 느끼다가도, 불현듯 나조차도 놀라고 만다.
아, 우리 딸이 초등학생이라니!
초등학생이 된 지 이제 겨우 일주일 남짓.
아직도 이 아이가 사회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문득문득 의아해진다. 그렇다고 걱정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이 아이가 어떤 모습으로 세상 속에 서 있는지 궁금해질 뿐이다.
오늘 우연히, 학교는 아니지만 집 밖에서 아이의 ‘사회생활’을 지켜볼 수 있는 일이 있었다.
아이들이 함께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딸아이가 룰을 잘 몰라 틀리고 말았다. 그러자 같은 반 친구 하나가 큰소리로 외쳤다.
“**이 실격! *** 실격!”
그 말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이는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
멀리서 보기만 해도 딸의 얼굴이 빨개지는 것이 보였다. 선생님들이 이현이에게 괜찮다고 등을 토닥여 주었고, “친구가 몰라서 실수한 거니까 놀리면 안 된다”라고 그 아이를 타일렀다.
그럼에도 아이이의 부끄러운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것 같았다. 얼굴은 점점 굳어갔고, 눈에는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멀리서 바라보는 내 딸의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괜찮다고 안아주고 싶었다.
엄마 품에 안겨 마음 편히 엉엉 울게 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없었고, 한편으로는 이 아이가 어떻게 하는지 끝까지 보고 싶기도 했다.
가만히 지켜보니, 아이이는 울음을 참는 중이었다.
놀림을 받아서 부끄러운 것보다, 여기서 울어버리는 자기 모습을 더 부끄럽게 여기는 것 같았다.
차오르는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슬쩍 닦아내기도 하고, 눈을 크게 떠서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게 애쓰고 있었다.
잘 참고 있구나, 우리 딸.
그래, 괜찮아. 별거 아니지? 금방 지나갈 거야.
달려가 안아주고 싶었던 마음은 어느새 조용한 응원의 마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사실 그냥 울어버려도 되었을 텐데.
엄마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엄마에게 달려와 안겨서 울었을 법도 한데.
집이었다면 이미 크게 울음을 터트리고도 남았을 텐데.
그런데도 끝내 울지 않았다.
아이는 자기감정을 자기 혼자서 다뤄보고 있었던 중이었다. 이미 처음이 아니었을 것이다.
친구들 사이에서 눈물을 삼키는 법을 연습하고 있었다.
그 작은 얼굴로, 세상 속에서의 자기 자리를 조금씩 익혀 가고 있었다.
아이가 울음을 참은 것은 강해서가 아니다.
세상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조금씩 자기 감정을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내 딸의 작은 사회생활은 이미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