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는 착각

우리는 왜 삶을 자꾸 ‘다음’으로 미뤄왔을까

by Nova G


그러나 학교에서 보낸 시기, 그 8년이라는 세월은 전체적으로 보아 이상하게도 형태가 없고, 거의 아무런 의미를 가지 지 못한다. 그 시기는 인내심 없이 오직 지나쳐 버리기 위해 산 젊음의 세월이었다. 다시 돌이켜 보면, 그 시기에 나는 얼마나 굶주린 듯 열렬히 학교와 무관한 것을 경험하려고 들었던가. <삶을 위한 준 비>가 아니고 삶 그 자체라면, 그것이 우정이든, 소위 첫사랑이라고 하는 것이든, 친구들과의 갈등이든, 독서나 신앙 문 제 또는 바보짓이든 가리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이 몰두할 수 있는 어떤 것, 바로 현재의 자신에게 속하는 것이며, 졸업 시험이 끝난 후이거나 학교에서 말하듯 <준비가 끝난 후>의 것이 아니었다. (...) <행복한 청춘 시절>이라는 말은 얼마나 단순한 표현인 가! 그런 표현과 더불어 우리는 분명 그 당시 건강했던 치아와 위장을 생각할 따름이지 고통스러워하던 영혼은 간과해 버린다. - 카렐 차페크, <평범한 인생> 열린책들 56, 57p.


치열했던 입시전쟁을 통과하고 대학생이 되었다. 우리 학교는 캠퍼스도 크고 교정이 예쁘기로 유명했다. 벚꽃이 만발하던 4월이었다. 4월은 잔인한 계절이라 하던데 그때는 그 말의 의미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저 이렇게 예쁘고 화창한 봄날, 오래된 콘크리트 건물의 차가운 강의실에서 또 두 시간을 버텨야 한다는 게 답답하게 느껴졌을 뿐이다. 중간고사를 코앞에 두고 있었다.



나는 친구들과 강의실 중간쯤에 나란히 앉아 강의를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동기들의 얼굴은 아직도 낯설었다. 그 얼굴들의 표정을 천천히 살펴보니 대체로 나와 비슷한 심정인 듯했다.



강의실 맨 앞줄에서 남학생 두 명이 졸음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엎드려 숙면을 위한 자세를 취했다.


교수님은 결국 못 참겠다는 듯 잔소리를 시작했다.



너희들 인생에서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준비기간인 줄 아느냐. 이렇게 시간을 버리고 있는 것에 대해 나중에 얼마나 후회하려고 하느냐. 그런 내용의 말이었다.



결국 잠에 빠져들지 못하고 남학생 한 명이 천천히 고개를 들며 한탄하듯 말했다.



“하… 대학만 가면 재밌는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더니 고등학교 때랑 똑같은 말을 대학 와서 교수님한테도 듣다니... ㅅㅂ.”



교수님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말을 듣지는 못했다.


그 애의 말에 나는 웃고 말았다. 너무도 공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 류의 어른들의 잔소리는 그때가 마지막일 거라고.


그래, 대학생도 학생이니까 아직은 내가 진짜 성인이 되기 위한 중요한 시기겠지 하고.


하지만 취업을 준비할 때도, 첫 직장에 들어가서도 그런 말은 계속되었다.



“첫 직장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아냐. 첫 직장은 무엇을 이루기 위한 곳이 아니라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배우는 곳이다.”



내 삶은 늘 어딘가를 향해 준비 중이었다.


고등학생일 때는 대학을 위해 준비했고, 대학생일 때는 취업을 위해 준비했고, 사회인이 된 뒤에는 또 다른 미래를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하물며 이미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가 되었음에도 나는 본격적으로 내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아직도 무엇을 위해 계속 준비하고 있다.




마치 진짜 삶은 항상 다음 단계에서 시작될 것처럼 말해졌다.



과연 내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그보다 훨씬 전부터 이미 살고 있었다.



친구들과 의미 없는 농담을 하며 웃던 날들, 수업시간에 졸음을 참지 못해 고개를 떨구던 오후의 시간들,


별것 아닌 일로 친구와 서운해하고 또 금세 풀어지던 순간들.



그런 시간들은 항상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그저 지나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시작될 진짜 인생을 기다리며 보내는 준비기간이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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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참 이상한 일이다.


그때의 기억들은 여전히 또렷한데, 정작 우리가 준비한다고 믿었던 미래는 늘 또 다른 준비의 이름으로 미뤄지고 있었다. 오랫동안 같은 착각 속에 살아온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늘 다음 단계를 기다리며 살았다.


대학에 가면, 취업을 하면, 조금 더 안정되면 비로소 삶이 시작될 것이라고 믿으면서.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때도 지금도 우리는 이미 살고 있다.


다만 아무도 그것을 진짜 삶이라고 말해주지 않았을 뿐이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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