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함과 불편함이 동시에 남는 말들에 대하여
누군가 나에게 말했었다.
그렇게 시어머니가 미운 이유는 네가 처음부터 기대를 너무 많이 한 탓이라고.
그래서 잘하려고 너무 애쓰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생각했다. 내가 뭘 그렇게 잘하려고 했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특별히 잘하려고 애쓴 것도, 노력한 것도 없다.
잘하려다 이런 결과가 나온거면 덜 억울했을지도 모른다. 애써 눈치 보고, 점수 따려다 실패했다면 ‘내가 넘쳤구나’ 하고 스스로 마음을 접을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그런 마음이 아니었다.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말과 행동들이었다.
결혼을 앞둔 어느 주말이었다.
남편과 영화를 보려다, 노부부의 사랑을 다룬 작품이라 시부모님과 함께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부모님과 같이 보자고 했다. 남편은 당황하는 듯했지만 이내 좋아했다.
그런데 “예비 며느리가 같이 영화보재” 말에 돌아온 시어머니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내 이름 석 자를 또렷이 말하며,
“OOO 앞에서 울기 싫다.”
나는 아직도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어 묘한 불편함이 남아 있다.
왜 그 말이 마음을 건드렸는지 정확히 짚어낼 수는 없지만, 그냥 넘기기에는 걸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날 영화를 보는 내내 슬픈 장면이 나오면 시어머니가 울고 계실까? 생각했으며
영화가 끝난 후에도 시어머니는 우셨을까? 신경이 쓰였다.
물론 나는 많이 울었다. (그 영화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였다.)
내가 시부모님께 잘하려고 애썼다는 것이, 잘하려고 애쓰다가 상처받지 말라는 일이 이런 일화들을 두고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그저 마음 가는 대로 했을 뿐이고 그게 그분들의 마음에 들었다면 다행이지만
반대로 나의 어떤 행동은 못마땅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떤 일은 기쁨을 어떤 일은 끝없는 미움을 낳았다.
서로의 불만사항들은 끝까지 몰랐으면 좋겠지만 결혼 생활은 그런 일들을 하나씩 발견하는 일의 연속인 것 같다.
남편은 명절 때마다 말한다. 정말 결혼 잘했다고. 이런 시댁이 어딨냐고.
남편이 말하는 결혼을 '잘'한 근거는 이런 것들이다.
명절에 모이기를 강요하지 않고, 그에 따라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수고가 없다. 첫 며느리가 들어오면서 제사도 다 큰집으로 넘겼다. 이렇게까지 며느리를 생각해 주는 시부모가 어딨냐.
틀린 말은 아니다. 시댁에 가서 전을 부쳐본 적도 없고, 설거지를 한 일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 설거지를 하려고 고무장갑을 끼고 물을 틀면 시어머니는 귀신같이 듣고 달려오셔서 내 손에 끼워진 고무장갑을 억지로 벗기신다.
그 외에도 시어머니께 감사한 일은 많았다.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시어머니는 남편을 통해 종종 반찬을 싸서 보내셨다. 퇴근 후 허기진 상태에서 난 그 음식을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모른다. 그 일을 친정 엄마에게 말했을 때 엄마는 나보다 더 맛있게 먹은 사람처럼 좋아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시댁을 방문하면 처음 한두 시간은 아이들이 할머니와 잘 놀기에 나더러 방에 들어가 눈 좀 붙이라고 하셨다. 처음엔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한사코 괜찮으니 들어가서 자라는 말씀에 못 이기는 척 잠을 청했다. 그야말로 '단잠'이었다. 육아로 지친 몸이 풀어지자 마음까지 촉촉해졌던 기억이 난다.
결혼 후 내 첫 생일에는 한상 가득 맛있는 음식들을 차려주셨었다. 며느리 첫 생일은 시어머니가 챙겨주는 거라면서 그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혼자 음식을 다하셨다고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감사했던 일은, 첫째 낳고 육아휴직 후 복직했을 때 아이를 돌봐주신 일이다.
1년이 조금 안 되는 기간이었지만, 나는 정말 마음 편히 회사를 다닐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야근을 하는 일이 생겨도, 피하고 피해도 피할 수 없는 회식이 생겼을 때에도 시어머니는 늘 괜찮다며 마음 편히 회사일을 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를 해 주셨다.
그래도 시부모님에게 아이를 맡기고 일을 한다는 건, 엄마가 되기 전의 회사생활과는 차원이 달랐다. 회사와 시부모님 모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노릇이기에 퇴근이 평소보다 30분이라도 늦어질 것 같으면 시어머니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꼭 죄송하다는 문자를 남겼다.
그때마다 괜찮다 신경 쓰지 말라며 답장을 해주셨는데, 그 말이 참 묘한 감정을 일으켰다.
"나이 많은 여자가 아이 핑계 집안일 핑계 대며 일하는 거 좋아할 회사 없다. 나는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말고 일하거라"
1년 동안 ‘조금 늦을 것 같다’고 말한 적은 열 번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때마다, 빠짐없이 같은 말이 앞에 붙었다.
‘나이 많은 여자가’.
내가 나이가 많다는 사실이 남편 앞에서는 설명이 될지 몰라도, 회사에서까지 약점이 되어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왜 자꾸 나이를 강조하시는지, 그 말은 단순한 걱정이나 배려라기보다 계속해서 소환되는 어떤 위치를 다시 한번 확인받는 불쾌한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웃으며 넘겼지만, 그 표현들이 반복될수록 내 나이는 나를 설명하는 시어머니의 필수 수식어가 된 듯했다.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이내 어리론가 달아나버렸다.
사소한 말들이 마음 안에서 가라앉기만 했더라면 괜찮았을 텐데, 생각이 많은 나는 그것들을 수시로 휘저어, 내 마음은 좀처럼 맑아지지 못했다. 나는 점점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그때도 분명 시부모님께 감사해야 할 일인데도 그걸 놓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내 얘기를 들어주던 친구가 말했다.
"이상해, 내가 아는 너는 작은 일에도 감동하고 감사할 줄 아는 아이인데..."
그러면서 친구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그러지 말라고 말을 이었다. 시어머니에게 섭섭한 일은 섭섭한 거고, 감사해야 할 일은 감사하게 여기라고.
그 말은 나를 변호하던 말들을 걷어내고, 미처 보지 못했던 나를 드러냈다.
이렇게 나열하고 나면, 나는 혼란에 빠져 묻게 된다. 왜 나는 이 모든 걸 이렇게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을까.
왜 나는 이 불편함을 ‘그냥’ 넘기지 못할까.
어쩌면 문제는 나에게 있는지도 모른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 싫은 부분을 사람들은 대체로 흘려보낸다.
못 본 척하고, 못 들은 척하며 관계를 유지한다. 그것이 어른의 태도라고들 말한다.
나는 그걸 잘 못한다.
말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감정은 안에서 층층이 쌓인다.
설명되지 않은 태도들은 마음속에 남아 자꾸 의미를 요구한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 말의 진짜 뜻은 뭐였을까’.
나는 자꾸 이해하려 들고, 분명하게 정리하려 든다.
하지만 세상의 많은 관계는 끝내 명확한 설명을 주지 않는다.
어떤 말은 의도가 모호한 채로 남고, 어떤 태도는 끝내 확인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관계를 이어간다.
적당히 넘기고, 적당히 잊으면서.
나는 그 ‘적당히’를 잘 모른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관계에서 그런 것은 아니다.
다른 관계들에서는 나는 대체로 ‘적당히’를 잘 해내는 사람이다.
말을 흘려보낼 줄도 알고, 불편함을 접어둘 줄도 안다.
그런데 유독 시어머니와의 관계에서는 그게 잘 되지 않는다.
그분의 말은 자꾸만 마음에 오래 남고, 이미 지나간 장면을 몇 번이고 다시 꺼내 보게 만든다.
그래서 요즘 나는 다른 연습을 해본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즉시 해석하지 않는 연습,
싫은 감정을 모두 의미로 만들지 않는 연습.
모든 관계가 나의 성찰을 요구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연습.
이 글은, 그 연습을 글로 해보는 일이다.
넘어간다는 건, 참는 것이 아니라 내려놓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이 관계가 나를 힘들게 한 이유만큼이나, 내가 나 자신을 놓아주지 못한 시간도 길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이 글의 끝은 다짐이 아니라 인정이다.
나는 아직, 잘 넘어가지 못하는 사람이다.
요즘 본업이 바쁘다는 핑계로, 약속한 연재일을 자주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 글을 기다려주시는 분들께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끝까지 써보려 합니다.
천천히라도, 놓지 않고 이어가겠습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