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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의인사 Oct 29. 2023

할매, 11월 11일은 할매 데이다.맞제?

두 아이 모두 학교와 어린이집을 보내고

예약해 놓은 미용실엘 갔다.

얼마만의 파마인가.

그곳에서 미용실 원장님과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누며

모처럼 나를 위한 시간에 행복해했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의 힐링 후 미용실에서 나왔는데

분명 만족할 만큼 머리도 참 맘에 들게 했는데

이상하게 찝찝한 기분이 미용실을 나오는 순간부터 날 따라다녔다.

'아, 이 찝찝함 뭐지?'


고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모에게 안부인사도 할 겸 전화를 걸었는데

할머니가 계신 병원이란다.

그런데 할머니가 너무 안 좋으시다는 고모의 말.

고모는 있다가 다시 전화를 주겠다곤 전화를 끊었다.

엄마까지 포항 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할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시면서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찾아뵈었는데 중환자실로 옮겨지신 후 면회시간이 한정되어 있어서 할머니를 볼 수 없었다.

결국 엄마, 아빠, 고모에게 할머니의 근황을 전해 들을 수밖에 었다.


시간은 흘러 아무리 기다려도 고모에게 전화는 오지 않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고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모야, 할머니는?"

"흑흑흑..○○야, 할머니가.. 할머니가..

엄마~엄마~~~~"

전화기 너머 엄마의 목소리도 들린다.

"어머니, 우리 애들 잘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데이."

.....

할머니는 세상과 이별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사람은 세상을 떠날 때 심장은 멈추어도 귀는 제일 늦게 닫힌다고 한다.

그래서 가족들이 마지막까지 망자에게 좋은 말들을

많이 해주어야 한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엄마는 40년 세월 동안 할머니미운 정, 고운 정을 나누며

바쁜 자신을 대신하여 사랑으로 손주들을 보살폈던 시어머니에게 마지막으로 감사함을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엉엉 울며 지금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이 소리들을 믿을 수 없었다.

2019년 11월 11일 오후였다.


우리 집에서 제일 건강하고 체력왕이었던 할머니.

작은 체구였지만 재빠르고 부지런하셔서 매일 미사를 보시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셨던 할머니.

맞벌이로 바쁜 부모님을 대신하여

나와 내 여동생에게 아빠이자 엄마의 역할을

해주셨던 할머니.

그런 우리 할머니를 이젠 볼 수 없다.

출산 후 불어난 살을 보고 붓기라서 그렇다며 괜찮다고

그래도 제일 이쁘다며 손녀의 자존감을 세워주셨던 할머니.

할머니가 내 발을 만져주는 게 좋아서 말하지 않아도 발을 툭 건네면 조몰락조몰락 만져주시던 할머니,

언젠가는 할머니와도 이별을 해야 함을 알지만 그게 오늘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던 현실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몇 년이 지났지만 지날수록 그날의 기억은 또렷해진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할머니가 더욱 그립다.

작은 체구에 아들 둘 키운다며 늘 안쓰러워하셨던

할머니에게 쑥쑥 자라는 아들들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9살 차이 나는 여동생이 내년에 결혼을 하는데

멋진 제부도 보여드리고 싶은데..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자식들이 당신의 기일을 기억하기 쉽게

할머니는 11월 11일에 떠났나 보다.

자식들이 제일 먼저였던 당신답게.


2019년 이후부터 우리에게 11월 11일은 할매 데이다.

더욱 짙어져 가는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 속에 이번 할매 데이도 기다려진다.


할매, 11월 11일은 우리한테 할매 데이다. 맞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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