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학벌, 평가… 그리고 내 선택
남편과 나는 네 살 차이다.
내가 네 살 많지만, 빠른 생을 적용하면 실제로는 다섯 살이 많은 셈이다.
남편과는 삼 년 넘게 연애하다가 결혼했다. 삼 년이라는 시간 동안에도 우리는 헤어지고 만나기를 반복했다.
왜 그랬을까. 남편은 어떤 이유로 그랬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나이 차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갓 서른이 되었고, 남편은 고작 이십 대 중반이었으니 서로를 대하는 태도도, 연애 태도도 많이 달랐다.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았고, 남편은 생각이 너무 없었다. 그런 것 같았다.
연애를 시작하면서, 친한 친구들에게 사실을 알리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이유는 역시 나이 차이 때문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결혼 소식을 알리기 바쁜데, 나는 철없는 연애를 시작한다니 나 자신조차 철없어 보이는 게 싫었다.
자주 연락하며 만나던 친구들 몇몇에게만 연애 사실을 알렸는데, 친구들이 축하의 말을 건넬 때마다 나는 꼭 이렇게 덧붙였다.
"일단 그냥 만나보는 거야."
나이 차이는 이미 나에게는 극복할 수 없는 문제였다.
반면 남편은 초반부터 가족들에게 나의 존재를 알렸고, 나에 대해 수시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런 모습조차 내 눈엔 어린아이 같은 행동으로만 보였다. 그럼에도 이 남자와 함께 있는 시간은 즐겁고 유쾌하기만 했다. 어린애 같아 결혼 상대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순수함이 좋았다.
그렇게 삼 년을 나이 탓하며 헤어지고 만나기를 반복했다.
어느 주말 조용한 오후,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데 남자친구의 전화가 울렸다. 남자친구의 아버지였던 것 같다. 두 사람의 대화가 조용히 오가는 듯했는데, 핸드폰 너머로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할머니랑 빨리 헤어져!"
남자친구는 전화기를 놓치듯 내팽개치고, 내 귀를 막았다.
기가 막혔지만, 의외로 웃음이 났다.
나에게서 해로운 말을 차단해 주려는 그의 순간적인 행동 덕분에 '할머니'라는 표현은 내 마음에 스크레치를 남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목소리의 여자와 나는 아무 관련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내재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 남자와 결혼할 생각이 없었기에, 나를 ‘할머니’라고 부른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었다.
그리고 뭐, 내가 나이를 훔쳐서 먹었나?!
하지만, 자신만만했던 내 생각과 달리, 결국 나는 이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내 의지로 한 결혼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결혼을 '하게 되었다'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다.)
결혼 준비로 좀 분주했던 어느 날, 우연히 예비 시어머니의 문자 메시지를 보게 되었다.
남자친구가 자리를 비운 사이, 테이블 위에 올려둔 남자친구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리며 화면에 메시지가 볼록하게 떠 올랐다. 메시지가 특별히 크게 뜰 리 없다. 하지만 그날의 메시지는 내 눈에 돋보기를 갖다 댄 듯 선명하게 들어왔다.
"그러니까, 엄마도 명문대 며느리 보고 싶어."
나를 ‘할머니’라고 부른 말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이번은 달랐다.
그야말로 “헐…” 소리가 절로 나왔다.
어머님이 나를 탐탁지 않아 했던 이유는 나이 문제가 아니었단 말인가.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나를 탐탁지 않아 하는 어른들을 만나 본 적이 없었다.
엄마 아빠의 친구분들, 나의 모든 선생님들,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났던 사장님들, 심지어 회사 사람들까지 모두 ‘싹싹하다’, '어딜 가나 예쁨 받을 거다'라는 칭찬을 들었던 나였다.
그래서 나는 의심의 여지 없이 ‘예쁨 받는’ 며느리가 될 줄 알았다. 나에게 달콤한 칭찬을 건넸던 사람들을 떠올리니 지금의 상황이 더 기가 막혔다.
착각은 자유이고 나는 그 자유를 누렸을 뿐이라 생각하며 나를 다독였지만, 현실과의 괴리감이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그리고 결혼해서 살아가면서도 나는 끊임없이 누군가와 비교당하고, 나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할머니랑 빨리 헤어져"
"명문대 며느리 보고 싶어"
그때마다 이 두 마디는 잊은 듯 잊히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마음이 살짝 움츠러들기도 했지만, 동시에 알게 되었다.
누군가 나를 평가할 때, 그 말속에는 평가하는 사람 자신의 불안과 자격지심이 숨어 있다는 것을.
누군가의 기대와 비교 속에서 내가 작아질 필요는 없다는 것을.
그리고 내 삶과 내 선택은 오롯이 내 것이어야 한다는 걸 끊임 없이 확인하고 노력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