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원한 건 ‘명문대’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덮을 체면이었다
“그러니까, 엄마도 명문대 며느리 보고 싶어.”
시어머니가 남편에게 보낸 메시지를 보고, 나는 꽤 오래 생각했다.
나는 내 학벌이 부끄러운가?
아니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공부했고, 내가 다닌 학교가 대단히 자랑스럽지는 않지만 부끄럽지도 않다.
속 좁은 마음으로, 남편과 남편 형제들과 비교해 본다 한들, 나의 학벌이 이 집안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들었다.
명문대 며느리를 원한다면, 먼저 자식이 명문대여야 가능한 요구 아니겠는가.
그 억울함은 마음속에 묻어둔 채 결혼했다.
그리고 신혼 초.
남편과 나눈 많은 대화 속에서, 나는 서서히 어머님의 그 문장이 어디에서 왔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시댁에는 명문대를 나온 아버님의 형님들이 계셨고, 어머님은 그 안에서 늘 비교되는 기분을 느끼셨을지도 모른다. 어머님에게 ‘학벌’은 개인의 공부 이력이라기보다 '뭔가를 지켜내기 위한 체면' 같은 것이었다.
아버님은 3남 3녀 중 다섯째로, 형제들 중에는 가장 막내이시다. 두 형은 그 어려운 시절에도 S대를 졸업했다. 결혼 후 어머님은 자연스럽게 남편의 형들 가족들을 돌보는 역할을 맡았다고 했다. 윗세대의 여성들이 그러했듯.
남편 말에 따르면, 대학 교수이셨던 바로 위 큰아버지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본인의 꿈이 깨지자 자식 교육에 온 힘을 쏟았다고 한다. 실제로 두 자녀 모두 명문대를 졸업시키고 아들은 변호사, 딸은 의사로 만들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촌들도 모두 하나같이 명문대를 졸업했을 뿐 아니라, 사회적인 지위가 꽤 높은 사람들도 여럿 되었다. 내가 들어도 좀 놀랍긴 했다.
그러다 보니, 그 비교의 프레임 속에서
어머님은 상대적으로 “자식 교육에 실패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남편은 결혼 전부터 자기네 삼 형제는 실패했다는 말을 자주 했었는데. 그 기준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 것 같았다.
친척 어른 중 한 분은 아버님 형제들을 두고 이런 말까지 했다고 한다.
“형들 두 명은 자신의 학력에 비해 본인 삶은 잘 안 풀렸지만 자식들은 성공했고, 막내는 학력에 비해 스스로는 명예롭게 살았지만 자식들은 잘 안 풀렸다.”
그 말을 들었을, 그때의 시어머니를 생각하니 조금 가여웠다.
하지만 내가 만나 본 시댁 친척 어르신들이나 남편의 사촌들은 자신들의 학벌이나 지위를 으스대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남편을 통해 듣지 않았다면 그들의 사회적 배경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소탈하고 유쾌한 분들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분명해졌다. 남편이나 어머님이 품은 건 그들의 자격지심이었다.
한편으로는 또 생각해 본다. 내 주위에 그렇게 잘난 사람들만 있다면 나는 과연 어떠한 자격지심도 없이 살 수 있었을까. 스스로 비교하는 마음 없이 당당하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
시어머니에 대한 측은함이 스쳤다. 하지만 동시에, 원망과 경계심을 함께 품었다.
'왜 그런 분위기에서 한마디도 못하고 살아오셨는가. 그 사고방식이 나와 내 아이들에게도 미치게 놔둘 순 없다.'
속 사정을 알고 나니 시어머니의 속마음 같은 건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어머님이 품은 허황된 욕심은 어머님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그저 좋은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우리 시어머니가 나를 대놓고 구박하거나 쌀쌀맞게 대한 적은 없다. 명문대 출신이 아니라 탐탁지 않아도 기왕 결혼했으니 마음을 바꿔 먹고 나를 예뻐하시기로 결심하신 건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최선을 다해 잘해주셨다.
결혼 한 첫 해의 며느리 생일은 시어머니가 챙겨주는 거라며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내 생일상을 봐주셨고,
결혼 후 첫 명절에는 친정 갈 때 두 손 무겁게 가라며 따로 용돈을 찔러 주시기도 했다.
나에게 설거지 한번 시키신 적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늘 상냥하셨다.
아마 나는, 시어머니에 대한 남편의 이야기와 실제 내게 보인 다정함 사이의 간극 속에서 그래도 “가족”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던 듯하다.
나를 두고 했던 말들을 잊어보기로, 속으로 혼자 그 말들을 용서하기로 했다.
(하지만 현시점에서는, 그 속과 겉의 다름이 내가 시어머니를 가장 싫어하는 이유가 되었다.)
시어머니를 이해하려 한 시간을 떠올린다.
사람은 누구나 체면을 갖고 산다.
누가 보기엔 하찮은 기준도 그 사람에게는 수십 년 쌓인 자기 가치의 토대일 수 있다. 다만 별안간 시어머니의 체면을 구긴 존재가 되버리는게 싫었다.
나는 이제 그걸 비난하지 않는다.
시어머니의 그 문장은 ‘나를 향한 평가’가 아니라
‘본인을 향한 자격지심’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그 사실을 이해하고 나니, 오히려 내 마음은 단단해졌다.
나는 누군가의 체면을 위해 살지 않을 것이다.
내 아이의 삶도 누군가의 체면으로 장식되지 않기를 바란다.
어머님의 자격지심은 어머님의 것이고,
나는 나의 기준으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