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앞에서 보면 우연, 뒤에서 보면 필연

아이를 키우며 보낸 5년, 퇴보가 아니라 궤도 수정이었다

by Nova G
나의 내면이 뒤흔들릴 때 나는 산산이 부서지게 되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그사이 나는 이미 인생의 올바르고 긴 궤도에 들어서고 있었다. 인생이 궁극적인 본궤도에 다다르게 되면 사람의 내면에는 어떤 보호 장치가 작동한다. 그때까지는 자신이 이런 또는 저런 존재가 되거나, 여기로 또는 저리로 가야 하나 하는 모호함이 있었지만, 이제는 자신의 의지보다 더 높은 정당성에 의해 자신이 결정된다. 그 때문에 내면의 자아는 이 흔들림이 바로 운명이라는 기차의 바퀴가 올바른 궤도로 진입하면서 내는 덜커덩 소리임을 모르는 채 좌충우돌한다. 이제 나는 모든 것이 유년기 때부터 올바르고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진행되었음을 알고 있다. 단순한 우연에 기인하는 것은 아무것도, 거의 아무것도 없었고, 모두가 필연의 사슬로 연결되어 있었다. -카렐 차페크, <평범한 인생>, 열린책들 83p.


인생에는 종종 불협화음 같은 ‘덜커덩’ 거리는 순간이 찾아온다. 우리는 보통 그것을 위기라고 부른다. 계획했던 일은 제자리걸음이고,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심지어 내가 누구인지조차 흐릿해지는 시간.


나에게는 아이를 키우며 지방에서 보냈던 지난 5년이 그랬다. 분명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고 있었지만, 세상의 속도에서 홀로 떨어져 나간 기분이었다. 사회적 역할은 지워졌고, 하루의 전부는 아이와 집 안이라는 좁은 세계에서 흘러갔다. 그때 나는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바쁠 때는 피곤해서, 시간이 없어서 미뤄두었던 문장들이 이상하게도 나를 다시 불러 세웠다.


처음에는 그저 버티기 위해 읽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책은 잠들어 있던 감각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세상을 해석하고, 타인을 깊이 읽어내며, 마침내 나라는 사람을 다시 응시하는 감각. 지금 돌아보니 그 시간은 인생에서 멀어져 있던 퇴보의 시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나만의 고유한 방향을 향해 조금씩 궤도를 수정하던 필연의 시간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영화 <에반 올마이티>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신으로 분한 모건 프리먼은 근심에 잠긴 이에게 이렇게 묻는다.


"누군가 인내를 달라고 기도하면 신은 그 사람에게 인내심을 줄까요, 아니면 인내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실까요? 가족이 가까워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묘한 감정을 뿅 하고 만들어줄까요, 아니면 서로 사랑할 기회를 마련해 줄까요?"


삶은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완성된 형태로 던져주지 않는다. 대신 그것을 빚어낼 수 있는 시간과 상황을 먼저 건넨다. 그 상황은 때로 결핍이나 고립, 혹은 흔들림의 모습으로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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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또 다른 덜커덩거림 속에 서 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그리고 경력의 공백을 메우고 다시 사회로 나갈 채비를 하는 한 개인으로서. 익숙한 조직으로 돌아가 안정적인 회사원이 될 것인지, 아니면 조금 더 시간을 들여 내가 정말 닿고 싶은 나만의 방향을 개척할 것인지 매일 고민한다.


여전히 길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지금 들리는 이 소란스러운 소리가 미아가 되었다는 신호가 아니라, 내 인생의 본궤도에 단단히 올라타는 바퀴의 마찰음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인생은 앞에서 보면 우연이고, 뒤에서 보면 필연이다. 지금의 이 흔들림 또한 훗날 돌아보면, 내가 되어야만 했던 그 사람으로 나를 밀어 넣고 있었던 가장 정교한 설계였음을 믿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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