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들의 실패를 응원한다

by Nova G
세상이란 보다 강하고 용감한 그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나는 패배자였다. 그것이 평범한 인생의 완성인 셈이었어. 나의 패배를 바라보는 것 말이야. 그 패배를 경험하기 위해선 조금은 위로 올라가야 했지. - 147p.


어릴 때는 누구나 많은 꿈을 꾼다. 지금 우리 아이들도 그렇다. 하고 싶은 것과 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도대체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말한다. 다 해보라고.


이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미래의 직업을 하나로 단정 짓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가능한 한 많이 경험해 보라는 뜻이다. 이미 우리는 하나의 이름으로 자신을 설명하기에는 너무 많은 가능성을 품은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렇게 여러 방향으로 나아가보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한계와 마주해 보라는 뜻이다.


우리 딸은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끼는 분명 있지만, 엄마의 눈으로 보면 재능이 있다고 말해주기는 어렵다. 아마도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 순간 아이는 슬퍼할지도 모른다. 나 역시 어린 시절, 비슷한 깨달음 앞에서 조용히 무너져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바란다. 그 무너짐이 끝이 아니라,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는 시작이 되기를. 한 방향이 닫히는 대신, 다른 길을 알아보는 눈을 갖게 되기를.


돌이켜보면 나 역시 많은 것들을 해왔다. 똑똑한 아이라는 말을 듣던 시절도 있었고, 모범생으로 지내던 시간도 있었다. 그 이후로도 여러 방향으로 흘러가며 살아왔지만, 남들처럼 안정된 자리를 갖지 못했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패배자처럼 여겼던 적이 있다. 최근 퇴사를 하면서 그 감정은 다시 또렷하게 떠올랐고, 지금까지의 시간이 과연 어떤 의미였는지, 앞으로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 속으로 다시 들어가게 되었다.


오늘의 문장 앞에서 문득 멈춰 서게 된다. 의미가 있든 없든, 그것이 곧 나라는 말.

그 문장은 내가 붙잡고 있던 질문을 조용히 내려놓게 만들었다. 마흔다섯 해를 살아온 시간을 어떻게 단순히 실패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무엇을 이루었는가 보다, 어떻게 지나왔는가가 나를 설명하는 일이라면, 내 삶은 이미 하나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나는, 삶의 끝에 이르러서도 내 인생을 실패라고 부르지는 않을 것이다.

특별히 빛나는 무엇이 없어도, 완전히 무너진 적이 없더라도, 그저 그렇게 지나온 시간들이 나를 이루고 있었다고 말하게 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조금 더 위로 올라가 보고 싶다. 그 끝에서 무엇을 보게 될지, 어떤 한계와 마주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그곳까지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어쩌면 그 과정에서 또 한 번의 패배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 또한, 결국은 내가 될 테니까.

그리고 나는, 내가 그렇게 기꺼이 실패하는 모습을 아이들이 보고 자라기를 바란다.

실패를 피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패를 지나서도 계속 나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배우기를 바란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08화매일 하는 그것이 결국 당신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